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부대→암포라→오크통→유리병 저장용기 진화…내구성 높아지고 무게 가벼워져 수출 난제 해결
이 중 가장 성장세를 나타내는 것은 와인 시장이다. 와인은 5년 새 수입량이 두 배로 늘었다. 최근에는 고급 와인이 주류 시장을 선도한다. 보르도와 부르고뉴 등 프랑스의 고급 와인 산지의 1~9월 수입액이 전년 대비 18% 이상 증가했다. 이제 주류 시장의 트렌드는 양보다 질이 된 셈이다.
어떻게 와인은 이처럼 수출이 용이하게 되었을까? 저장용기의 발달이 가장 큰 이유다. 먼저 중동지역의 가죽 부대를 꼽을 수 있다. 중동지역에선 양이나 염소 가죽으로 와인을 운반했다. 비도 적으니 잘 상할 일도 없었다. 무게도 사람이 짊어지고 가기에 적당했다. 낙타 등에 올려도 형태가 잘 바뀌는 가죽부대의 특성상 운반하기도 편했다. 다만 내구성이 약했다. 특히 가죽 내부에서 재발효가 일어나면 탄산이 발생해 팽창했는데 이럴 때 가죽부대가 터지곤 했다. 성경에는 ‘새 술은 새 부대’(New wine into old wineskins)에 담으라는 말도 있다. 이 같은 낡은 가죽 부대는 내구성이 약해 터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항아리 ‘암포라’가 등장했다. 암포라는 고대 이집트,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시대까지 사용된 와인 용기다. 송진을 이용한 코팅으로 공기 및 세균의 침입을 막았다. 양쪽에 손잡이도 있어서 들기도 편했다.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이 많이 사용한 만큼 배로 운반했고 찢어지는 일이 없으니 효용가치는 훨씬 높았다. 암포라 덕분에 와인의 산지 및 생산연도 등 다양한 기록을 넣을 수 있었다. 현대 와인 라벨의 효시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암포라는 너무 무거웠다는 점이다. 50리터짜리 와인을 담은 암포라의 무게는 거의 100kg에 달했다. 즉, 와인 무게만큼 무게가 나갔던 것이다. 또 깨질 수 있는 토기라서 위로 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저장소에 늘 옆으로 세웠고 상대적으로 위 공간은 남아돌았다.
암포라 이후 등장한 건 오크통이다. 오크통의 가장 큰 장점은 가볍다는 것이다. 암포라의 무게에 비해 5분의 1 수준이다. 내구성도 훌륭했다. 한 곳이 깨지더라도 풀어서 다시 만들었다. 그래서 암포라를 사용할 때는 상상하지 못할 일이 가능해진다. 바로 저장용기를 상하로 쌓는 것이다. 이동할 때 마찰력도 크게 줄어든다. 용기의 모양이 타원형이어서다. 그래서 마차가 없어도 굴릴 수 있었다. 여기에 오크나무 특유의 향과 맛이 배어들었다. 범선을 타고 지중해에서 영국 및 북해로 수출을 하게 되면 배 안에서 알아서 자연스럽게 숙성이 진행됐다. 하지만 오크통은 탄산이 있는 와인을 담을 수 없었다. 빈 공간으로 모두 새어나갔기 때문이다. 이것을 해결한 것이 내구성 좋은 유리병이다.
유리는 기원전 4000년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등장했다. 중세시대에는 유리 기술을 보유했던 스페인의 이슬람 계열의 무어인에 의해 와인을 유리병에 담아 마셨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동용으로는 내구성이 약했다. 17세기 유리 산업에 혁신적인 발전이 이뤄진다. 바로 석탄을 이용해 유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기존의 목재로는 높은 온도를 내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석탄으로 이를 해결했다. 오크통에 담던 와인을 이제 유리병에 담아 수출했다. 그리고 각각의 유리병에는 보다 자세한 제조자 및 유통업체들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와인 브랜드의 본격 등장이다.
유리병의 등장은 고대, 중세에 없던 샴페인이라는 와인을 만들어 냈다. 16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기존의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만드는 샴페인은 대부분 탄산이 없는 스틸 와인이었다. 스틸 와인을 영국으로 수출했을 때 봄이 오면 재발효가 일어나면서 탄산이 발생했다. 이것을 따로 담아서 판 것이 샴페인의 효시다.
기존에 내구성이 약한 유리병은 탄산 와인을 담으면 쉽게 깨졌다. 그것도 굉음과 함께 날카로운 유리파편까지 날렸다. 한마디로 폭발이었다. 단순한 병 파손이 아닌 주변을 망가트리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 흉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구성 좋은 유리병이 발명되면서 잘 터지지 않으니 이제 샴페인을 유리병에 넣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와인 수출을 용이하게 만든 것은 코르크 마개다. 코르크 마개가 등장하기 전에는 밀봉이 완벽하지도 않았고, 밀봉하는 과정도 복잡했다. 게다가 한 번 열면 내용물이 상하지 않도록 다시 막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코르크의 등장으로 와인병을 거의 완벽하게 밀봉했다.
다량의 공기로 와인이 산화되는 것을 막아주면서 아주 미세한 양의 산소가 천천히 유입되는 덕분에 유리병 내에서도 와인을 천천히 숙성시킬 수 있었다. 유리병 내 와인 숙성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결국 기존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있었기에 바다 건너 와인이 우리 식탁에도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에디슨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다.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이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최근 유튜브 채널 '술자리 인문학'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