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무인기 격추 실패 후 새떼·풍선에 ‘깜짝’…‘문 정부 훈련 부실 vs 윤 정부 안보 무능’ 대결 구도
2022년 12월 26일 정오를 전후로 미스터리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다. 오전 11시 40분 강원도 횡성에서 공군 KA-1 전투기가 이륙 중 추락했다. 국토교통부는 인천공항(오후 1시 22분)과 김포공항(오후 1시 3분) 여객기 이륙을 일시 중단했다. 이륙 중단은 오후 2시 10분 일괄 해제됐다. 두 사건 원인은 같았다. 북한 무인기 5대가 영공을 침범한 것이 발단이었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 무인기는 이날 오전 10시 25분부터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김포·파주 일대와 강화도 인근에서 북한 무인기가 발견됐다. 무인기 5대 중 4대는 교란용, 1대는 정찰용인 것으로 파악됐다. 교란용 무인기 크기는 2m, 정찰용 무인기 크기는 4m로 추정됐다.
영공에 구멍이 뚫린 셈. 심지어 북한 무인기 중 일부는 서울 서북부에서 동북부를 관통하며 횡으로 움직인 것으로 전해진다. 심장부 서울에 북한 무인기가 진입했음에도 비호·발칸 등 지대공 방공무기는 이를 탐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인기를 식별한 것은 국지 방공레이더와 TOD(열상감시장비)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은 무인기 격추를 목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헬기 20mm포로 100여 발 수준 사격을 진행했다. 그러나 격추된 북한 무인기 수는 ‘0’이었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국민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대응했다”고 했다.
북한 무인기 5대는 대한민국 심장부 영공을 휘젓다가 오후 3시 30분경 항적을 감췄다. 격추를 위한 대응작전 중 우리 군 피해가 발생했다. 앞서 언급한 KA-1 전투기 추락이다. KA-1 전투기는 강원도 원주기지에서 이륙하다 추락했다. 조종사 2명은 무사히 탈출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2022년 12월 27일과 28일에는 군이 새떼와 풍선을 북한 무인기로 오인한 뒤 작전상황을 종료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북한군의 조잡한 무인기에 영공이 뚫렸는데도 한 대도 격추시키지 못한 굴욕적인 상황이 발생했다”면서 “그 가운데 전투기 한 대는 이륙 중 추락했다. 군 기강과 관련한 자성론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작전 실패는 용납하더라도 경계 실패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격언이 있지 않느냐”면서 “이번 사건에서 우리 군 대공 경계시스템은 사실상 붕괴된 수준”이라고 한탄했다.
정치권에서도 갑작스레 발생한 ‘안보 공백’을 둘러싼 공방에 불이 지펴졌다. 야권에서는 윤석열 정부 안보 무능론을 내세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직접 포문을 열었다. 이 대표는 12월 28일 광주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인기가 휴전선을 넘어 서울 인근까지 비행하다 되돌아간 것 같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정말 안방 여포가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 태도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안보태세 부실, 기민하지 못하고 무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대오각성 하라”고 주문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북한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비상 상황이면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은 NG만 연발했다”면서 “진돗개 상황을 발령하지 않고 웬 개 사진만 방출하고 있느냐”고 비판했다. 12월 26일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이 은퇴안내견을 입양한 브리핑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육군 대장 출신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월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통령실 이전에 따라 대공진지가 이동하면서 통합적 시스템 훈련이 안 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북한 무인기 침범 사건 원인으로 대통령실 이전을 꼽은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월 27일 국무회의에서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하는 발언을 했다. 윤 대통령은 “2017년부터 UAV(드론) 대응 노력과 훈련, 전력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고 훈련은 아주 전무했다는 것을 보면 북한의 선의와 군사합의에만 의존한 대북정책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 국민께서 잘 보셨을 것”이라고 했다.
육군 중장 출신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12월 28일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안보정책 참담한 성적표가 배달됐다”면서 “북한은 대남 도발 역량을 전방위적으로 강화했는데 우리는 손발이 꽁꽁 묶였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체결된 9·19 군사합의 당위성을 문제 삼았다.
신 의원은 “지난 5년 동안 국민을 보호하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해 그렇게 정상 운용을 못하게 방해하고 북한 무인기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다 그 성적표가 배달된 것”이라면서 “그 정권에서 이런 행위를 한 사람들이 어떻게 (정부를) 손가락질 할 수 있느냐”고 덧붙였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국방력 약화, 군 해체 수준까지 간 것은 다 문재인 정부에서 축적된 것”이라면서 “이제 출범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윤석열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걸 부끄러워하라”고 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문재인 정부 시절 군사훈련을 시뮬레이션 위주로 시행한 부분이 현실 작전에서 오류를 일으킨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실과 여권이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띄우자, 문재인 정부 정보기관 수장이었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입을 열었다. 12월 29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한 그는 “국민들에게 우리 국방이 완전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면서 “새떼에 놀라서 쏴대고, 풍선에 놀라서 쏴대는 게 말이 되느냐. 북한 놈들이 여기 서울까지 내려와 용산을 돌았다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박 전 원장은 “문재인 하늘이 뚫렸느냐, 윤석열 하늘이 뚫렸느냐”면서 “자기(윤석열) 하늘이 뚫린 건데 왜 남 탓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12월 29일 윤 대통령은 발언 수위를 높이며 대북 강경 노선을 예고했다. 12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대전 유성 소재 국방과학연구소를 방문해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라면서 “도발에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군은 적에게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을, 국민에게 확고한 믿음을 주는 강군이 돼야 한다”면서 “평화를 얻기 위해선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다시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다. 윤 대통령은 “위장된 평화로는 안보를 지킬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기반마저 무너진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12월 2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국방부 장관으로서 북한 무인기 도발 상황에 대응하는 작전의 결과에 대해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