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기원, 신화와 서사시 곳곳 등장…술은 취하는 음료뿐 아닌 다양한 의미로 해석해야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신이 홍수로 인간을 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이 서사시를 통해 맥주의 기원을 알 수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반신반인인 길가메시가 영생을 얻고자 떠나는 여정을 그린 내용이다. 서사시에는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이라는 노아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우트나피쉬팀은 노아처럼 신이 홍수로 인류를 심판할 것을 알고 방주를 만들어 동물들을 한 쌍씩 태우고, 새를 날려 땅을 확인한다. 이때 우트나피쉬팀은 방주를 만드는 기술자들에게 맥주와 와인을 제공한다. 기록에는 이렇게 술을 주니 강물처럼 마셨다고 나와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지을 때도 노동자들에게 맥주와 소금을 나눠줬다. 이렇듯 술로 임금을 주는 방식은 인류의 오랜 역사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트나피쉬팀에게 홍수가 날 것을 알려준 신이 있다. 수메르 문명의 지혜의 신 엔키(Enki)다. 그는 강과 바다의 신이자 물의 신이었다. 지혜의 신이기도 했다. 엔키가 우트나피쉬팀에게 홍수를 예언한 것은 엔키가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엔키는 인간을 구해준 신이다. 반대로 홍수로 인간을 심판하려고 했던 신은 따로 있다. 바람, 대기, 폭풍우를 관장하는 엔릴(Eelil)이다. 엔릴은 인간의 난잡함을 물로써 심판하려고 했다. 인간에게 살 길을 열어준 엔키는 자신의 딸인 닌티(Ninti)와 결혼한다. 닌티가 자신의 아픈 곳을 치유해 줬다는 이유에서다. 아픈 부위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있지만 대체로 갈비뼈로 본다. 수메르어로 귀부인을 뜻하는 닌(nin)과 갈비뼈, 또는 생명을 뜻하는 티(ti)가 합쳐 닌티(Nini)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후 엔키와 닌티 사이에서 닌카시(Ninkasi)라는 딸이 태어난다. 닌카시는 맥주의 여신이다. 이를 두고 맥주가 수분을 통해 아픈 곳을 치유해 주거나 다친 마음을 고쳐주는 힐링이라는 의미로 이어진다는 해석이 나온다.
인류 최초 서사시에 맥주의 기원이 언급됐다면 그리스 신화에는 와인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는 인간을 사랑해서 고생하는 프로메테우스라는 신이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인간들에게 뺏은 불을 몰래 훔쳐 다시 인간들에게 나눠준다. 이후 이에 대한 벌로 코카서스 산맥 중 가장 높은 산인 카브베기산(5047m)에 쇠사슬로 묶여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인다. 프로메테우스가 형벌을 받았던 이 지역이 와인의 기원지 중 하나인 조지아다. 더불어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 전쟁에는 와인잔 모양의 유래가 있다.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가 사랑한 헬레네의 가슴 모양이 와인잔 모양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와인잔의 전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처럼 인류 탄생 이후 모든 종교와 신화 그리고 역사에는 술이 함께한다. 그만큼 술은 인류가 존재했던 모든 상황에 공존했다고 볼 수 있다. 술을 단순히 먹고 마시고 취하는 음료가 아닌 다양한 의미로 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다.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이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최근 유튜브 채널 '술자리 인문학'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