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든 정치권 관심과 한전 악화된 재무 상황 변수…한전 “지분 31% 보유 자유총연맹과 협상 진행 중”
한전은 2003년 한전산업개발 지분 51%를 자유총연맹에 매각했다. 정부는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KT 등 여러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한전의 한전산업개발 지분 매각도 민영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한전산업개발이 2010년 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후 자유총연맹의 지분율은 31%로 줄었지만 여전히 최대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전산업개발은 발전설비 운전·정비 및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으며 연매출 규모는 3000억 원이 넘는다.
한전산업개발은 민영화 후에도 대부분 일감을 한전에 의존하고 있다. 한전산업개발의 2022년 1~3분기 매출 2557원 중 약 86%인 2191억 원이 한전 및 그 관계사로부터 발생했다. 한전으로서는 한전산업개발에 외주를 맡김으로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한전산업개발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우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한전은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자유총연맹의 한전산업개발 지분 재매입을 추진하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란 한국발전기술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고 김용균 씨가 업무 중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사건이다. 사고 발생 후 노동계를 중심으로 외주 업체 및 비정규직 직원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불거졌다.
이에 정부는 한전을 통해 한전산업개발을 공공기관으로 편입시킨 후 발전 공기업의 설비 담당 직원을 한전산업개발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한전의 설비를 담당하는 외주 업체는 한전산업개발 외에도 일진파워, 금화PSC 등이 있다.
한전도 한전산업개발 지분 인수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종갑 당시 한전 사장은 2020년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한전이 (한전산업개발의) 1대주주가 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부에서 결정을 해주면 그에 따라서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한전의 한전산업개발 지분 인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전이 지분 인수 비용 등을 검토하기 위해 한전산업개발 실사를 추진했지만 자유총연맹의 협조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한전은 2022년이 돼서야 한전산업개발 예비실사를 시작했지만 그 이후 진전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자유총연맹 입장에서는 낮은 가격에 한전산업개발 지분을 매각할 이유가 없다. 국세청 공익법인공시에 따르면 자유총연맹은 지난해 한전산업개발 배당금으로 21억 원을 수령했다. 자유총연맹의 지난해 총 수입이 약 120억 원임을 감안하면 무시 못 할 비중이다. 일요신문은 자유총연맹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연맹 관계자는 “현재 담당 직원이 워크숍에 있어서 답변이 어렵다”라고 말했다.
한전은 지난해 자유총연맹의 보유 지분 전부가 아닌 일부만 매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심지어 매각 협상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한전산업개발을 대체할 다른 자회사를 신규 설립하는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신규 설립한 자회사를 통해 설비 담당 직원을 직고용한다는 계획이었다. 비슷한 예로 한전은 2019년 자회사 한전MCS를 설립했다.
한전MCS는 한전의 위탁 검침 업체 6곳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검침 업무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을 공공기관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시켰다. 한전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2021년 말까지 한전산업개발 인수 협상을 마무리 지으라는 일각의 요청이 있었다”며 “이에 한전은 당시 신규 자회사를 설립해서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하곤 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한전의 태도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국회에서도 한전산업개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모양새다. 2020~2021년 국정감사 당시에는 한전산업개발이 산업통상자원부 주요 이슈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한전산업개발 관련해 질의한 국회의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시절 발전사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현재 여당은 비정규직보다는 다른 곳에 관심이 많고, 한전도 정치권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한전산업개발의 최근 주가는 약 8500원 수준이다. 이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자유총연맹이 보유한 한전산업개발 주식 가치는 859억 원이다. 그런데 한전은 지난해 1~3분기 영업손실 21조 8342억 원을 기록하는 등 최악의 실적을 거두고 있다. 부채비율도 지난해 9월 말 기준 352.60%에 달한다.
오히려 한전 등 공공기관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보유 중인 자산도 매각하고 있다. 발전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필리핀 SPC파워코퍼레이션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고, 한전 자회사 한전KDN은 YTN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다. 한전과 그 관계사는 지분뿐 아니라 부동산 등 유휴 자산 매각을 통해 올해 총 1조 70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에서 수백억 원의 지출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전의 한전산업개발 지분 인수가 늦어지면 그만큼 발전 공기업의 외주화 및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늦어지게 된다.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외주 업체 및 비정규직 직원은 여전히 수천 명에 달한다. 한전산업개발 노동조합 관계자는 “최근 일부 석탄발전소가 폐쇄되면서 고용 불안을 느끼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다른 컨설팅도 받아봤는데 공공기관이 되는 것이 최선의 고용 보장 방안이라고 생각하며 이제는 지분 매각과 관련한 작업을 좀 마무리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전 관계자는 “자유총연맹과 협상 중에 있다”고만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