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난’ 생환 후 ‘그룹장악 다시 고삐
▲ 박용만 전 두산그룹 부회장이 (주)두산 등기이사 후보로 추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왼쪽은 형인 박용성 전 회장. | ||
그러나 두산의 자체평가에 대한 여론의 시선은 아직 냉담하다. 특히 3월 17일 (주)두산 주주총회를 앞두고 참여연대가 참석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번 주총에서 박용만 전 그룹 부회장 등 총수일가의 등기이사직 선임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는 탓이다.
최근 두산 이사회는 박 전 부회장과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을 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형제의 난’ 이후 두산그룹은 지배구조 개선을 공언하면서 3년 내 (주)두산을 지주회사로 전환시키는 한편 이를 이끌 외국인 CEO를 물색중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시민단체는 총수일가가 (주)두산 이사로 추천된 것을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오 전 회장이 물러난 빈자리를 총수일가의 다른 일원이 채우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두산 관계자는 “대주주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창구 역할을 위해 박 전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선임되는 것”이라며 “등기이사진이 대부분 사외이사들로 채워진다”고 밝혔다. 경영 투명성이 오히려 강화되는 것이므로 박 전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에 대한 부정적 확대해석을 말아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박 전 부회장을 필두로 한 이런 박씨네 총수일가의 그룹 지배력 강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두산산업개발 이사회는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을 이사 후보로 올렸다. 박용성 전 회장 바로 아래 동생인 박 이사장은 줄곧 의사생활을 해왔으며 기업 경영과는 무관한 이력을 지녔다. 두산그룹 금융투자 부문 계열사인 네오플럭스에 있던 박 이사장 장남 박태원 상무가 지난 2월 28일자로 두산산업개발 상무로 보직을 옮겨 박 이사장 부자가 향후 두산산업개발 경영 전면에 나설 전망이다.
지난해 ‘형제의 난’에 연루된 두산 총수일가 전원은 올 초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때문에 이번 인사에 대해 교도소행을 면한 총수일가가 그룹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고삐를 죄고 있다는 평까지 등장했다.
참여연대는 회사 공금을 유용해 유죄판결을 받은 박용만 전 부회장 등 총수일가가 다시 경영전면에 나선 것을 비판하며 3월 17일 (주)두산 주총에 참석해 반대의견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받을 여유가 없기 때문에 총수일가에 대한 이사 선임을 막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총수일가의 등기이사 선임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는 것은 그동안 두산이 공언해온 ‘명망있는 외국계 CEO 영입’ 방침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두산의 지주회사가 될 (주)두산을 이끌 새 CEO로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거론된 바 있다. 이에 대해 두산 관계자는 “적합한 외국인 CEO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적 차이 같은 문제도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외국인 CEO 후보자나 영입시기를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며 “앞으로도 외국 CEO 물색작업은 계속될 것”이라 덧붙였다.
그러나 재계인사들은 두산그룹이 박용만 전 부회장 중심 체제로 급속히 개편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형제의 난’ 이후로 그룹 부회장직을 내놓았지만 박 전 부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산업개발 두산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을 아직 갖고 있다. 이번 주총에서 (주)두산의 등기이사로 선임되면 그룹 핵심 계열사 이사회에 모두 참석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형제의 난’ 이후 박용성 전 회장과 함께 경영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박 전 부회장은 꾸준히 두산타워빌딩의 집무실을 드나들며 경영에 관여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까지가 박용성 전 회장을 후광 삼은 박용만 전 부회장의 조용한 ‘원거리 경영’이었다면 3월 17일 주총 이후엔 본격적인 박 전 부회장 시대가 열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두산은 이번 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폐지할 계획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총에서 이사 선출시 소액주주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다. 여러 사람의 이사를 동시에 선임할 때 주주가 자신의 의결권을 한 사람에게만 행사할 수 있는 규정이다. 예를 들어 10주를 가진 주주라면 주총에서 3명의 이사를 선임할 때 다른 이사선임에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게만 30표(10주 곱하기 3)를 몰아주는 것이다. 두산의 집중투표제 폐지에 대해 참여연대는 ‘총수일가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두산 관계자는 “기업들이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마련해 놓고 있지만 제대로 시행하는 회사가 몇이나 있냐”고 반문한다. 이 관계자는 “집중투표제 폐지는 복잡한 임원 선임 절차를 효율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신 서면투표제를 최초로 도입한다. 좋은 점도 같이 봐 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두산은 주총에서 선임되는 등기임원이 아니라도 회장직을 맡을 수 있게끔 정관을 개정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박용성 전 회장의 ‘화려한 컴백’을 위한 조치란 관측도 제기된다. 그러나 두산 관계자는 “이를 악용할 생각이 있다면 굳이 박 전 부회장에 대한 등기이사 선임을 추진하겠는가”라고 반박한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두산 사태에 대해 충분히 반성하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의 비난여론은 감수해야 할 몫이다. 앞으로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선진지배구조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두산의 주주총회가 이번 정기주총 시즌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