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 노크하니 ‘성공 문’ 열리더라
“야, 안 돼~. 이제 와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나이도 많고, 그렇다고 특별한 재주가 있거나 전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운전도 잘 할 줄 모르지. 성격도 소심하잖아. 괜히 멀쩡한 집안 거덜 내지 말고,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해.”
보통의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부부의 대화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있다. 직장 정년은 짧아져 중년 남성들의 설 자리가 줄고 있다. 반면 소비 주도권이 여성으로 넘어가면서 여성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여성 창업자의 성공 스토리가 늘고 있다. 그럼에도 전업주부가 창업에 나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최근 출간한 <내 가게로 연봉 1억 번다>(김미영·서울문화사) 속 ‘평범하지만 비범한’ 3인의 창업 스토리에서 아이디어를 훔쳐보면 어떨까.
▲ 이탈리안 레스토랑 ‘깐소네’. |
▲ ‘깐소네’를 운영하는 심은정 씨. |
부산의 대표 상권 서면의 명소 ‘깐소네’. 8500~9000원으로 애피타이저부터 후식까지 풀코스를 즐길 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별다른 광고 없이 전국적으로 점포가 10여 개로 늘어난 음식점이다. 서면에만 직영점 2곳, 같은 듯 다른 이탈리안 레스토랑 2곳을 포함, 총 4곳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공은 심은정 씨(38). 그는 익숙한 이탈리아 음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 시장에 내놓아 성공한 창업자다.
그 시작은 과일빙수를 파는 보드게임 카페 ‘아이스케키’였다. 그러나 계절 메뉴에다 보드게임의 생명력은 길지 않았다. 업종전환을 꾀하던 중 우연히 지인의 스파게티전문점을 방문했을 때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지인 가게의 인테리어와 서비스가 아쉬웠던 것. 아이템을 정한 심 씨는 먼저 성업 중인 파스타 전문점에서 조리 기술을 전수받고 간판을 이탈리아 대중음악을 의미하는 깐소네라고 달았다.
주 고객층은 20~30대 여성. 요즘 음식점 추세는 세분화지만 여성은 때로 한 곳에 푹 눌러 앉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해결하며 긴 시간 수다를 떨고 싶어 한다. 이런 심리를 놓치지 않은 심 씨는 동화 속 풍경 같은 인테리어와 푹신한 소파, 1만 원 안팎으로 풀코스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오래지 않아 손님 대기시간이 1시간으로 늘어났고 심 씨는 2호점 오픈을 결정했다.
이후 5년 가까이 늘 똑같은 메뉴와 서비스를 제공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심 씨는 깐소네와 정반대 콘셉트의 새 가게를 오픈한다. 역시 서면에 강렬한 원색과 독특한 소품, 트랙터를 들여놓으며 이름은 ‘인트랙터’라고 지었다. 메뉴도 떠먹는 피자, 닭 바비큐 등 깐소네에서 큰 변화를 줬다. 손님이 줄을 서기 시작한 건 6개월여 뒤. 인트랙터가 자리를 잡자 그는 99㎡(33평) 정도에서 창업이 가능한 아이템으로 화덕피자전문점 ‘올리브장작’을 론칭, 성공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 커피전문점 ‘윌더스윗’. |
▲ ‘윌더스윗’ 김현숙 씨. |
“커피전문점 하나 갖는 건 여자들의 꿈이잖아요.”
자신 명의의 커피전문점을 소유한 한 재벌가 딸의 말이다. 그만큼 커피전문점은 여성 창업자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아이템 중 하나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대형 브랜드가 노른자위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 틈새는 주택가 상권. 중소형 규모로 창업이 가능한 다양한 브랜드가 등장하고, 일반인도 바리스타 교육을 쉽게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주택가에 소규모 커피숍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의 ‘윌더스윗’은 커피와 쿠키, 치즈케이크 등을 파는 디저트카페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B급’ 입지에 테이블 3개가 전부인 28㎡(8.5평)의 소형 점포지만 한 달 순수익 250만~300만 원을 기록하며 작지만 내실 있게 경영하고 있다. 운영자 김현숙 씨(43)는 초코칩 등 쿠키 4종을 매장에서 직접 구워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 쿠키가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날이 있을 정도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커피전문점을 하기 전 김 씨의 직업은 보험설계사. 지난 2011년 창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사실 윌더스윗은 그가 창업한 것은 아니다. 원래 아이의 과외선생님이 운영하던 커피숍이었던 것. 원 창업자가 갑자기 그만두며 때마침 창업을 결심한 그가 인수했다.
인수 3개월이 지날 무렵 커피 원두를 1㎏에 4만 원 하는 비싼 것으로 바꾸고 상권 분석을 통해 주 고객이 30~40대 주부들이라는 사실을 파악, 운영시간을 오전 10시~오후 10시로 조정했다. 인근 여고생 손님이 늘어나는 오후 시간에는 배고픈 학생들을 위해 구운 식빵 조각을 서비스로 제공해 마음을 사로잡았다. 윌더스윗의 수익은 크지 않다. 그러나 처음부터 많은 돈을 들여 시작하기보다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 내에서 시작하는 것도 실패를 줄이는 한 방법인 셈이다.
▲ 천연화장품 전문점 ‘아로마포미 망원역점’. |
▲ ‘아로마포미 망원역점’ 이명란 씨. |
“조직에서는 직급이 높아질수록 견제가 심해져요. 게다가 나이까지 많은 여자라면 더욱 그렇죠. 고여 있는 물 취급, 나갔으면 하는 분위기….”
‘아로마포미’ 망원역점을 운영하는 이명란 씨(48)는 오랫동안 다닌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퇴사, 창업을 결심했다. 아이템은 자신의 피부가 민감해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 천연화장품전문점. 곧바로 프랜차이즈 본사로 가 상담을 받고 샘플을 받아왔다. 한 달 정도 써보니 이거다 싶었다. 결심을 굳힌 그는 ‘6차선 대로변, 화단, 10평’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혼자서 점포를 찾아 나서 수도권 10여 곳의 후보지를 찜한 뒤 본사에 연락을 취했다.
미리 점포를 봐둔 덕에 오픈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5일. 그러나 점포가 자리를 잡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7년여 전이니 ‘아로마’가 생소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이 씨 자신에게 있었다. 직장생활과 달리 혼자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 매장을 자주 비웠던 것.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건 화분 가꾸기. 다양한 식물들을 대하며 마음이 안정되고 천연화장품의 콘셉트와 맞아 떨어져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왔다.
이와는 별개로 1년간 하루 1시간 가까이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우편함에 넣었다. 그러면서 지역 상권과 소비자 분위기를 파악하고 블로그도 개설했다. 매장에서는 장사한다는 생각보다는 좋은 것을 나눠준다는 마음을 잃지 않으니 시간이 지나며 단골이 늘어나며 은은한 향기를 발하고 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