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안하면서 관두지도 않고… ‘사내 좀벌레들’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최근 일본에서는 속칭 ‘제멋대로 사원’이 늘어나 골머리를 썩는 상사가 늘고 있다.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문자 메시지로 휴가를 쓴다고 통보한다.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 “그런 사소한 점까지 들먹이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항의한다. 또 항상 시킨 일만 할 뿐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하는 법이 없다. 실수를 저질러 회사에 손해를 끼쳐도 절대로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다.
이런 사원은 20~30대 일본의 직장인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신조어로 ‘설탕사원’이라고도 불린다. 자기한테 달콤한 것, 유리한 것만 취한다는 뜻이다. 주간지 <스파>는 그 실태와 배경, 유형 및 대처법을 소개했다.
한중견식품업체 과장은 오전 11시쯤에 신입사원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내용은 ‘과장님~^^. 저 오늘 회사 못 나갑니다~.^^’ 전화 한통 없이 메일만 떡하니 보낸 것도 괘씸한데 황당하게 웃음 이모티콘까지 들어있었다.
다음 날 돌아온 대답은 “비가 와서 왠지 센티멘털해졌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몇 차례나 비슷한 일이 되풀이 됐다. 이에 과장이 “차라리 회사를 관두라”고 했다. 하지만 신입사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어도 그럴 생각은 없다”고 응수했다.
한 의류업체 부장은 거래처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 회사를 옮겨온 사원을 견학 차 데리고 갔다. 이 사원은 중대한 이야기가 오가는데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꾸지람을 했더니 이튿날 아침 부모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아이는 중요한 미팅에 데려가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게다가 “체력이 달리니 야근시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위 사례처럼 부하직원이 자존심은 강한데 자립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으며 비상식적인 처사를 일삼는다면 상사는 참기 힘들 것이다.
설탕사원은 여간해서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게 특징이다. 일명 ‘대롱대롱 증후군’인데, 회사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려 있으면서 그만두지도 않고 그렇다고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다.
<회사를 좀 먹는 설탕사원>을 쓴 일본의 노무사 다키타 유키코에 따르면 제멋대로 사원은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자라난 1980년대 생이 많다. 부모들은 자식을 1~2명만 낳고 금이야 옥이야 키웠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개성을 중시하는 교육풍조를 체득해 내 것을 챙기려는 권리의식이 높고, 자기주장도 곧잘 한다.
이런 사원을 처음 접한 일부 상사는 구속하지 않으면 일을 잘하겠거니 짐작하고 일을 맡긴다. 그러나 설탕사원들은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마련해줘도 부담스러워할 뿐이다. 위에서 시키는 일이 가장 편하다고 느끼고 오로지 명령만 이행한다.
웬만하면 나서지 않는 이유는 사생활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취미생활이나 교우관계 등을 우선시해 회사에서는 최소한 감당할 수 있는 일만 하려 한다.
더군다나 이전 세대와 달리 승진을 하겠다는 욕심이나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다. 한 사회학자 분석에 따르면, 이는 이미 일본사회에서 종신고용이 무너져 회사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일을 통해 꿈을 성취할 생각이 없는 젊은이들은 회사 생활에 굳이 집착하지 않는다. 주어진 일만 적당히 처리해 상사가 딱히 뭐라고 꼬집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기분이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다키타 유키코는 “제멋대로 사원은 화를 내고 꾸짖어 봤자 어차피 귀담아 듣지 않는다”며 “불필요한 마찰과 감정 소모를 줄일 수 있도록 요령껏 대하는 게 필수”라 강조한다.
가장 흔한 예는 ‘프리즌 브레이크’타입이다. 자기 능력보다 다소 어려운 일이나 사이가 좋지 않은 동료와 협업을 명령받으면 잠자코 있다가 정작 일할 때 자취를 감춘다. 탈옥을 그린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처럼 도망가는 타이밍이 재빠르다. 자리를 비웠다가 일이 끝나면 어느새 돌아와 “실은 다른 부서에 일이 생겨 다녀왔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이런 타입은 지시할 때 먼저 일의 진행상황과 마감시한을 확실하게 제시해 부하직원이 일을 방치하지 않도록 한다. 급한 마음에 단순히 재촉만 하지 말고 전체 일정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게 낫다.
바쁜 일을 시켜도 항시 여유롭고 언제 잘려도 괜찮다는 식으로 나오는 ‘여유만만형’은 제일 주의해야 할 타입이다. 이런 타입은 ‘헬리콥터 부모형’이라고도 하는데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대개 부모가 즉시 개입한다. 마치 부모가 상공에 떠있는 헬리콥터처럼 아래를 죽 지켜보고 있다가 자식에게 문제가 생기면 열 일 제치고 끼어든다. 지각이나 결근 시 부모가 회사로 전화한다면 이 유형을 의심해보자.
이 타입은 부모가 회사 사장이나 간부와 인맥이 있어서 취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은 일이 크게 불거지는 경우가 심심찮다. 여유만만형은 우선 본인이 원하는 일이 뭔지 들어보고 그중에서 잘 맞는 일만 맡기도록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남을 자주 깔보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어 하는 소위 ‘위인형’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주자. 이 유형은 “나는 원래 이 회사에 오기에는 아까운 인재인데 어쩌다보니 여기에 오게 됐다”고 말하는 게 버릇이다.
무슨 일을 맡길 때마다 “왜 내가 하느냐”며 화를 내는 ‘몬스터형’은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앞뒤 가릴 것 없이 달려들 때는 냉정하게 대하고, 일을 웬만큼 처리했다 싶으면 모두가 보는 데서 칭찬하자. 몬스터형은 자존심을 대단히 중시한다. 또한 자신감이 넘쳐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체면과 허세를 잘 조절해줄 필요가 있다.
최선을 다하는데 왜 매번 실수를 지적받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무능력형’과 집에서 할 일을 회사에서 줄곧 처리하는 ‘사생활연장형’은 책임이 크지 않은 단순작업만 시키도록 한다. 그래야 상사 자신도 덜 피곤하고 문제에 휘말릴 염려가 없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