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반찬가게 사장님’ 역할로 로코퀸 등극…다음 작품에선 ‘전설적 킬러’로 또 한번 변신
17년 만에 ‘로코퀸’으로 다시 자리매김한 배우 전도연(50)은 밝고 후련해 보였다. 딸의 대입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치열한 학원 전선에 뛰어든 국가대표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으로 보낸 8개월여 시간이 그에겐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충무로 대표 배우, 멜로 퀸, 칸의 여왕…. 그의 이름 앞에 붙은 무거운 수식어로부터 살짝 벗어난 tvN 토일 드라마 ‘일타 스캔들’을 통해 전도연은 대중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 안의 밝은 면모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제 안에 그런 (밝은) 캐릭터가 있어서 그걸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아마 저 자신도 스스로에게서 행선이 같은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해요. ‘일타 스캔들’을 빼놓지 않고 본방 사수하면서 볼 때 저조차도 저렇게 밝게 웃는 모습을 스크린에서 본 지가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그런 제 모습을 너무 보고 싶었거든요. 주변에서도 저를 잘 아는 지인들은 그런 모습을 아는데, 이제는 다른 분들도 알게 돼서 너무 좋더라고요(웃음).”
‘일타 스캔들’ 속 행선은 전도연의 말대로 무한하게 밝은 캐릭터다. 사람을 제대로 의심할 줄도, 미워할 줄도 모르고 그저 햇살처럼 주변을 비추고 그 빛을 받은 밝은 면만을 바라보려 애쓴다. 오지랖도 넓어 자신과 조금이라도 연결된 사람들에겐 성큼 다가가 선을 넘기도 한다. 철저하게 개인주의를 표방하던 까칠한 일타 수학 강사 최치열(정경호 분)과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행선의 성격을 두고 전도연은 “저도 처음엔 (연기하기) 부담됐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행선이의 텐션이 제가 연기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어서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땐 고사했죠(웃음). 그런데 작가님을 만나 뵀을 때 ‘이 작품은 판타지 로맨스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였으면 좋겠고, 그걸 전도연 씨가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셔서 정리가 되더라고요. 연기할 때 그 사랑스러움을 다 담진 못했지만요(웃음). 다만 이 캐릭터가 정말 사랑스럽긴 해도 처음엔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폐 캐릭터, 밉상 캐릭터로 보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한편으론 행선이가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게 굉장히 멋지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시청자 분들도 제가 느끼는 걸 그대로 느끼고 그 모습을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싶었고요.”
배우의 걱정과 다르게 행선은 시청자들의 당연한 사랑을 받았고, 특히 사랑스러움을 배가시킨 패션은 방송이 끝날 때마다 매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주로 청바지를 입는 행선의 캐릭터성에 맞춰 매화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는 전도연의 완벽한 ‘핏’ 역시 시청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운동선수들이 방송에 나와서 일상을 보여주시는 걸 봤는데 운동할 때와 다른 조금 더 여성스러운 모습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행선이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서 영주(이봉련 분)와 같이 머리에 리본을 달거나 꽃무늬 옷을 입거나 했죠. 그런데 반찬가게에서 일하고, 활동성도 있어야 하니까 너무 치렁치렁하면 안 됐거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청바지였는데 끝날 때까지 다 청바지만 입고 나올 줄은 몰랐어요(웃음). 감독님이 촬영 중간에 ‘이렇게 청바지 잘 어울리는 사람 처음 봤다’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 생각엔 그냥 입으면 다 잘 어울리는 거 아닌가 싶고(웃음).”
그런 전도연이 만들어 낸 사랑스러운 행선과 수차례 엎치락뒤치락 사랑싸움을 거쳐 결국 연인이 된 치열 역의 정경호는 전도연과의 호흡을 “무한한 영광”이라며 거듭 강조했었다. 먼저 인터뷰를 진행한 정경호의 기사 헤드라인 대부분이 ‘영광’ 일색인 것을 본 전도연은 “그런 말은 저한테 안 들리게 제 뒤에서 해주셨으면 좋겠다”며 민망해 해 기자들을 웃게 만들기도 했다.
“아휴, 부담스럽고 민망하죠. 영광이라니(웃음). 경호 씨는 그런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분이라 처음엔 부담되더라고요. 굉장히 좋은 말인데 사람을 불편하게 해(웃음). 사실 경호 씨와 연기하면서 느낀 건 최치열이란 캐릭터와 정경호 씨 사이에 간극이 없다는 거였어요. 둘이 닮은 부분도 있었고, 경호 씨가 굉장히 따뜻하고 자상하면서 주변을 잘 챙겨주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사람이 연기를 하니 최치열도 제게는 그런 인물로 보이더라고요.”
행선과 치열의 알콩달콩 로맨스도 ‘일타 스캔들’을 이루는 큰 줄기였지만, 치열한 입시 전쟁의 어두운 면을 다룬 사회고발도 스토리의 한 축을 담당했다. 실제 중학생 딸을 두고 있는 전도연 역시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 준비가 돼 있진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전도연은 “저는 아마 행선이만큼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대치동 맘은 아니고 행선이 과일 것 같은데 아마 그만큼은 못하지 싶어요. 그런 것도 엄마가 다 알아서 해줘야 하는데 저는 너무 모르거든요(웃음). 공부는 사실 아이가 하는 거니까 만일 하고 싶어한다면 서포트하겠지만, 제가 나서서 ‘이거 해 보자’하는 건 안 할 것 같아요. 아이에게 다 맡기고 싶어요.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수업 앞자리에 앉히려고 엄마가 대신 줄 서주고 이런 건 안 해요. 앞에 앉는다고 공부 잘하나 뭐(웃음). 그래서 1등 할 거면 해주겠지만 아니면 안 하죠(웃음).”
‘로코퀸’의 자리를 다시 안겨주면서 동시에 최고 시청률 17%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막을 내린 ‘일타 스캔들’과 함께, 전도연은 오는 3월 31일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로 분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을 통해 또 한 번 스타일리시한 연기 변신을 보여줄 예정이다. 시작이 좋았고 다가올 차기작에도 기대가 모이는 만큼 아직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2023년에 ‘전도연의 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진 않을까.
“저는 매년 늘 저의 해였다고 생각해요. 작품 하나가 잘됐다고 전도연의 해가 되거나,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전도연의 해가 아니었던 적은 없어요. 물론 사람들은 그렇게 평가할 수 있다고 충분히 생각하지만 전도연의 해를 만든다고 해서 제가 갑자기 달라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웃음). 제 팔자가 고쳐진다거나 갑자기 일약 CF 스타가 된다거나 하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늘 제가 해오던 대로, 하던 대로 하는 거예요. 뭔가가 크게 저를 변화시킨다고 누군가는 생각할 수 있지만 제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