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와 달리 대형 수익원 부족…정치권과 미묘한 갈등 조짐
#전기·가스요금 동결 논란 앞과 뒤
한전과 한국가스공사,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수개월 전부터 기획재정부(기재부)에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요청했다.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지난 12월 13일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수급불안으로 인해 최근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해 미수금이 연말 기준 1조 5000억 원, 2022년 3월 말 기준 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소한의 수준이라도 인상해 추후 급격한 인상요인을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종갑 전 한전 사장도 “전기요금의 경우 한전은 적자누적으로 70조 원을 차입했는데 이는 국민 1인당 140만 원에 해당한다”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상을 통제하려면 국민(전기소비자)들께 나중에 차입 원리금까지 포함해 더 많이 부담하게 된다는 점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전했다.
한전과 한국가스공사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기재부는 전기·가스요금을 2022년 1분기까지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민심 이탈을 막기 위해 전기·가스요금을 동결했다고 보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선거 때가 되니 갑자기 공공요금도 모두 동결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인가”라며 “조삼모사도 아니고, 국민을 원숭이로 보는 것이 틀림없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에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특정 시기에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물가 부담이 커지고 기대인플레이션까지 작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평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같은 듯 다른 한전과 가스공사
전기·가스요금이 동결되면서 당분간 한전과 한국가스공사의 재무 부담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한국가스공사는 해외 자회사들이 좋은 실적을 거두면서 2021년 실적이 나쁘지 않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의 매출은 2020년 1~3분기 15조 4514억 원에서 2021년 1~3분기 17조 9251억 원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6386억 원에서 8267억 원으로 상승했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한국가스공사에 대해 “기존 가파른 실적 개선이 기대되던 호주 GLNG 프로젝트 외에도 이라크 주바이르, 바드라 프로젝트의 실적 개선이 눈에 띈다”며 “4분기 실적에 기대할 요소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한전의 사정은 다르다. 한전의 매출은 2020년 1~3분기 43조 8770억 원에서 2021년 1~3분기 45조 564억 원으로 증가했지만 영업이익 3조 1526억 원에서 영업손실 1조 1298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4분기에도 대량 손실이 예상된다. 중국의 전력난으로 인해 급상승한 국제 석탄 가격이 원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예정이다.
한전의 해외 사업도 예전만 못하다. 2016년 4조 원이 넘었던 한전의 해외 매출은 2021년 1~3분기 1조 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전이 해외 석탄발전 사업을 크게 줄인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를 대체할 만한 대형 신사업이 없다는 점이다. 마땅한 수익원도 없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동결은 한전 실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전이 신사업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한전과 그 자회사들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했지만 가시적인 실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일각에서는 한전의 신사업 부진 원인을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최영호 한전 감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광주광역시 남구청장을 역임했다. 또 김영문 한국동서발전 대표, 김상철 한국동서발전 감사, 김용성 한전KPS 사외이사, 최용성 한전KPS 사외이사 등은 여당 소속으로 출마 경험이 있거나 청와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월 “전문성과 자질이 모두 부족한 낙하산 임원들이 공공기관을 점령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코드 인사에 대한 철퇴가 필요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전 “해외 프로젝트 재무 개선 도움”
정승일 한전 사장은 지난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전의 영업적자에 대해 “적정원가와 적정보수를 보장하도록 하는 공공요금 산정 원칙이 있다”며 “전력생산에 필요한 원가를 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정승일 사장은 지난 11월 기자간담회에서 “2030년 원전 비중 24%가 적정하다고 보지만 국민 다수가 이보다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라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거리가 있는 발언이었다. 파장이 커지자 한전 측은 “원전 없는 탄소중립이 가능하겠냐는 우려나 걱정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볼 문제라는 것”이라며 “현재 원전 비중에 대한 재고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전은 전기요금 동결 사실을 발표하면서 “정부로부터 통보받은 유보 사유는 국제 연료가격이 급격히 상승한 영향으로 조정요인이 발생했으나 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 상승률 등으로 국민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기요금 동결이 정부의 판단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채 사장이 SNS 등을 통해 가스요금 인상을 주장한 것과 비교하면 정 사장의 행보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요금과 원전 등에서 정부와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긴 했어도 요금 산정과 관련해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없이 수동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결과적으로 전기요금이 동결되면서 정승일 사장의 어깨도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전의 적자가 누적되면 그 부담을 메우기 위해 전기요금을 급격하게 올리거나 세금을 동원해야 한다. 전기는 대부분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므로 결국 한전의 손실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현재로는 뚜렷한 실적개선책이 보이지도 않는다.
이와 관련, 한전 관계자는 “약 40개의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수익이 증가하면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2022년에 적용될 기후환경요금 등은 계속 정부와 협의하고 있으며 결과에 따라 한전의 수익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과의 관계나 낙하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만 답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