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노인 연금 청년백수 주자” 젊은층 우르르
▲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생정당 오사카유신회의 수장 하시모토 시장. 이 정당은 ‘유산 전액 징수’ 등 충격적인 정책 추진으로 화제를 낳고 있다. |
오사카유신회 수장 하시모토 시장은 “2013년 중의원 선거에서 유신정치숙은 중의원 후보 300명을 내겠다”며 “그중 200명을 당선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현 일본 중의원 의석수가 480명인 점을 볼 때 파격적인 발언이다.
오사카유신회는 하시모토 시장 후원회로 출발해 창당된 지 불과 2년 남짓한 신생 정당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인맥이나 자금력 등 정치적 기반이 매우 약하다. 실제 2011년 4월 일본 지방선거에서 오사카유신회는 쓰디쓴 패배를 맛봤다. 오사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지방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시의회 의석수 확보는 과반에도 못 미쳤다.
이를 의식한 듯 하시모토 시장은 인터뷰에서 “지금 인기는 완전히 거품이다. 기쁘지만 두렵기도 하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목표는 일본을 움직이는 것”이라며 차기 총리직을 노리는 듯한 야심을 드러냈다. 벌써부터 오사카유신회는 사실상 선거공약으로 평가받는 독특한 정책 구상 초안 ‘팔책(八策)’을 내놓았다.
▲ 지난해 4월 오사카유신회의 시의원 연수 모습. 사진출처=오사카유신회 홈페이지 |
하시모토 시장이 이토록 자신만만한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오사카유신회에 대한 열렬한 지지도는 실상 하시모토 시장 개인의 인기에서 비롯됐다. 더군다나 날이 갈수록 그의 인기가 커지고 있는 것. 이를 일컬어 ‘하시즘(하시모토 주의)’, ‘하시모토 붐’이란 신조어가 나올 지경이다. 또 하시모토 시장은 일본인 트위터 팔로어가 63만 명으로 일본인 정치가 중 가장 많다. 올 초 오사카유신회 시의원이 음주운전 후 뺑소니 사고를 내 물의를 빚자 하시모토 시장의 트위터에는 ‘변함없이 믿는다’는 팔로어의 격려글이 다수 올라오기도 했다. 집권여당 민주당은 당황스런 기색이 역력하다. 2011년 말 증세계획을 발표하며 지지율이 뚝 떨어진 차에 소속 국회의원이 유신정치숙에 응모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후지신문>은 앞으로 민주당과 자민당의 공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심사에서 탈락한 이들이 대거 오사카유신회로 이동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올해 중의원이 해산되고 총선이 실시될 가능성도 있어 기존 정당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모두의 당’ 등 군소정당은 오사카유신회에 아예 정당을 통합하자고 제의했다.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대표적 우익인사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도 하시모토 시장을 영입하고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런 인기에 반해 오사카유신회의 정체성은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좌파인지 우파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정책이 교차하는 탓이다. 일본 근대화의 주역 사카모토 료마가 배에서 떠올렸다는 ‘선중팔책(船中八策)’을 빗대서 이름을 붙인 오사카유신회의 ‘팔책’ 초안을 보면 이런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를테면 최저소득안은 매월 전 국민에게 기본 생활비 6만~7만 엔(약 81만~95만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또 연금개혁안은 보험료를 평생 냈더라도 보유한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는 연금을 일절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 내부에서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상속세 강화안은 유산을 상속할 때 상속세를 100% 적용해 실질적으로 전액 세금으로 징수한다는 충격적 내용이다.
통치기구 체제안은 매우 보수적이다. 일왕을 국가원수로 삼는 동시에, ‘군대와 전쟁을 포기하겠다’는 조문인 현 일본 헌법 9조에 대한 개정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단 내용이다. 그런가하면 총리는 직접 선거로 뽑고 참의원은 폐지하며 지자체 행정구역을 통합해 미국처럼 거대한 주 단위로 만들겠다는 행정개혁안도 나왔다.
오사카유신회에서는 “팔책은 낡은 정치를 쇄신할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현실성이 없다”, 자민당은 “도저히 선거공약이라고는 볼 수가 없어서 논평할 가치조차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지지는 절대적이다. 최저소득안이 실시되면 빈곤 대책이 될 뿐만 아니라 세대 간 소득 격차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현재 65세 이상 일본 노인 세대는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부를 축적해 일본의 개인 금융자산의 75%를 소유하고 있다. 또 연금개혁안이 실현되면 기금고갈 문제가 해결된다는 기대감도 나타난다. 즉 청년층은 정작 자기가 노인이 됐을 때 복지를 보장받을 수 없는 사태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시모토 시장 직접화법과 재치 있는 입담도 인기를 얻는 요인이다. 부친의 야쿠자 논란에 대한 그의 대응이 한 예다. 하시모토가 어린 시절 야쿠자였던 부친이 자살했다는 비화를 여러 주간지에서 보도했다. 하시모토는 시장 선거 직전 트위터에 “그 사실이 맞다. 하지만 부모는 부모고 자식은 자식이다”고 당당히 말해 호감도가 더욱 늘었다. 변호사 출신인 하시모토 시장은 예능 방송인을 거쳐 2008년 38세의 나이로 오사카부지사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하시모토 시장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쑥쑥 올라갔다고 한다.
저명한 정치평론가 우치다 다쓰루는 “하시모토 붐 현상 이면에는 부권으로 상징되는 기득권층과 노년층에 대항하는 반골적인 이미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