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영웅”이라 부르면서 실종·전사자 외면…“왜 어머니가 나서서 시신 찾아야 하는가” 비통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어언 1년이 되어 간다. 당초 예상과 달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여기저기서 피로감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반대로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기억해야 할 점은 있다. 아직도 누군가는 의미 없는 전쟁터에서 애꿎은 목숨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런 사상자 수는 지난해 9월, 느닷없이 동원령이 내려지면서 크게 늘고 있다.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들을 전장으로 떠나보낸 러시아 여성들은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설령 전사했다 하더라도 시신을 수습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예 행방을 몰라 속이 끓는 이들은 직접 가족을 찾아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이 만난 남겨진 러시아 여성들의 애가 타는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때는 2022년 4월 11일 오후 2시 10분. 페트로사보츠크에서 살고 있는 이리나 치스차코바(44)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러시아 국방부 핫라인을 통해 걸려온 불길한 느낌의 전화였다.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너머의 남성이 전해온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아드님이 우크라이나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이리나의 세상은 그 전화를 받기 전과 후로 나뉘었다. 이리나는 “내 평생 그렇게 히스테리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또 다시 국방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째 말이 달랐다. 국방부 관계자는 “아드님이 포로로 붙잡힌 게 아니라 실종된 듯합니다”라고 전했다. 이리나는 어이가 없었다.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한 그는 “대체 무슨 일인가요. 아들이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이라도 했단 말인가요. 아들이 슈퍼맨이라도 된다는 건가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시작된 이리나의 ‘아들 찾기’는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가끔 아들이 꿈에 나온다는 그는 “하루는 꿈에서 아들이 내 옆에 앉아서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내가 ‘대체 너를 어디 가면 찾을 수 있니’라고 묻자 아들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키이우의 한 지하실에 있어요’라고”라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꿈을 소개했다. 그 후로 이리나는 아들이 키이우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실종됐을 때 ‘키릴’의 나이는 19세였다. 아들이 전쟁터로 나간 이유는 군인으로 복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터지기 불과 5개월 전에 군복무를 시작한 아들은 어릴 적부터 군인이 되는 꿈을 키워왔다. 때문에 군인으로서 자부심도 대단했다. 열 살 때 지역 사관학교에 입학한 키릴은 일찌감치 군대에 말뚝을 박기로 작정했다. 학교를 졸업하면 높은 급여가 보장된 직업군인으로서의 길도 보장돼 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키릴은 전화로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소속 부대가 곧 우크라이나 국경지대로 이동하기 때문에 당분간 소식을 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때만 해도 이리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만큼은 안전하리라고 생각했고 러시아를, 그리고 푸틴 대통령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리나가 아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22년 3월이었다. 당시 아들과 ‘스카이프’로 화상통화를 한 이리나는 당시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군사 기밀이라는 이유로 아들이 정확한 위치를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화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쿵하는 포탄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키릴은 “금방 지나갈 거예요”라며 안심시키고 급히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아들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어두운 지하실이었다. 저번과 달리 아들의 목소리는 사뭇 긴박했다. “부탁이 하나 있어요”라고 말한 키릴은 “군검찰에 신고를 해주세요. 사령관이 모든 신병들을 우크라이나에서 다시 러시아로 돌려보내고 있는데, 나만 제외시켰어요”라며 호소했다. 아들은 속았다고 주장했다. 입대 당시 서명한 계약서의 내용을 잘못 이해해서 19세인 자신이 직업 군인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이리나는 하루 종일 아들이 소속된 군부대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아무하고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것이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후로 이리나는 다시는 아들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이리나가 아들을 찾아 헤맨 거리는 2만 5000km가 넘는다. 러시아 전역의 영안실을 샅샅이 뒤졌고, 트럭을 얻어 타고 모스크바까지 달려갔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격전지인 도네츠크에 한동안 머물렀다. 이리나는 군 관계자들, 장교들을 만날 때마다 닥치는 대로 묻고 있다.
“군에 입대한 지 3개월밖에 안된 19세 청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나는 내 아들이 그런 식으로 목숨을 잃도록 세상에 내보낸 것이 아닙니다.”
현재 이리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들은 러시아 전역에 수천 명에 달한다. 러시아 측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2022년 9월 기준 5937명의 러시아 군인이 우크라이나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 수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크라이나 합동참모부에 따르면, 2022년 9월 기준 목숨을 잃은 러시아군은 8만 명에 달한다. 미국 측의 집계는 더 많다. 약 10만 명의 러시아군이 부상을 당했거나 사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으며, 실종된 군인의 수는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러시아 정부에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시민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슬픔과 고통을 조용히 감내하고 있으며, 러시아 정부는 공개적으로 전사자들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쪽으로 사회적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때문에 이리나처럼 자신의 사연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말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러시아 정부에게 버림받은 기분이라고 말하는 이리나는 “나는 기계를 상대로 싸우는 듯하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요컨대 기계적으로 응대하는 군부대를 비꼬는 말이다.
하지만 그 사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든든한 동지들도 많이 생겼다.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알게 된 수백 명의 가족들과 힘을 합치고 있는 이리나는 이들과 함께 전쟁터에서 실종된 아들과 남편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다만 허가받지 않은 집회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집단행동은 불가능하다. 러시아에서는 군대를 모독하는 사람은 누구든 징역 3년에 처해질 수 있다.
이리나는 수소문 끝에 아들의 마지막 행방을 알아냈다. 아들은 우크라이나 히르키우 인근의 마을인 말라 로한에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3월 말, 우크라이나군이 말라 로한을 다시 탈환하는 과정에서 많은 러시아군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리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들이 소속된 부대의 병사 마흔 명 가운데 서른두 명이 전사했으며, 세 명은 포로로 잡혔고, 네 명은 실종된 상태였다. 나머지 한 명은 러시아로 무사히 돌아왔다. 더욱 어이없는 사실은 사령관 혼자 말라 로한이 우크라이나에 탈환되기 며칠 전에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는 점이었다.
7월에는 실종된 전사자들의 사진이 가득 담긴 앨범을 들고 도네츠크로 향했다. 모두 다른 가족들이 보내온 사진들이었다. 하지만 도처에서 대포 소리가 들리는 격전지인 이곳에서도 이리나는 아들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이틀 후에는 군병원 영안실에 안치돼 있는 불에 탄 시신을 살펴보기 위해 로스토프를 찾았다. 혹시나 아들일지 모른다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무더위 탓에 시신은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었고 누구인지 식별이 되지는 않았다. 군병원으로 쓰이고 있는 창고의 한쪽 구석에는 피 묻은 군복이 겹겹이 쌓여 악취가 진동했다.
몇몇 시신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어 더욱 알아보기 힘들었다. 아들은 찾지 못했지만 이리나는 아들과 같은 부대 소속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안톤(21)이라는 청년의 시신을 찾는 데 성공했다. 손에 있는 문신이 사진에 있는 것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즉시 가족에게 연락을 한 이리나는 “대체 왜 어머니들이 직접 나서서 전사한 군인들의 신원을 확인해야 한단 말인가”라며 비통해 했다.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이리나는 전쟁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결과가 뭐가 됐든 전쟁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비단 이리나뿐만 아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절반 이상이 하루 빨리 평화협정이 체결되길 희망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독립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가 실시한 설문조사는 응답자의 88%가 우크라이나에서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 모스크바의 사회학자인 류 구드코브는 “러시아인들은 패배가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 남편 빅토르(42)를 잃은 옐레나 쉬시키나는 아직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2022년 9월 말, 동원령으로 강제 징집된 남편은 별다른 저항 없이 군에 들어갔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겁쟁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진단서를 제출하지도 않았다.
전장으로 투입되기 전까지는 집에서 가까운 부대에 배치돼 준비 기간을 가졌다. 이곳에서는 전쟁 영화를 보거나, 두어 번 사격장에서 사격 훈련을 하는 게 전부였다. 걱정스런 마음에 옐레나는 사비를 털어 남편을 위해 침낭, 군화, 심지어 텐트 등 장비를 마련해주었다. 그렇게 전장으로 떠난 남편이 처음 집으로 전화를 걸어온 것은 11월 초였다. 하지만 아무 걱정하지 말라던 남편은 며칠 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무엇을 위해 죽은 건가”라고 묻는 옐레나는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옐레나는 “동원령이 떨어진 후 길거리에서 남자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하면서 “그만큼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강제 징집됐다”고 증언했다. 다섯 살 된 막내아들은 이제 겨우 유치원생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아들은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제 아빠는 영웅인걸요.”
하지만 과연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영웅일까.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