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부도 현 정부도 현역병 복지 정책 펼치며 복지 제자리인 장교·부사관 경쟁률 추락 안보 공백 우려
문재인 정부는 육군 현역병 복무 기간을 1년 6개월(18개월)로 단축했다. 2020년부터 육군·해병대·상근예비역 등 현역병 의무 복무기간은 1년 6개월이다. 해군 의무복무 기간은 1년 8개월(20개월), 공군 의무복무 기간은 1년 9개월(21개월)이다. 사회복무요원 의무복무 기간은 공군과 같은 1년 9개월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2020년부터 현역병의 스마트폰 반입을 전격 허용했다.
윤석열 정부는 현역병 월급 200만 원 시대를 천명하며 출범했다. 2022년 67만 6100원이던 병장 기본급은 2023년부터 100만 원으로 인상된다. 여기에 달마다 지급되는 사회진출지원금까지 합치면 육군 병장은 월 13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 윤석열 정부는 2025년 육군 병장 기준 기본급을 150만 원으로 끌어 올리고 사회진출지원금을 55만 원 규모로 상향 조정해 월급 200만 원 시대를 열겠다는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있다.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현역병이 최저시급 수준 급여를 보장받고,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은 우리 군이 지향해야 할 일”이라면서도 “문제는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현역병 복지혜택 개선 정책과 달리 군 초급 간부들에 대한 복지혜택은 제자리걸음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복수 군 장성급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남북 분단 상황 아래 단기장교 및 단기부사관을 꾸준히 육성 및 수급하는 방식으로 군 체계를 유지해 왔다. 장교의 경우 복무기간이 2년 4개월(28개월)인 학군장교(ROTC)와 복무기간이 40개월(3년 4개월)인 학사장교를 육성하면서 단기 복무 자원을 수급해 왔다. 군의 중추인 부사관 역시 끊임없는 모집을 통해 인력을 수급하고 있다.
초급 간부 경쟁률은 ‘추락’이라는 단어로 설명 가능한 모양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ROTC 후보생 모집 경쟁률은 2015년 4.5 대 1에서 2022년 2.4 대 1로 줄었다. 사실상 반토막에 가까운 경쟁률이다. 일부 서울권 대학에선 경쟁률이 1 대 1 이하로 떨어지는 ‘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학사장교 경쟁률은 2019년 3.4 대 1에서 2021년 2.3 대 1로 줄었다. 부사관 경쟁률은 2019년 4.1 대 1에서 2021년 2.9 대 1이 됐다. 초급 간부들이 의무 복무 기간을 마친 뒤 장기 복무를 신청하는 이른 바 ‘말뚝 박는 비율’도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화가 심화함에 따라 군은 2022년 37.9% 수준인 군 간부 비율을 2026년까지 40.6%로 상향 조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현역병 복지 수준이 대폭 개선되면서, 초급 간부 수급 상황이 열악해지는 양상이다. 병장 월급 200만 원 시대가 열리는 2025년엔 일부 현역병과 초급 장교 및 초급 부사관의 급여가 역전될 것이란 전망이다.
ROTC 제도를 통해 현역으로 복무 중인 한 초급 장교는 “2010년대 중반까지는 초급 장교가 현역병 대비 월등히 높은 보수를 받을 뿐 아니라 계급 상으로도 메리트가 있었다”면서 “최근엔 월급 역전 및 복무기간 차이 등 이슈로 후보생으로 교육받고 있는 후배들이 떠나는 경우도 빈번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엔 단기 장교 제도가 돈과 명예에 경험까지 챙겨갈 수 있는 실리적이고 경쟁력 있는 선택이었다면, 지금은 허울만 남아 있는 속 빈 강정 같은 제도가 됐다”면서 “시간을 돌려 다시 선택을 하라면 나 역시 현역병 복무 쪽으로 마음이 기울 것 같다”고 했다.
한 초급 부사관은 “장기복무라는 꿈을 안고 임관한 동료들 사이에서도 적잖은 동요가 있다”면서 “월급 역전 현상이 일어나면서 ‘말뚝 박기’ 대신 사회에서 새로운 미래를 알아봐야 한다는 긴장감이 팽배해지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월급 역전 현상에 있어서 초급 간부 보수는 공무원 임금 인상률을 따라가는 상황이어서 마땅히 해결할 수 있는 답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직 군 관계자들 사이에선 현역병 복지혜택 개선이 쏘아올린 ‘초급 간부 공백 현상’이 중장기적으로 안보 사각지대를 만들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속출하고 있다.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안보 관련 이슈가 정치의 흐름을 타면서 본질보다 현상이 우선시되는 주객전도가 심화하고 있다”면서 “지난 정부와 현 정부 들어 군 체계에 생겨난 작은 균열이 중장기적으로 전투력 향상과 유지 측면에서 메울 수 없는 블랙홀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급여 및 복무기간 등 군 체계가 혼란스러워진 배경으론 ‘20대 남성’ 계층이 가진 정치적 특수성이 꼽힌다. 20대 남성은 최근 선거 트렌드에서 새로운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집단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20대 남성이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나타난 상징적 인물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꼽았다. 이 관계자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이 전 대표는 정치권 최고의 스타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21세기 대한민국 청년 남성은 참정권을 부여받음과 동시에 병역·취업·결혼 등 삼중고를 맞이해야 하는 ‘끼인 세대’로 부각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그 첫 번째 관문이 병역이다. 병역 관련 정책이 20대 남성 민심을 결집하는 수단이 된 것도 이런 배경적 측면이 강하다”고 했다.
야권 관계자는 “그간 대한민국에서 병역은 ‘국방’이라는 깃발 아래 많은 부조리를 정당화하게 만든 인권 사각지대였다”면서 “철저한 안보태세와 더불어 현역병 개개인이 인권을 보장받고, 노동의 가치를 보장받는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이 군 시스템을 점차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전직 영관급 군 관계자는 “한번 시행된 정책이 뒤집히긴 어렵다”면서 “그러나 정부가 정치적 희생을 각오하더라도 안보적 가치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들어 국민적 이목이 정치적으로 여야 갈등이 극심한 사안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군 체계와 관련된 문제는 전 정부와 현 정부 모두 책임이 있는 요소인 데다 국민 안전과 직결된 요소다. 이런 부분에 대해선 국민적 관심이 상당히 낮은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책임을 묻는 차원이 아니라, 정부와 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관련한 논의는 극심한 정치적 대립을 겪는 이슈보다 오히려 골든타임이 촉박한 상황”이라면서 “북 무인기 도발 사건 등을 비롯한 안보 공백 논란 원인은 ‘어느 정부 탓’이 아니라 ‘어느 정부들’을 거치면서 발현된 각종 포퓰리즘 정책으로 갈 길을 잃어버린 시스템 때문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