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구심점’으로 이재명 체제 흔들거나 ‘무리한 수사 피해자’ 연대 가능성…‘PK 영향력’ 발휘 여부 주목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지난 12월 28일 특별사면됐다. 김경수 전 지사는 2017년 대선 당시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이후 창원교도소에서 수감 중이었다.
김경수 전 지사는 ‘친문 적자’로 꼽힌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국정상황실·제1부속실 행정관을 거쳐 연설비서관을 역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는 함께 봉하마을로 내려가 ‘마지막 비서관’으로 불렸다. 이후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을 지내다 정치에 뛰어들어, 2016년 총선에서 경남 김해을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 후보 최초로 경남지사에 당선됐다. 2017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대변인·수행팀장으로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친문 적자’ 김경수 전 지사가 출소하면서 앞으로의 역할 등에 대해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하다. 김 전 지사는 이에 대해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 전 지사는 12월 28일 오전 0시를 조금 넘겨 창원교도소를 나와서 취재진 앞에 선 뒤 “이곳 창원교도소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동안 많이 생각하고 많은 것을 돌아봤다”며 “제가 가졌던 성찰의 시간이 우리 사회가 대화와 타협, 사회적 합의를 통해 더 따듯한 사회를 만드는 걸음이 되도록 더 낮은 자세로 성찰하고 노력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질의응답은 다음 기회에 차분하게 하자”며 말을 아꼈다. 김 전 지사는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향후 정치 활동에 대한 구상을 정리할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정부는 김경수 전 지사를 특별사면하면서 복권은 하지 않았다. 4개월가량의 잔여 형만 면제된 김 전 지사는 2027년 12월 28일까지 피선거권이 없어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다만 정당 활동 등에는 별다른 제약이 없다.
정치권에선 김 전 지사가 친문 진영 구심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야권 한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우려를 가진 민주당 일부 인사들도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대표를 대신할 대체재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김경수 전 지사가 특사로 나왔다. 김 전 지사는 도지사를 지내 중량감도 있고, 친문 적자라는 상징성도 있다. 김 전 지사를 중심으로 친문 진영이 다시 뭉쳐 당내 주류로 나아가려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압박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김 지사의 친문 역할론은 민주당 계파 싸움의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가 김 전 지사의 이러한 ‘메기’ 효과를 기대하고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시킨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문재인 청와대에 있었던 민주당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의 칼날이 이재명 대표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도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친문계가 이재명 대표를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정당에는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힘이 커진다. 그런 의미에서 김 전 지사가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한다”고 전했다.
오히려 김경수 전 지사가 이재명 대표와 힘을 합칠 가능성도 나온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김경수 전 지사는 ‘가석방 불원서’에서 밝혔듯 여전히 드루킹 사건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 역시 본인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해 문제가 없는데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고 호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지사가 이 대표를 향해 ‘혐의를 받고 있으니 당대표직에서 물러나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며 “오히려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받는 피해자라는 공통점으로 두 사람이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재명 대표에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를 냈다. 이 대표는 1월 2일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를 방문해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민생경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며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전날에는 이재명 대표와 김경수 전 지사가 새해 인사차 경남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 자리에서 대면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5분 정도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안호영 수석 대변인은 “잠시 말씀을 나눴는데, 오랜만에 뵀기 때문에 두 분께서 그간의 서로 안부를 묻고, 새해를 맞아 덕담을 나누는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당 상황이나 ‘통합’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다고 안 수석 대변인은 덧붙였다.
친문계 한 의원은 “‘친문’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핵심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문 전 대통령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김경수 전 지사는 누구보다 문 전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며 “문 전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뭉치라고 당부한 만큼 김 전 지사도 이 대표를 돕게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그럴 경우 2024년 총선 등에서 윤석열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영남 지역 사정에 정통한 야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여당에 대한 PK(부산·울산·경남) 지역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지지율 여론조사에서도 미묘하게 움직이는 걸 감지할 수 있다”며 “김경수 전 지사의 PK 지역 영향력은 아직도 크다. 본인은 출마하지 못한다고 해도 총선 과정에서 김 전 지사가 PK를 중심으로 선거유세에 나선다면 국민의힘은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