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으로 화제 견인…김도현과 부부 케미 눈길 “애드리브 착착 통해”
“사실 작품이 잘될 거란 생각은 했어요(웃음).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너무 재밌었는데 심지어 이렇게 좋은 배우님들이 합류해주셨으니까요. 잘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던 거죠. 그래도 막상 첫 방송 전날이 되니 긴장되더라고요. 매니저한테 시청률 어떻게 나올 것 같으냐고 물어보니 요샌 OTT로 다시 보기를 많이 하니까 첫 방송의 실제 시청률은 한 3% 정도 나올 거라 하더라고요. 그런데 7% 가까이 나온 거예요! 마지막 화를 앞두고 정말 진화영처럼 '30%, 가요?' 하고 싶은 기분이더라고요(웃음). 그러면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드라마 역사를 다시 찍는 거니까요.”
그의 말대로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에 방영된 ‘재벌집 막내아들’의 마지막회(16부)는 수도권 기준 시청률 30%를 넘어서며 비지상파 드라마 시청률 역대 2위에 올랐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입소문을 타며 매회 최고 시청률 신기록을 경신해 온 ‘재벌집 막내아들’의 초반 화제몰이의 공을 돌린다면, 극 중 국내 굴지의 재벌가로 등장하는 순양그룹의 창업주 진양철 회장 역의 이성민과 그의 고명딸 진화영 역의 김신록을 빼놓을 수가 없다. 자신을 죽인 재벌가의 ‘막내아들의 막내아들’로 회귀한 진도준(송중기 분)이 처음으로 상대하게 되는 빌런인 진화영은 악랄해 보이지만 어쩐지 미워할 수 없는 양면적인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애정을 받았다.
“화영은 욕망이 많은 사람이에요. 제가 예전에 욕구와 욕망의 차이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욕구는 하고 싶은 마음, 욕망은 부족하다 생각해서 더 바라는 마음이라더라고요. 화영이는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 형제 사이에서의 자기 입지에 대한 욕망이 있는 사람이에요. 가부장적인 집에서 사랑과 안정감도 부족하게 느끼는데 바라는 건 재벌가다 보니 너무 많아 그 사이에서 괴리가 어마어마했을 거예요. 거기서 오는 역동성을 표현해 보려고 했죠.”
순양그룹을 놓고 암투 중인 두 오빠와 그런 형제들을 저울질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덮어놓고 한 수 아래로 평가 받는 것에 진저리치는 화영은 어떻게 해서든 오빠들과 대등한 레이스를 펼치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을 고명딸로 예뻐해 주는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려 빈틈을 노리고, 검사인 남편 최창제를 내세워 제 입지를 넓히려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도 한다. 순양그룹 2세라는 자리를 위협하는 이들에겐 가차 없지만 자신의 편이라고 믿는 아버지와 남편에게만큼은 철없이 응석 부리는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진화영을 마냥 미워하게만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진화영의 ‘징징’ 연기는 제가 생각한 거예요(웃음). 화영이는 아버지와 오빠들, 남편처럼 가족 관계에서 만날 수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자기 존재감과 입지를 잃지 않기 위해 굉장히 고군분투하는 인물이거든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죠. 아버지한테 애교도 부리고 울부짖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소리지르고 찡찡거리기도 하면서요. 그런 다양한 모습은 이 사람이 절박하게 어떤 것을 바라고 얻기 위해 노력하고 분투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그런 걸 이해해서 시청자 분들이 진화영을 좋아해주셨던 것 같아요.”
남편인 최창제 역의 배우 김도현과의 케미스트리도 진화영의 인기에 한몫을 더했다. 시골 출신의 고학생으로 자수성가해 검사 자리까지 올랐지만 막강한 처가와 아내에게 설설 길 수밖에 없는 남편과 그런 그를 쥐락펴락하는 아내의 티격태격은 재벌가의 음울한 암투 속 단비 같은 웃음을 선사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외전으로 진양철의 순양 창업기와 더불어 진화영‧최창제 부부의 러브스토리를 내달라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사랑엔 다양한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화영이는 늘 집안에서 일부분 억울하고, 부족하고,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인데 창제는 그런 화영이를 말 그대로 공주 대하듯 받들어주고 다 잘한다 해주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한테는 다 내 뜻대로 굴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자기 스스로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겠죠. 나중엔 그게 전복되긴 하지만요(웃음). 둘 사이 아이도 없고, 나이들어서까지 이혼도 하지 않고 외도에 대한 이야기도 딱히 없는 거 보면 그냥 여느 부부처럼 사랑하고 미워하고 답답해하고 때론 감탄하면서 살았겠구나 싶어요.”
진화영 최창제 부부의 대사와 연기엔 유독 애드리브가 많았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아무래도 ‘티키타카’가 중요한 듀오다 보니 대본에 다 적히지 않은 대사나 행동을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채워나가는 일이 많았다고.
“김도현 배우와는 정말 착착 잘 통했어요(웃음). 촬영 들어가기 전 분장실에서 저희끼리 ‘이 장면에서 다리 주물러 주면 어떨까?’ ‘좋아!’ ‘이 장면에선 나 업힐 건데 괜찮겠어?’ ‘아,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서로 아이디어를 나눴죠. 정심재 외곽에서 화영이가 ‘자식 일에 재 뿌리는 아버지가 어딨어!’라고 하니까 창제가 ‘종종 있어’하고 답하는 신이 있었는데, 원래 대본에선 대사가 두 줄 정도였지만 저 멀리서부터 정심재까지 오는데 동선상 거리가 너무 먼 거예요. 그래서 걸어가는 동안 저희가 즉흥적으로 다 애드리브로 채웠죠(웃음).”
연극 무대에서 쌓아 올린 내공으로 무장한 김신록의 애드리브는 비단 김도현과의 합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진양철 회장 역의 이성민과의 정심재 독대 신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 신에 대해 “이성민 연기 1열 직관”이라고 표현하며 웃음을 터뜨린 그는 오히려 자신 역시 이성민으로부터 수혜를 입었다고 회상했다.
“저와 이성민 선배님이 일대일로 찍은 신은 그 신 딱 하나였는데, 선배님으로부터 연기의 밀도와 에너지, 진실감 같은 것들을 얻게 됐던 것 같아요. 원래 대본에는 제가 진양철 회장의 다리를 잡으며 ‘돈 빌려주세요, 1400억’ 할 때 ‘민망한 듯 주저하며’라는 지문이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실제 촬영할 때 선배님이 대사를 치고 확 멀어지시니까 제가 순간적으로 바짓가랑이를 잡으려고 날아가서 ‘점프’하게 되더라고요(웃음). 돈이 없어 절박한데 민망하고 주저할 때가 아닌 거죠. 그런 살아있는 순간들을 만들어주시는 게 바로 이성민 선배님의 힘이라고 생각했어요.”
김신록은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에 이어 2022년에는 ‘재벌집 막내아들’에 이르기까지 매해 화제작에 이름을 올렸다. 2004년 연극배우로 데뷔 후 줄곧 연극 무대에서 활약해 오다 TV로 옮기게 된 것은 2020년이 처음이었으니, 고작 2년 사이 제대로 입지를 굳혀낸 셈이다. 작품에 대한 선구안이나 본인의 뛰어난 연기력보단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이 같은 성공적인 안착을 겸손하게 자평한 김신록은 앞으로도 고향 같은 연극 무대와 TV를 번갈아 가며 활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옥’ 인터뷰 때 그 작품이 제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을 받고 ‘인생 제2막을 열어준 작품 같다’는 답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갓 마흔을 넘기기도 했고 연극을 하다 영상 매체로 활동무대를 넓혀가던 찰나였거든요. 이번 ‘재벌집 막내아들’은 배우로서 계속 변신해 나갈 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을 주는 작품 같아요. ‘지옥’ 땐 찢어지게 가난한 역할을 했고, ‘재벌집 막내아들’은 찢어지게 부자인 역할이라 다음 작품에선 안 찢어졌으면 좋겠네요(웃음). 연극도 제가 꼭 하고 싶은 작품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TV 활동과) 병행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꼭 하고 싶은 작품들로 남은 시간을 잘 채워나가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