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청 “의심 정황 있다” 입장 반해 조달청 묵묵부답…업체 “페이퍼컴퍼니 아냐”
페이퍼컴퍼니는 유령회사를 차린 이후 사실상 사무실을 운영하지 않은 업체를 말한다. 이들 업체는 전문 입찰대행사를 통해 무작위 투찰한 뒤, 낙찰될 경우 직접 공사를 시행하기보다는 하도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법 하도급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기 위해 하도급받은 자를 회사 직원으로 등록하고서는 이른바 ‘실행소장’으로 임명한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 최저도급액으로 진행하는 입찰이기에 통상 추정금액의 약 85%로 입찰 받아, 하도 시 낙찰된 약 85%에서 다시 85% 정도로 하도급 받기에 추정금액의 72.25% 정도 공사금액으로 공사가 이뤄지게 된다. 적정 공사금액보다 현저하게 낮은 공사금액은 결국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이명박정부 때부터 시행한 최저 입찰제는 부실공사로 이어질 개연성이 매우 높다. 적격심사를 강화해 원만하게 공사를 할 수 있는 업체인지 확인하고 계약하는 것이 부실공사를 막는 길”이라며 “경기도처럼 페이퍼컴퍼니 회사를 추려내는 것이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건설업 종사자를 보호하고 부실공사를 예방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국토청은 최근 ‘산청우회 국도건설공사’를 발주했다. 해당 공사는 산청군 시가지를 관통하는 국도59호선을 경호강에 280m 교량을 설치해 우회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산청군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복잡한 시가지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흐름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도급액은 약 125억 원이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공사를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되는 A 업체가 낙찰 받았다는 점이다. 조달청과 부산국토청은 건설업계에 만연한 문제점을 모를 리 없는 데도, 검증 없이 ‘산청우회 국도건설공사’를 A 업체와 계약했다.
A 업체는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평창대로에 소재한 회사로 카카오맵 로드뷰 확인 시 평범한 가정집으로 보였으며, 회사를 운영하는 어떠한 표식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기자가 현장을 직접 찾은 결과, 사무실이 아닌 가정집이나 창고인 것을 확인했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계약자는 사무실을 두고 운영해야 한다. 이 같은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은 부분은 관련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조달청이 직접 회사를 방문하지 않고 단순하게 로드뷰만 확인해도 불미스런 문제를 예방할 수 있음에도, 이를 확인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A 업체 인근에서 회사를 운영 중인 관계자는 “수년간 이곳에 있지만 A 업체가 있는지는 잘 모르고, 그 건물은 가정집인 것으로 안다. 그곳 거주자가 회사를 몇 개 운영하는 것은 알고 있고, 회사 사무실은 평창 시내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A 업체 대표자는 “회사 주소지에서 거주하며 업무를 보고 있다. 회사의 주소지가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페이퍼컴퍼니(부정당업자)는 아니다”며 “운영하는 회사를 안내할 수 있으니 다시 방문해 달라”고 밝혔다. 대표자의 말을 근거로 살펴보면 ‘거주한다’라고 언급한 점에서 사실상 사무실 소재지가 가정집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부산국토청 계약 관계자는 “A 업체 대표자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중에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되는 내용이 엿보였다”며 “조달청 입찰 의뢰로 시행해 계약상 문제가 없다는 통보로 이뤄진 계약이므로 국토청에서 취할 행정조치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조달청 관계자는 A 업체에 대한 적격심사에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정민규 부산/경남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