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직 우위)·폭(폭력 불사) 정치’ 국민이 보고 있다
▲ 지난 12일 통합진보당 폭력사태가 일어날 당시 긴박한 상황. 단상에 중앙위원과 당원들이 난입하자 유시민·조준호 공동대표와 행사진행요원이 심상정 공동대표를 보호하기 위해 에워싸고 있다. 연합뉴스 |
‘2,198,082’
지난 4·11 총선에서 유권자 219만 8082명이 통합진보당에 정당투표를 했다. 통진당은 정당지지율 10.3%를 기록, 새누리당(42.3%) 민주통합당(36.8%)에 이어 제3당을 차지했다. 득표율만 놓고 보면 보수-진보 양당 체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통진당은 상당한 민심을 얻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통진당에 대한 이러한 지지는 ‘진보’에 대한 국민들의 순수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공통된 견해다.
이번 총선 때 통진당에 투표했다는 한 40대 직장인은 “40~50대 중도층은 70~80년대 학생운동을 경험한 세대다.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대다수가 사회변혁에 대한 고민을 옛날에 했던 세대다. 이들은 사회에 진출해서도 진보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여준다. 특히 자신들을 대표해서 희생해준 운동권 출신 정치인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다. 통진당을 위시한 진보정당이 지난 2002년 지방선거 이래 도입된 비례대표제에서 선전하는 것도 이런 순수한 열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통진당은 국민들의 순수한 열정과 함께 물리적 지원도 많이 받고 있다. 18대 국회에서 120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았고 이번 19대에서는 13석 기준으로 연간 금액 182억 원을 지급받게 된다. 당내 경선도 민주적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하게 치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 세금으로 유지되고 있는 통진당이 ‘당원의 뜻이 국민보다 우선’이라는 희한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박효종 서울대 교수 등 공동대표 6명)는 최근 통진당의 해체와 국고보조금 전액 환수를 주장하고 나섰다.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경선 부정으로 당선된 의원의 경우 당선무효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강경론도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통진당 주변에서는 “당권파가 야권연대를 ‘볼모’로 이번 총선과 대선 정국에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상당히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를 해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통진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옛 민주노동당의 한 핵심 간부는 이에 대해 “애초 통진당 당권파들은 유시민-심상정 등과의 연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자신들이 주류이니까 어떻게 해서든 의원직을 많이 배출시키려 했다. 그 첫 출발이 한명숙 민주당 대표와의 야권연대 협상이었다. 어리숙한 한 대표가 당권파 얼굴마담 이정희에게 완전히 놀아나지 않았느냐. 애초 30석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의석을 요구해 지루한 협상을 하면서 결국 실리를 챙겼다. 그리고 야권연대 성사 다음 순서가 바로 유시민-심상정 등 비주류들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었다. 비례대표 경선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류 측 후보를 밀었고 거의 성사 단계까지 왔지만 국민참여당에서 폭로를 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꼬인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당권파가 총선 야권연대 과정에서 큰 실리를 챙긴 것에 고무돼 향후 대선 때도 야권연대를 세력확장의 기회로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야권연대 성사 조건으로 통일부 환경부 등 장관직까지 노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이석기 김재연 등 당권파들이 막장대처를 하는 것일까. 먼저 NL 특유의 조직 응집력과 집단 최면적 자기 확신이 작동하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운동권 출신인 민주통합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조직논리가 먹혀들지 않을 경우 당 대표에게 폭력까지 행사하는 게 NL 출신 당권파들의 기본적 속성이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것도 조직의 이름으로 용서된다. 80년대의 엄혹한 시대에서도 살아남은 그들이기에 지금과 같은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식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경기동부연합은 성남 등 수도권 이남의 빈민촌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남다른 공동체의식과 조직문화가 있다. 군대보다 더한 위계질서와 폭압적 조직논리가 그들의 생존방식이었다는 게 지금의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향후 전개될 정치적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민주통합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이에 대해 “어차피 당권파는 많은 것을 잃었다. 지금 욕을 조금 덜 먹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의원직 사수로 제도권에서 딱 엎드려 있다가 앞으로 남북관계 해빙무드가 올 경우 NL의 친북 성향이 그동안 지속돼온 남북 강경대치에서 일종의 충돌완화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제도권에서 확실한 역할을 해서 정파의 위상을 높이고 재기를 모색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번 사태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통진당 당권파의 ‘패악질’은 민심을 거스르고 정치행위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몰고 가는 막장정치라는 게 중론이다. 먼저 통진당 당권파의 저항으로 민주통합당에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민주통합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대선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다. 통진당과 진보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사태를 통해 국민들이 두 정당을 점차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장 깨끗해야 할 통진당마저 저런 부정과 막장정치를 한다. 차라리 새누리당이 상대적으로 낫다’라는 여론이 형성될 경우 대선은 물 건너 간 셈”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를 느긋하게 즐기면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최근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등 진보당 당권파들이 새누리당 등 우파 세력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주사파 출신인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가 19대 국회에 입성할 경우 친북세력이 민감한 국가 비밀에도 접근하는 등의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며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통진당 사태가 자칫 친북세력을 둘러싼 이념 대결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19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민생처리는 또 뒷전으로 물러나고 친북세력 척결의 프레임이 형성될 경우 국론분열로 인한 국익 손실로 이어질 전망이다.
통진당을 사랑하며 지지해준 219만8000여 명의 숭고한 뜻이 이석기 김재연를 비롯한 당권파의 반역사적인 막장정치로 훼손되고 있다. 그들이 금배지를 얻을지는 몰라도 금보다 소중한 여론을 짓밟는 이상, 대의정치는 설 자리가 없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 이정희 공동대표. 유장훈 기자 |
폭력 사전계획설 모락모락 그날, 이정희 뜨자 험악해져
▲지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통합민주당의 일부 전신인 민주노동당은 국고보조금 263억 7737만 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지난 2000년 1월 창당 이후 지금까지 당 공식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당이었다. 태극기 대신 민노당 기를 걸고, 애국가 대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이를 보다 못한 유시민 전 공동대표는 “(당 행사에서) 애국가와 국민의례를 거부하는 게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냐”고 당 지도부와 핵심 간부들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이번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 사건에서도 당권파들은 당원의 뜻을 가장 존중한다며 저항하고 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연명하면서도 당원의 뜻을 우선한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이렇게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 통진당이라면 당연히 국고보조금도 전부 환수해야 한다. 국민 무시하고 당원 존중하면 앞으로 당비로만 살아라!
▲진보진영은 민주주의의 첨병쯤으로 인식된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따르고 그 과정을 존중한다. 하지만 통진당 당권파들은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 내내 꼼수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통진당에 따르면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는 지난달 17, 24일 각각 등록을 마친 것으로 돼 있다. 이 당선자는 이청호 통진당 부산 금정위원장이 지난달 18일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을 처음 터뜨리기 하루 전에 등록했다. 당이 ‘경쟁부문 비례대표 후보의 총사퇴’ 안건을 통과시켰지만 그 당사자들은 그것을 무시라도 하는 듯 ‘의원 되는 절차’를 착착 진행해온 것이다.
또한 이들은 비례대표 사퇴 압박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지난 5월 17일 소속 지역당을 서울시당에서 경기도당으로 옮겼다고 한다. 당의 출당 조치를 면하기 위해 당권파 측 당기위원(징계 심사위원)들이 많은 경기도당으로 옮기는 ‘꼼수’를 썼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19대 국회가 출범하는 30일 전까지 스스로 사퇴하거나 탈당하지 않으면 국회의원으로서 회기 중 불체포특권, 면책특권 등의 혜택을 누리며 세비를 받게 된다.
▲통합진보당 5·12중앙위원회에서 일어난 당권파의 대표 집단폭행은 진보진영에 조종을 울리는 극단적 폭력사태였다. 집단린치를 당했던 조준호 전 공동대표는 지난 16일 목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당권파의 폭력이 사전에 교묘하게 기획된 ‘고의’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정희 공동대표의 회의장 이탈 → 당권파 중앙위원·참관인들의 집단 회의 방해 → 강령 개정안 처리 동시에 당권파들의 단상 점거와 폭력 등 일련의 과정이 일사불란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비주류 측 유시민 전 공동대표는 최근 “제가 느끼기론 매우 잘 준비하고 현장에서 아주 조직적으로 지휘해서 폭력사태를 일으켰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권파 핵심 이석기 당선자는 중앙위 폭력사태의 책임이 당권파에게 있다는 비판에 대해 “(당권파가 주도했다고) 추정하거나 표현하는 자체가 대단히 폭력적”이라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그는 특히 “아주 일부에서는 강행처리가 폭력을 유발시키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오히려 폭력사태의 책임을 심상정·유시민·조준호 전 대표 쪽에 돌리려 했다. 현장에서 당권파가 폭력을 행사했다는 숱한 사진과 동영상까지 부정하는 셈이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이지요’!
▲통합진보당 사태는 한 달이 다 되도록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만약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 이런 사태를 맞았다면 통진당의 비난 보도자료는 봇물을 이뤘을 것이다. 당이 진통 끝에 혁신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지만, 당원의 절반 정도를 확보하고 있는 당권파가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대위 쇄신안의 핵심인 ‘경쟁부문 비례대표 총사퇴’가 현실화할지도 불투명하다.
정가에서는 “이번 사태 해결의 관건은 이석기 당선자(비례대표 2번)의 사퇴 여부에 달려있다”라고 보고 있다. 당권파의 실세로 지목받고 있는 데다가 비례대표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그가 사퇴하면 나머지 다른 쟁점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 그가 물러나는 것만이 유일한 ‘정치적 해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 잇따라 언론에 모습을 비치며 “사퇴를 해도 일련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 악화할 것으로 본다”며 ‘사퇴 불가’ 의지를 완강하게 밝혔다. 그는 자신의 사퇴 문제와 관련해 “당원들에 의해서 직접 선출된 후보인 만큼 당원들 의사와 요구를 묻자는 게 제 견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가 국민의 국회의원 선택권을 훼손한 헌정문란 행위임에도 여전히 그는 당원의 선택 문제로 보고 있다. 용가리 통뼈, 얼마나 버티게 될까?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