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 유연한 ‘엄마 일자리’, 과학·의학 인력 대폭 지원…부동산 시장에서도 여성 구매력 부상
3월 4일 개막한 최대 정치 이벤트 ‘양회’에서는 이례적으로 경단녀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자는 안건이 다뤄졌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이기도 한 자오신주 선전중이그룹 회장은 “경단녀는 국가의 소중한 인적 자원이다. 그들의 고용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의 제안서를 발표했다.
자오신주 회장은 “경단녀들은 경제적 의존도, 낮은 가족 지위, 사회적 단절 등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들을 취업시장으로 다시 끌어들여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성평등을 실현하는 방안 중 핵심”이라고 했다.
이에 쩡롄잉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는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뿌리 깊은 통념 때문에 전업주부들이 직장을 다니고 싶어도 가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인적자원사회보장부는 올해 경단녀들의 취업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단녀가 다시 취업 전선으로 뛰어든다고 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가사와 육아다. 베테랑 인력 전문가 장이단은 “기업들로선 기혼 여성들의 업무시간 배분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탄력근무제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쩡롄잉 대표는 “경단녀 역시 취업을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전공을 공부해야 한다. 결혼 전 다녔던 직장에서의 사회적 관계 역시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재취업을 위한 자본”이라고 했다.
3월 7일엔 전업주부들을 위한 특별 채용 박람회가 열려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날 노인 요양, 호텔 케이터링 등 분야에 1000명가량의 전업주부들이 채용됐다. 평균 임금은 5000위안(96만 원)이었다. 이들 상당수는 경단녀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박람회가 주목을 받았던 것은 이른바 ‘엄마 일자리’를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주부들에게 8시 출근, 6시 퇴근은 무리가 많다. 이에 박람회 측은 엄마들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만을 소개하기로 했다. 근무 시간을 최대한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를 위해 사전에 많은 전업주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등을 실시했다.
당국은 인사 담당 부서를 중심으로 각 지역 부녀회, 동사무소 등과 연계해 경단녀들의 사회 재진출을 위한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쌍둥이 딸의 엄마이기도 한 천쥔은 이를 통해 최근 네일 아티스트 자격증을 취득했다. 천쥔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네일숍을 방문해 돈을 벌 수 있다. 천쥔은 “인생이 새로워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바오마는 동사무소 도움을 받아 관광정보센터에 취업했다. 그녀는 12시부터 3시까지 근무를 하고 퇴근한다. 4시에 수업을 마치는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서다. 바오마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예전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베이징은 3년 동안 일대일 직업 지원, 멘토링 등 프로그램을 실시해 가정주부 1200명의 취업 성과를 냈다. 베이징 인사 담당자 리징화 주임은 “취업에 성공한 엄마들의 경험이 주변 많은 여성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당국은 경단녀뿐 아니라 과학과 의학 부문에서도 여성 인력 지원을 대폭 늘린다는 방침이다. 중신망은 “과학 기술 혁신의 모든 분야에서 ‘그녀’들이 더욱 빛날 필요가 있다. 여성들은 열정과 헌신으로 난제를 돌파할 용기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요 통신사와 언론에선 대표적인 여성 과학자와 의료인들 소개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패혈증 치료에 획기적인 진단법을 발견한 팡밍은 의사이자 과학자, 교육자다. 팡밍은 20년 동안 연구에 심혈을 쏟았고, 2019년 패혈증 조기경보 및 핵심치료법을 발표했다. 팡밍은 2022년 ‘전국 삼팔홍기수’의 영예로운 칭호를 받았다. 또한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도 발탁됐다. 팡밍은 여성 의료인들의 성장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도 공을 기울여왔다. 저장성 여성 의사 지부를 설립해 각종 고충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1990년생의 이월화는 촉망받는 우주 연구원이다. 2018년 학교를 졸업한 후 연구소에서 화성과 달 등을 관찰하고 무인 탐사 시스템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월화는 “젊은 여성이 과학 연구의 길에서 겪어야 하는 애로사항들이 많다. 이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여성들은 새로운 구매층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과거에 부동산 구입 및 소유는 주로 남성의 몫이었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 활동이 늘어나면서 남녀 간 격차는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도시 지역에 사는 1인 가구 여성의 주택 구입 비율이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은 5년 이내 주택 구입 내역을 면밀히 조사해 3월 8일 ‘2023 여성주택구입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주택을 살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요인으로 여성의 67.7%가 직장 위치를 꼽았다. 생활 편의성, 교육, 의료 시설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과거 같은 조사에서 항상 1위를 차지했던 ‘사랑’은 이번 조사에서 13.2%를 기록했다.
향후 주택 구입 의사를 묻는 질문에서 여성 응답자 10명 중 8명은 신축을 원한다고 밝혔다. 남자들의 경우 10명 중 4명만 신축이라고 답했다. 실제 지난 5년간 주택을 구입한 여성들 가운데 중고 주택을 선택한 비율은 9.8%에 불과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