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이사회 보류 요구 무시한 가스공사에 경고 조치…현 정권과 채희봉 전 사장 갈등 표면화 분석도
#세노로 가스전 사업이란?
한국가스공사는 2011년 일본 미쓰비시와 합작법인 ‘Tomori E&P Ltd’를 설립해 인도네시아 세노로 가스전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의 주요 내용은 세노로 가스전에서 가스를 개발한 후 한국과 일본에 LNG를 수출하는 것이다. Tomori E&P Ltd는 세노로 가스전 사업 지분 20%를 갖고 있고, 한국가스공사와 미쓰비시는 각각 Tomori E&P Ltd 지분 49%, 51%를 보유 중이다. 한국가스공사가 세노로 가스전 사업 지분 9.8%를 갖고 있는 셈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사들인 LNG를 한국에 판매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었고, 적지 않은 배당 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한국가스공사는 2018년 들어 인도네시아 당국과 가격 협상에서 충돌을 빚기 시작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인도네시아에 LNG 판매가 인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국제중재소송까지 제기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이런 와중에 Tomori E&P Ltd는 지난해 4월 인도네시아 정부와 세노로 가스전 사업을 2027년에서 2047년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가스공사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합작법인인 Tomori E&P Ltd의 세노로 가스전 사업 연장 여부는 주주사의 만장일치 승인사항이다. 한국가스공사는 미쓰비시가 단독으로 주도해 주주 의결 없이 인도네시아와 계약을 맺었고, 이는 주주협약의 중대 위반 사항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한국가스공사는 2022년 6월 이사회를 열고 기존 계약 기간인 2027년까지만 세노로 가스전 사업에 참여하고, 해당 사업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재의 사업 조건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울뿐더러 미쓰비시와의 파트너십에도 금이 갔기 때문이다. 동시에 국제분쟁 절차 착수를 위한 논의에도 들어갔다.
채희봉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쓰비시에서 생산물 분배 계약 연장과 관련해서 한국가스공사의 동의를 받지 않고 무단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며 “주주총회에서 미쓰비시의 의결권을 제한한다거나 배당금 수령 권한 제한 등 계약서상 구제 조치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와 한국가스공사의 갈등
산업부는 당시 한국가스공사에 공문을 통해 “분쟁 절차에 착수할 경우 승·패소 가능성 및 승소 시 실익과 패소 시 비용을 고려한 대응 전략, 추가 분쟁 발생 위험 등에 관한 전반적인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며 “산업부에 관련 검토 내용을 보고하고, 후속 대응 계획에 대한 이사회 안건 상정은 산업부 검토 완료 이후 진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산업부에 “주주 권리 보호를 위해 신속한 대응이 절실한 상황이므로 이사회 후속 조치사항으로 외부 법률 자문 결과를 바탕으로 중재·소송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고 회신했다. 이에 산업부는 승·패소 가능성이나 패소 비용 등 중요 사항에 대한 검토가 누락됐다는 이유로 해당 내용 보완 후 재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산업부는 한국가스공사에 세노로 가스전 후속 대응 관련 이사회 개최 보류를 요구했다. 산업부의 검토가 완료된 후 이사회를 개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가스공사는 산업부가 요구한 승·패소 가능성 및 패소 비용 관련 보고를 하지 않은 채 지난해 10월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미쓰비시에 대한 법적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산업부는 한국가스공사 기관에 경고 조치를 내리고, 담당 직원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 한국가스공사법과 그 시행령에 따르면 해외 천연가스 개발 사업 참여와 천연가스의 장기 도입 등에 관련된 내용은 산업부 장관이 감독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가스공사 사측 차원에서 일부 이사들에게 허위 보고를 한 의혹도 받고 있다. 산업부의 요청사항 이행 여부를 이사들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긴급을 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 회의 개최 7일 전까지 회의 목적과 주요 내용을 회의 구성원에게 통지해야 한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해 12월 산업부에 재심의를 신청했다. 한국가스공사는 공기업의 자율성과 사안의 시급성으로 인해 이사회 개최를 강행했다는 입장이다. 또 산업부에 관련 자료 제출이 어렵다는 점을 구두 설명하는 등 요청 이행을 위해 노력했으며 이사회 허위 보고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산업부는 최근 한국가스공사의 재심의 요청을 기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가스공사가 주장할 정도의 시급성은 없었으며 증언으로 미루어 보아 허위 내용을 이사진들에게 보고한 사실도 확인됐다는 이유에서다. 산업부의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가스공사는 이에 대한 후속 조치 진행 여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쓰비시와의 법적 대응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한국가스공사와 산업부의 갈등이 이어지면 부담이 커진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와 채희봉 전 사장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채 전 사장의 임기는 지난해 7월까지였지만 후임 사장 인선이 늦어지면서 지난해 12월까지 자리를 지켰다. 산업부가 세노로 가스전 사업 관련 자료를 요구했을 때도 채 전 사장이 한국가스공사를 이끌고 있었다. 채 전 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 행정관을 역임했고, 문재인 정부 때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으로 일하는 등 더불어민주당과 인연이 깊다. 채 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2021년 채희봉 전 사장을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채 전 사장은 청와대 비서관 시절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의향을 부당하게 받아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미쓰비시와의 향후 대응 계획이나 산업부의 징계와 관련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