윤제균의 ‘영웅’ 기대 모았지만 ‘올빼미’에도 밀려…‘교섭’ ‘유령’ 개봉하는 1월 중순까지 ‘아바타’ 독주 전망
2022년 극장 개봉 영화 흥행 순위 1위는 단연 ‘범죄도시2’(1269만 명)로 유일하게 1000만 영화 고지에 올랐다. ‘범죄도시2’가 비수기로 분류되는 5월 중순에 개봉해 1000만 고지에 오르자 영화계에선 드디어 극장가가 오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의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희망이 강하게 제기됐다. 그렇지만 여름 극장가에서 개봉된 대작 한국 영화 4편 가운데 ‘한산: 용의 출현’(726만 명)만 500만 관객을 넘겼을 뿐 ‘외계+인 1부’(153만 명)와 ‘비상선언’(205만 명)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나마 ‘헌트’(435만 명)가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오히려 여름 극장가를 피해 6월 22일 개봉한 ‘탑건: 매버릭’(817만 명)이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전체 흥행 순위 2위에 올라 여름 극장가의 진정한 승자가 됐다. 여름 대격돌로 무주공산이 된 추석 시즌을 노린 ‘공조2: 인터내셔날’이 698만 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한산: 용의 출현’에 이어 전체 흥행 순위 4위에 올랐다. 비로소 600만 고지를 넘어선 ‘아바타: 물의 길’이 12월 27일 기준 601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5위에 올랐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588만 명)가 6위다. 12월 14일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은 여전히 흥행세가 강력해 1000만 관객 돌파까지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저 멀리 전편이 기록한 1362만 명 고지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아바타: 물의 길’의 독주는 이미 예상된 상황이었지만 한국 영화계 입장에서도 대비책은 있었다. ‘영웅’이 대항마 역할을 톡톡히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주연 배우 정성화의 무게감이 다소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영화 ‘영웅’이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정성화가 원작 뮤지컬 ‘영웅’에서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 역할을 맡아 온 배우임을 감안하면 최적의 캐스팅이다. 여주인공으로 김고은이 버티고 있으며 나문희, 조재윤, 배정남 등 탄탄한 조연진도 빛난다.
게다가 ‘영웅’의 가장 큰 강점은 윤제균 감독이다. 2001년 ‘두사부일체’를 시작으로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 등으로 흥행 감각이 빼어나다는 평을 받아 온 윤 감독은 1145만 관객의 ‘해운대’와 1425만 관객의 ‘국제시장’으로 대한민국 최초 ‘쌍천만 관객 동원’ 신화를 썼다. 기본적으로 코미디 등 오락 영화에 강한 데다 감동을 이끌어내는 능력까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흥행을 이끌어내는 제작자로서의 능력도 뛰어난데, 2022년에도 69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공조2: 인터내셔날’을 제작했다.
그만큼 ‘영웅’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국제시장’을 통해 입증해 낸 ‘애국’이라는 흥행 키워드를 잘 살려낼 수 있는 영화인 데다 최근 들어 안중근 열풍도 호재다. 뮤지컬 ‘영웅’의 꾸준한 흥행에다 영화 ‘영웅’의 개봉을 앞두고 김훈의 소설 ‘하얼빈’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흥행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아바타: 물의 길’과의 경쟁에서 크게 밀리는 것은 물론 11월 23일 개봉해 꾸준한 흥행을 이어온 한국 영화 ‘올빼미’에도 밀리고 있다.
물론 최근 일일 관객 수에서는 ‘영웅’이 ‘올빼미’를 압도한다. 그렇지만 ‘영웅’과 ‘올빼미’에 배정된 스크린 수와 상영횟수를 감안하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현재 ‘영웅’이 1000여 개의 스크린을 확보해 하루 4000회 이상 상영되고 있는데 반해 ‘올빼미’는 500여 개 스크린을 확보해 하루 900여 회 상영된다. ‘영웅’의 상영횟수가 4배 이상 많은 까닭에 일일 관객 수가 많은 것일 뿐, 한 번 상영될 때마다 동원하는 관객 수는 두 영화가 비슷하다. 12월 26일에는 ‘올빼미’의 회차별 관객 수가 20.5명으로 19.5명을 기록한 ‘영웅’을 앞섰다.
그러다 보니 극장가는 서서히 ‘올빼미’의 스크린 수와 상영 회차를 다시 늘리고 그만큼 ‘영웅’의 스크린 수와 상영 회차를 줄이고 있다. ‘아바타: 물의 길’과의 멋진 한판 승부를 벌일 것으로 기대됐던 ‘영웅’이 한 달 전에 개봉해 이미 3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올빼미’와의 경쟁에서도 밀리는 분위기다. 26일 기준 ‘영웅’의 누적 관객 수는 96만 7511명으로 313만 6826명을 동원한 ‘올빼미’를 따라잡기는 힘겨워 보인다. 그 사이 ‘아바타: 물의 길’은 독주를 거듭하며 601만 6849명의 관객을 동원해 1000만 고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바타: 물의 길’의 독주는 적어도 2023년 1월 17일까지는 이어질 전망이다. 12월 28일 개봉한 주지훈·박성웅 주연의 ‘젠틀맨’도 대항마가 되긴 힘들어 보이는 상황에서 1월 18일 개봉하는 황정민과 현빈 주연의 ‘교섭’과 설경구,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등이 출연하는 ‘유령’에 기대감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바타: 물의 길’이 평일 20만 명대, 휴일 70만~80만 명대 관객을 불러 모으며 매주 250만~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1월 17일까지는 충분히 10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2022년 한국 영화계는 여름 성수기와 겨울 성수기에서 모두 참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여름 성수기에는 대작이 대거 몰리면서 동반 흥행 부진을 기록했고 겨울 성수기에는 ‘아바타: 물의 길’을 모두 피하는 분위기에서 ‘영웅’이 홀로 나섰지만 참패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대유행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 극장가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지만 이 기회를 한국 영화계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코로나19 대유행도 문제지만 엄청난 제작비에 못 미치는 기대 이하의 영화가 더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 영화관계자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극장가에서 무시무시했던 게 사실이지만 정말 좋은 영화라면 창고에서 2~3년씩 개봉을 못할 이유가 없다”며 “한국 영화 시장이 커지고 투자가 원활해지면서 대작에는 엄청난 투자가 이뤄지지만 기대 이하의 영화만 양산되다 보면 시장이 급변할 수 있다. 이미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영화에 극장 개봉 영화가 밀리기 시작한 터라 영화계의 각성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