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부터 맨몸 격투까지 ‘지천명 아이돌’의 몸 사리지 않는 액션…“부담스러울 만큼 멋진 캐릭터 연기”
비슷한 결의 다른 액션 장르 영화와 이번 작품과의 차별점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배우 설경구(55)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렇게 강조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먼저 넷플릭스의 ‘맛’을 만끽한 또 다른 주연, 박해수와 함께한 그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대답이었다. 본인은 강조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놓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로 ‘액션하는 설경구’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4월 8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야차’는 스파이들의 최대 접전지인 중국 선양에서 국정원 비밀공작 전담 블랙팀과 특별감찰 검사, 그리고 각국 정보부 요원들의 숨 막히는 접전을 그린 첩보 액션 영화다. 극 중 설경구는 ‘사람을 잡아먹는 야차’로 불릴 만큼 냉혹한 블랙팀의 팀장 지강인 역을 맡았다. “대한민국 영화 중에 가장 많이 총알을 쏴 본 것 같다”는 그의 말처럼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다양한 총기 액션부터 격렬한 맨몸 격투 신까지 몸을 사리지 않는 설경구의 액션 종합선물세트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액션은 사실 힘든데(웃음), ‘야차’ 같은 경우는 액션이 없으면 강렬함이 없다 보니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다만 제가 막 액션을 하고 싶어서 미치는 배우가 아니고 좀 더 심플한 액션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 작품을 통해 제가 바라던 액션의 해갈이 이뤄졌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잘 모르겠네요(웃음). 아무래도 제가 액션 배우가 아니고, 액션을 잘하거나 좋아하는 배우가 아니라 액션에 정확한 정의나 생각이 있지 않거든요.”
액션의 갈증이 다 해결된 건 아니라지만 설경구가 연기한 지강인은, 한마디로 ‘폼’ 난다. 다른 요원들에 비해 다소 후줄근한 옷차림과 정돈되지 않은 헤어스타일을 하고도 그에게선 쉽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향기가 풍긴다. 설경구를 ‘지천명 아이돌’의 자리에 올려뒀던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의 한재호가 떠오를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지강인은 마지막까지 꺾일 수 없고, 또 꺾여선 안 될 캐릭터다. 그에 대해 설경구는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로 멋지고 전지전능한 캐릭터여서 그 톤을 좀 줄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불한당’의 한재호는 그냥 나쁜 놈이었죠. 그러다 조현수(임시완 분)를 만나면서 애가 ‘회까닥’한 거지…. 변성현 감독님(영화 ‘불한당’ 감독)이 대놓고 멋지게 만든 인물이라 멋있는 건 인정해요. 그런데 지강인 같은 경우는 캐릭터가 전지전능해서 (멋있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께 ‘이 인물은 발을 땅바닥에 붙이도록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아쉬웠던 건 극 중에서 이 인물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불안감 같은 게 더 잘 보였더라면 긴장감이 더욱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거였죠.”
아쉬움은 있었어도 현장은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화기애애했다. 촬영 시간이 겹치지 않더라도 후배 배우들과 만나는 자리를 꼭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설경구는 ‘야차’의 배우들과도 똑같이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 했다. 자리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 네 번으로 늘어나면서 후배들과 설경구 사이 낯가림의 벽도 금세 허물어졌다. 촬영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묻는 질문에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이수경(문주연 역)과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제가 야시장에서 인파 속으로 끝없이 걸어가는 신이 있는데, 그게 카메라 주위의 200명만 보조출연자고 그 사람들을 벗어나면 그냥 관광객들이랑 장 보러 온 현지 주민이거든요. 한정된 시간 안에 찍어야 하는데 그 인파 안에 전날 자기 분량을 끝낸 이수경 배우가 촬영 중인 걸 모르고 야시장 구경을 나와 있더라고요. 뭘 먹고 있다가 저랑 마주치고 ‘어, 웬일이세요!’ 하고 저한테 음식을 하나 주는 거예요. 저는 촬영 중이고 뒷모습만 나오는 상태에서 ‘지나가, 빨리 지나가!’ 하고 있고…그런 저희 둘을 스틸 기사가 촬영한 게 있더라고요. 그게 재미었어서 기억에 남아요(웃음).”
이렇게 고생 끝에 완성한 작품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속 영화계 빙하기를 피할 수 없었다. 2020년 5월 촬영을 끝마치고 개봉 일자를 조율하던 중 결국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하게 됐다는 게 못내 아쉬울 법도 하다. 그러나 공개 사흘 만에 전세계 넷플릭스 영화 부문 콘텐츠 시청 3위를 기록했고, 그 이튿날엔 한국을 포함한 12개국 1위를 차지했다.
스크린과는 또 다른 흥행의 맛을 느끼고 있는 데에 설경구는 “이 영광과 감사를 박해수 씨에게 돌린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2021년 넷플릭스 최대 흥행작인 ‘오징어 게임’ 속 쌍문동의 자랑, 서울대를 나온 천재 조상우 역을 맡았던 박해수는 ‘야차’에서 고지식하게 정도를 지키는 국가정보원 소속 법률보좌관 한지훈 역으로 지강인과 대립과 협력을 이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극장 개봉이 아니라는 아쉬움은 물론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가 언제 또 이렇게 ‘월드 랭킹’을 해 보겠어요? 그런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하면 아쉬움을 상쇄시킬 수 있죠. 게다가 또 우리 박해수 씨의 영향으로, 박해수 씨의 ‘오징어 게임’ 혜택을 저희가 보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박해수 씨와 ‘오징어 게임’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정말 진심입니다. 그 친구가 그렇게 좋은 일을 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촬영할 땐 몰랐습니다, 그런 친구일 줄(웃음).”
박해수와 더불어 ‘야차’로 한국 밖의 관객 및 시청자들에게도 주목 받고 있는 설경구는 올 한 해 가장 바쁜 영화배우 가운데 한 명이다. 1월 개봉한 이선균과 함께한 영화 ‘킹메이커’를 시작으로 ‘야차’, 그리고 4월 27일에는 천우희, 문소리와 함께 하는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로 다시 관객들 앞에 선다. 코로나 대유행 등 외부 사정으로 인해 개봉 일정이 얽힌 것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배우로서의 설경구를 찾는 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창작자들의 눈길을 모으는 배우로서의 그의 매력에 대해 물어봤다. 설경구는 “밋밋함과 평범함”이라고 정리했다.
“제가 ‘오아시스’ 때 이창동 감독님께 한번 여쭤본 적이 있거든요. 저를 왜 캐스팅하셨냐고. 그때 감독님께서 ‘너는 일반 사람 같아서 그려 넣기 쉽다’고 말씀하셨어요. 뭔가 딱 정해진 이미지가 없어서 그려 넣기가 좋지 않느냐는 말씀이셨던 것 같아요. 그 위에 새 인물을 덧씌우기 굉장히 좋은 사람이라는 게 배우로서의 장점이라면 장점일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