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이어 스타일리시한 악역 눈길…“일대일 싸움 맞붙은 이하늬 엄청 강하더라”

1월 18일 개봉을 앞둔 영화 ‘유령’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 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 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함께 진짜 ‘유령’의 멈출 수 없는 작전을 그린다. 중국 소설 ‘풍성’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설경구가 맡은 무라야마 준지는 군인 출신의 일본 경찰로 경무국 소속이었으나 좌천돼 조선총독부 내 통신과 감독관으로 내려온 인물이다.
좌천에 불만을 품고 어떻게 해서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유령’을 잡는 데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용의자들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 역시 조선인 어머니를 둔 ‘혈통’으로 인해 ‘유령’으로 의심 받으며 일본과 조선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외딴 섬 같은 존재로 남게 된다.
“준지라는 인물이 끝까지 유령인지 아닌지 혼선을 줘야 하기 때문에 알 듯 모를 듯한 모습에 집중해서 연기하고자 했죠. 준지는 태생적 한계에서 오는 콤플렉스로 인해 유령을 잡기 위해 굉장히 집착하는데, 유령을 잡으면 다시 승진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어요. 한편으론 그 시대를 버텨내기 위해 집착하는 모습, 성공을 향한 열망 같은 것들이 안타깝기도 했죠. 강당에서 하는 조선어 연설 장면도 스스로에 대한 증오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촬영했던 기억이 나요.”

“여성과 남성의 싸움으로 보이지 않고 그냥 캐릭터끼리의 싸움으로 보이잖아요. 이하늬 씨가 정말 엄청 강했어요(웃음). 던져서 벽에 처박는 장면이 있었는데, 대역을 쓰자고 했는데도 자기가 직접 하겠다는 거예요. 제가 또 액션을 잘하는 배우가 아니고 기술도 없어서 힘으로만 하는 편인데, 혹시 찍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처음엔 정말 조마조마하더라고요. 그러다 점점 정말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합도 잘 맞았고, 이하늬 씨가 워낙 유쾌하신 분이라 큰 부담이 없었죠(웃음). 다만 이하늬 씨가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악악’ 하고 소리를 질러서 제 목소리가 묻히는 바람에 원래 안 해도 되는 후시녹음을 해야 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액션과는 또 다른 결로 일부 배우들에게 어려움을 선사한 ‘유령’의 특징 중 하나는 모든 대사를 일본어로 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조선어를 굉장히 잘한다’는 설정의 준지에게는 한국어 대사가 어느 정도 주어졌지만, ‘유령’을 색출하기 위한 함정수사를 지휘하며 준지와 날 선 대립을 이어가는 경호대장 다카하라 카이토 역의 박해수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어만 쓸 수밖에 없었다. 잠꼬대도 일본어로 할 만큼 캐릭터에 몰입했던 박해수를 두고 설경구는 “만일 박해수가 없었다면 영화를 제때 시작하지도, 끝내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으로 이번 ‘유령’에서 설경구는 또 한 번 스타일리시한 악역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앞서 그에게 ‘지천명 아이돌’이란 별명을 붙여준 ‘불한당’(2017)의 한재호가 그랬듯, ‘유령’의 무라야마 준지 역시 설경구의 ‘나쁜 모습’을 사랑하는 새로운 팬들의 유입이 기대된다. 팬덤 이야기만 나오면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던 설경구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팬들을 상대로 ‘밀당’까지 하는 여유를 보이는 것을 보면 지천명 아이돌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애교 팬 서비스’ 같은 것에 땀이 삐질삐질 났는데 이제는 제가 나서서 할 만큼 익숙해졌어요(웃음). 사실 그게 정말 감사한 일이거든요. 그렇게 환영해주시는 덕에 저도 큰 힘을 받게 되고, 어떻게 보면 반응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은 일이니까요. 그런데 팬들한테 하는 조련은 저보단 박해수 씨가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엊그제 ‘유령’ 일반시사회 무대에서도 함성을 듣더니 ‘한 번 더 질러주세요’ 하던데 저는 그런 거 못하거든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노영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