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첫 로맨스 ‘성공적’…“샤이니로 쉼없이 달려와, 이제 여유 갖고 도전할 것”
“30대가 되고 나서 로맨스를 연기하는 모습을 빨리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아무래도 영화로 얼굴을 많이 비춰오다 보니 로맨스 드라마에서 연기를 많이 못 보여드렸더라고요. 이제 나이도 서른이 넘었고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때에 마침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됐던 거죠.”
‘더 패뷸러스’에서 최민호가 맡은 지우민은 ‘열정 빼고 모든 것을 다 갖춘’ 프리랜서 리터쳐(사진 보정사)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을 즐기는 그가 딱 하나 미련을 갖는 게 있다면 그건 전 애인이자 둘도 없는 친구인 표지은(채수빈 분)이다. 이미 오래전 헤어져 ‘엑스’(ex‧전 연인)로 불리는 표지은과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제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지우민은 시청자들에게 답답함과 조바심을 유발하기도 했다.
“대본을 읽기 전에 캐릭터 설명에 ‘열정 빼고 다 갖췄다’고 해서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웃음). 나랑 반대인 캐릭터니까 쉽겠다 싶었는데 연기할수록 어렵더라고요. 열정이 없는 이유에 그만의 서사가 있고 또 갈수록 고민하고 성장하는 캐릭터거든요. 극 중에서 감정 변화가 가장 큰 캐릭터이기도 하고, 우민이의 감정선에 따라 모든 드라마가 롤러코스터를 타게 돼요. 그렇게 변화되는 모습을 제가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캐스팅하셨대요.”
최민호가 지우민을 연기하며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꼽은 것은 그의 갈팡질팡하는 감정이었다. “처음엔 납득이 안 됐다. 얘네들 이 관계가, 이게 진짜 괜찮은 건가”라며 웃음을 터뜨린 그는 자신이 지우민의 상황이었다면 ‘엑스’는 절대 못 만났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저는 우민이와 닮은 지점이 많이 없어요. 완전히 반대로 직진하는 타입이거든요.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죠. 지우민은 주변에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 관계가 유지됐던 거고 친구들이 없었다면 아마 안 됐을 거예요. 제가 우민이었다면 그래도 절대 엑스는 못 만났을 텐데(웃음). 연기할 땐 후반에 감정의 변화 지점이 있단 걸 알았기 때문에 최대한 앞부분에선 감정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표현하고 싶지만 절대 표현하지 않는 데에 포인트를 주려 했죠.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는 순간 이 관계는 끝이다란 느낌으로 감정을 잡았던 기억이 나요.”
그의 말대로 지우민과 표지은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지탱해주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극 중 이들과 함께 오랜 인연을 쌓아온 패션 브랜드 디자이너 조세프(이상운 분), 모델 예선호(박희정 분)는 둘이 연인에서 친구로 돌아왔어도, 그리고 다시 연인으로 돌아갈지라도 친구를 끝까지 믿어주는 ‘본새 있는 우정’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이다. 오래된 친구 사이를 자연스럽게 보여줘야 하다 보니 촬영장 밖에서도 마치 ‘한 패’처럼 몰려 다니며 진짜 우정을 쌓아갔다는 뒷이야기도 있었다.
“처음엔 다들 어색해서 친해지기 쉽지 않았는데 감독님이 저희끼리 모이는 자리도 마련해 주시고, 먼저 대화의 물꼬를 터 주셔서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어요. 사실 감독님도 낯을 많이 가리시는데(웃음)….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제가 밥 먹자, 모이자면서 리드했죠. 아무래도 저희 4명은 1~2년 우정이 아닌 오래된 우정을 보여줘야 하다 보니 그런 지점을 시청자 분들도 느끼실 수 있게 더 많이 만나고 얘기하고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하려고 했어요. 나중엔 너무 친해져서 같이 찍을 때 웃음 참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웃음).”
모두 친한 친구들이었지만 그래도 가장 마음이 쓰인 것은 역시 상대역인 채수빈이었다. 특히 첫 화부터 강도 높은 애정 신이 예고돼 있던 만큼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고. ‘더 패뷸러스’의 초기 입소문을 책임졌던 이 신의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초반 애정 신은 수위가 높아서 걱정을 좀 했어요. 잘 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런데 감독님이 엄청나게 준비를 많이 해오셨고 수빈 씨도 저를 많이 배려해 줬어요. 그렇게 잘 찍는데 (표지은의) 진주 목걸이가 문제더라고요. 그 목걸이가 드라마틱하게 끊어지면서 진주알들이 탁 퍼져야 하는데 끈으로 연결돼 있다 보니 그냥 ‘스르륵’ 떨어지는 거예요(웃음). 좋은 장면이 나올 때까지 목걸이를 팍 뜯어야 하는데 수빈 씨가 아플 수도 있으니까 계속 사과를 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 그 장면 촬영만 4시간이나 했는데 그래도 서로 배려해줘서 멋있게 신이 나왔던 것 같아요.”
애정 신과 더불어 최민호의 클럽 댄스 신도 또 다른 화제가 됐다. 스스로를 ‘파티 애니멀’로 칭하는 주인공 4인방이 클럽에서 춤을 출 때 지우민이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 무대에 오르는 신이다. 평소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만큼 노출 신 자체가 꺼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촬영하는 내내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게 최민호의 이야기다. “클럽에서, 이렇게까지 노출하고 춤을 추는 친구들이 진짜 있나?”
“아무래도 대본을 볼 때부터 노출 신이 있었으니 준비를 하고 촬영했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께 ‘감독님, 클럽에서 이렇게 노출하고 춤을 추는 친구가 있을까요?’ 하고 계속 여쭤보고(웃음). 안 하려던 게 아니라 그게 또 극에 필요한 장면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건 맞는데 혼자서 고민을 한 거예요. 촬영 당일 아침까지도 계속 ‘이런 사람들이 진짜 있을까’ 고민하면서도 또 펌핑(근육 운동)을 하고 있고…. 민망해 하면서 왜 펌핑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의문(?) 속에서도 맡은 역할에 충실했던 최민호는 그의 말대로 ‘30대의 첫 로맨스’를 무사히 마쳤다. 2020년 11월 해병대 만기 전역 후 처음 맡은 주연작이기도 했던 만큼 ‘더 패뷸러스’는 최민호에게 있어 여러 감정을 안겨준다고 했다. 만 16세에 보이그룹 ‘샤이니’로 데뷔해 가요계 최정상을 경험했던 그는 해병대에 입대한 29살부터 30살까지의 시간을 오히려 ‘여유’라고 표현할 만큼 숨이 턱에 찰 만큼 바쁘게 달려왔었다. 연기자로서도 13년이란 시간을 채우며 이름 앞에 붙는 배우라는 글자가 무색하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온 최민호는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다양하게 도전하되, 여유를 가질 것”이라고 정리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데뷔해서 29살까지 쉬지 않고 쭉 달렸을 땐 ‘이 시간이 내게 도움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전진했어요. 그랬던 제게 군대는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여유가 돼 줬던 거죠. 연예계 생활이 아닌 독립된 곳에서 저를 돌아보며 ‘너무 달려왔구나’라고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었어요. 지금은 한층 더 여유를 갖고 일하려고 해요. 30대가 됐으니 저의 다양한 면을 연기로 보여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이제까진 선역을 많이 했으니 악역도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뒤통수를 안 칠 것 같은 제가 뒤에서 악랄하게 웃고 그러면 좀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