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급물살 분리는 아리송
▲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비록 채권단이 최대주주긴 하지만 박 회장이 개인 최대주주여서 경영권과 오너십을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특히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여서 금호산업을 지배할 경우 아시아나항공도 지배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계열 분리를 원하는 동생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측도 유증 참여 방식을 놓고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박 회장의 주요 주주 복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을 짚어봤다.
지난 4일 금호타이어는 운영자금을 조달하겠다는 목적으로 1720억 원 규모의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눈에 띈 대목이 있었다. 제3자 배정 대상자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418만 2481주),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406만 5693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437만 9562주)이라는 점이다. 박 부사장은 박 회장의 아들이고, 금호재단은 금호그룹 계열인 점으로 미뤄볼 때 박 회장과 그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됐다.
이들 지분을 합하면 11%가량. 우리은행 등 채권단을 제외하고 개인으로서는 최대주주가 된다. 이는 박삼구 회장이 지난 2월 금호산업 유증에 참여해 금호산업 주요주주로 복귀한 데 이어 금호타이어 주요주주로도 복귀한다는 것을 뜻한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유증에 참여하는 돈은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전량 매각한 것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흥미로운 점은 박삼구 회장의 주요주주 복귀는 곧 오너십 회복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모두 여전히 채권단이 50% 넘는 지분을 갖고 있는 최대주주인 데다 채권단 측이 박 회장에게 완전한 경영권을 줄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박삼구 회장과 박세창 부사장 등 박 회장 측이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게 됨으로써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물꼬를 튼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분을 점차 늘려가면서 오너로 복귀할 것이라는 예상도 흘러나오고 있다. 더욱이 금호아시아나그룹 내에서는 박 회장이 여전히 ‘오너 회장님’으로 인식되고 있는 터다.
금호그룹 측은 “그룹의 구심점으로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 회복 수순, 즉 2009년 그룹 위기와 형제간 다툼에 이은 ‘형제 동반퇴진→2010년 11월 경영일선 복귀→2012년 지분 취득’ 과정은 채권단의 동의 아래 이뤄지고 있는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경제개혁연대는 “그룹을 위기로 몰아넣은 사람이 경영일선에 복귀한 것도 비판받아 마땅한데 이제는 경영권마저 되찾으려 한다는 것은 파렴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권단이 유독 박삼구 회장에게 우호적이라는 점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적지 않다. 채권단이 ‘그룹 위기 극복의 적임자’라는 것을 이유로 들지만 처음부터 경영권을 보장해주다시피한 것이나 박 회장이 사재출연을 거의 하지 않고도 별다른 책임을 묻지 않은 것 등을 꼬집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박삼구 회장이 대주주 감자로 모든 것을 책임졌다는 식으로 보인다”며 “채권단이 왜 박삼구 회장에게만 관대한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박 회장의 금호타이어 유증 참여 결정과 관련해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유증 참여도 논란을 일으켰다. 금호석유 측은 공익재단의 재산을 박삼구 회장이 자신의 우호지분을 획득하는 데 사용해도 되는지, 안정적인 배당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금호석유를 버리고 워크아웃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는 게 옳은 일인지 등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문화재단의 금호석유 지분 처분을 승인해줘야 하는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법적·행정적으로 문제없다”며 금호아시아나 측 편에 섰다. 형제간 분쟁과 관계없이 특별히 재산상 줄어들 일이 없다는 얘기다. 경제개혁연대도 “상품이 변한 것일 뿐 재산상 변동 사항이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다만 “과연 순수하게 금호타이어를 살리기 위해 재단까지 끌어들인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금호석유 측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는 입장이다. 금호석유 관계자는 “창업주가 큰 뜻으로 세운 재단의 재산을 사적인 용도로 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라며 “박찬구 회장도 엄연히 창업주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와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의 계열 분리가 사실상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박삼구 회장 측이 금호석유 지분을 모두 매각한 상태여서 금호석유 측이 아시아나 지분(12.61%)을 매각하면 계열 분리가 마무리된다.
오히려 계열 분리에 뜸을 들이는 쪽은 금호석유다. 금호석유는 계열 분리를 그토록 원하면서도 정작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있다. 금호석유가 아시아나 지분을 매각하면 스스로 계열 분리를 할 수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제외시켜달라’는 행정소송을 계속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행정소송 3차 공판은 아무런 결과 없이 끝난 것으로 밝혀졌다. 6월 28일께 4차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금호석유가 아시아나 지분을 매각하지 않을 이유도, 행정소송을 계속할 이유도 없다”며 “결국 박찬구 회장이 형제간 다툼에서 주도권을 놓치기 싫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석유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면 그때 가서 결정할 것”이라며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겠다는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검찰 수사란 지난해 박찬구 회장의 검찰 소환까지 야기했던 비자금 조성 혐의 수사를 일컫는다. 수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터에 금호아시아나를 압박할 수 있고 최소한의 방어 장치가 될 수 있는 ‘무기’를 하나 갖고 있어야 그나마 안심이 된다는 의미다.
박삼구 회장 측이 금호타이어 유증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금호석유 측은 “경영정상화를 위한 것이라면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다만 재단의 재산을 사용한 것은 여전히 불만”이라고 말했다. 박삼구 회장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금호그룹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양상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한편으로 보면 그룹 위기 극복, 경영권 회복 등 박삼구 회장이 원하는 바가 모두 이뤄져가고 있는 셈”이라며 “금호석유 분리만 마무리되면 금호 문제는 큰 틀에서 정리될 듯하다”고 전망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