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없는 자리인데 너무 과도한 책정” 비판…고려아연 “실질적인 경영 활동에 대한 보수”
지난해 12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동안 회장 자리를 맡았던 최창근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이로써 고려아연은 기존 최창걸·최창영 명예회장과 함께 총 3명의 명예회장을 두게 됐다.
고려아연의 명예회장은 다른 회사의 명예회장과 무게감이 다르다. 보수가 회장 수준으로 책정된다. 최창걸 명예회장은 지난해 20억 2400만 원을 보수로 가져갔다. 이는 당시 회장인 최창근 명예회장의 보수 17억 3100만 원보다 16.9% 많은 액수다. 최창영 명예회장의 보수도 16억 6700만 원으로 당시 최창근 회장의 보수에 육박했다.
통상 명예회장이라는 직책은 경영에서 물러나 책임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기업에 공로가 큰 원로에게 일정 기간 예우 차원에서 보수를 지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직 회장보다 보수가 많은 것은 이례적이다.
최창걸 명예회장과 최창영 명예회장은 장기간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창걸 명예회장은 2002년부터 명예회장 직함으로 21년째 활동하고 있다. 최창영 명예회장은 2009년부터 14년째다. 지난해 보수를 근거로 하면, 이 2명의 명예회장이 그동안 받은 보수는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보수가 공개된 것은 5억 원 이상 고액 보수를 받는 임직원의 공개 의무가 생긴 2018년부터다. 그해 공개된 최창걸 명예회장의 보수는 18억 5300만 원이며 최창영 명예회장의 보수는 10억 3700만 원이었다. 올해부터는 최창근 명예회장도 명예회장 보수를 받아가기 때문에 이 3명의 명예회장의 보수 총액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일반 주주 입장에서는 배임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고려아연 측은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부인한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자사의 명예회장직은 다른 회사와 다르다”며 “두 분은 사무실에 출퇴근하면서 실질적인 업무를 본다. 이 때문에 두 명예회장에게 책정된 보수액은 적절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비판의 시각을 모두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회사의 경영적인 판단은 이사회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최창걸·최창영 명예회장은 이사회에서 빠졌다. 지난해까지 사내이사였던 최창근 명예회장도 올해부터 이사회에서 빠진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회사 경영에서 물러난 모습이지만 기존 회장 수준의 보수를 받을 만큼 경영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양새다. 특히 미등기 임원이라 법률적인 책임에서도 현직 회장보다 자유롭다.
고려아연은 오너 일가 중심으로 경영진이 구성된 터라 최윤범 회장이 독자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기가 어려운 구조로 알려져 있다. 고려아연을 세운 고 최기호 창업주는 6남 3녀를 뒀는데, 장남이 일찍 사망한 뒤 최창걸 명예회장이 장남 역할을 맡았다. 차남 역할은 최창영 명예회장이, 3남은 최창근 명예회장이 맡았다.
최윤범 회장은 최창걸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장남이 경영을 물려받지 않기로 하면서 최윤범 회장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최윤범 회장이 가지고 있는 지분율은 1.82%로 전체 특수관계자 지분 48.53%에 견줘 그 비중이 미미하다. 또 최윤범 회장 위에는 고려아연의 설명대로 “사무실에 출퇴근하면서 실질적인 업무를 본다”는 명예회장이 3명이나 있다. 이 같은 구조에서 최윤범 회장이 과연 독자적인 경영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상훈 금융경제연구소장(변호사)은 “매년 명예회장의 보수로 수십억 원이 책정되는 것은 과도해 보인며 이들이 별다른 경영 성과 없이 보수를 가져갔다는 비판도 가능하다”며 “설령 이들이 경영 참여의 결과로 보수를 가져갔다고 해도, 책임 없이 이사회 밖에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고려아연의 의사결정 구조가 불투명하다’는 평가를 내리기 충분한 모습이다”라고 설명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이와 관련 “회사의 방침이라 따로 드릴 말이 없다”면서도 “각 명예회장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 회사 경영은 최윤범 회장과 이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