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부터 산동면서 축제, 1000년 산 시목 여전히 굳건…닭회·재첩국·참게매운탕 등 미각 자극
#'살아 천 년' 산수유 시목
작고 노란 산수유꽃은 개나리, 진달래, 벚꽃 같은 다른 봄꽃들과는 달리 그 생김부터 색깔과 크기까지 소소하고도 소박하다. 산수유는 화려하지 않아도, 아니 화려하지 않아서 자꾸 보고 싶고 더 사랑스럽다. 혼자보다는 무리로 있을 때 더 아름답다.
아직은 겨울이 남긴 관성으로 몸이고 마음이고 꽁꽁 닫혀서 나와는 상관없는 화사함으로 들이대는 봄을 맞을 준비가 덜 되었다면 작고 노란 산수유부터 맞아볼 일이다. 으스대지 않고 과하지도 않게 스미듯 마음에 들어오는 산수유가 슬며시 마음을 녹인다. 겨우내 닫아두었던 오감이 산수유의 방문으로 조금씩 깨어난다.
3월 11일부터 19일까지 구례 산동면 지리산 온천 관광지와 산수유 군락지 마을 일원에서 제24회 구례산수유꽃축제가 열린다. 공연과 체험, 판매 등 40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산수유 씨와 과육을 분리하는 ‘산수유 열매 까기’ 대회와 산수유꽃길을 걷는 걷기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 산수유축제는 열리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서 조용히 꽃망울을 피워 올렸을 산수유가 올해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더 화사해질 예정이다. 축제의 주제 역시 ‘영원한 사랑을 찾아서’다. 사랑을 주고받는 것조차 무뎌져 버린 사람들에게 산수유가 조용히 오감을 일깨운다.
구례 산동면 계척마을에는 1000년 전 중국 산둥에서 왔다는 산수유 시목도 있다. 할머니나무로 불리는 시목의 나이는 1000년가량으로 추정된다. 시목은 늙었으나 여전히 굳건하다. '살아 천 년'이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는 이미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지금, 여기에 살아서 아직 꽃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땅의 기운과 에너지가 진작 쇠할 만도 하건만 과연 천 년 동안 꽃을 피울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욕망이나 능력, 기대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버티는 끈기와 인내만으로도 그를 여태 살아있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비록 나무 한 그루일 뿐이지만 자기 극복과 수양이 없었다면 그 모진 세월을 살아남아 지금까지 꽃을 피우지는 못했으리라. 한철 또 한철 일희일비하지 않았을 산수유의 뚝심이 부럽다. 천년의 시목은 그 자리에서 의연히 진가를 뽐내고 있다.
노란 산수유꽃은 축제가 열리는 산동면 일대인 반곡마을과 상위마을을 비롯해 MBN 예능 ‘자연스럽게’의 촬영지로 이름이 알려진 현천마을 등지에서 제대로 볼 수 있다. 김순호 구례군수는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꽃을 시작으로 화엄사 홍매화, 구례300리 벚꽃, 섬진강 갓꽃 등 봄철 내내 구례의 꽃길을 걸으면서 봄 정취를 만끽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구례의 맛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꽃을 봤으니 이번엔 미각을 일깨우러 가보자. 구례 섬진강 곁에는 섬진강에서 잡히는 재첩으로 재첩국을 끓여내는 식당이 있다. 맑은 조개탕 같은 국물에 부추를 썰어 올린 재첩국은 단순해서 더 명쾌한 맛이다. 재첩과 소금, 물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듯한 ‘슴슴한’ 맛이 자꾸 입맛을 다시게 한다. 평양냉면의 그것과도 같은 슴슴하고도 자연스런 맛이 매력이다.
재첩국에 국수를 말아주거나 밥을 말아 먹을 수 있게 백반처럼 여러 가지 반찬과 함께 밥을 내기도 한다. 재첩초무침도 별미다. 대접에 재첩무침과 함께 갖은 반찬을 넣어 밥을 비벼먹을 수도 있다. 시골 식당에 주문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을 만큼 식당은 늘 인기다. 그래도 섬진강 곁의 낭만이나 인심까지 빼앗기진 않았다.
구례에는 닭회를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다. 방금 잡은 생닭으로만 만들 수 있다는, 생소하기만 한 닭회는 의외로 이를 먹어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별미다. 닭살과 닭 껍질, 닭 모래집이 조금씩 함께 나오는데 닭살은 육회 같은 부드러우면서도 혀에 착 감기는 맛이고 닭 껍질은 꼬들꼬들, 닭 모래집은 뽀득뽀득 쫄깃쫄깃 하다. 본 요리인 닭구이가 나오기 전 전채 요리로 먹는데 양도 딱 그 정도다.
닭회로 시작해 닭구이로 달리다가 구이용을 발라내고 남은 닭뼈가 삶아 나오면 닭죽과 함께 닭 코스는 마무리된다. 일명 산닭구이인 이 코스는 산에서 키운 촌닭으로 내기 때문에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아 담백하다. 핑크색의 산수유 막걸리와도 잘 어울리는 한상이다.
섬진강에서 잡히는 참게를 매운탕처럼 끓인 참게매운탕도 빼놓을 수 없다. 국물은 게에서 우러나온 구수한 맛이 일품이고 참게 안에 꽉 들어찬 꾸한 내장 덕에 게는 작지만 알차다. 참게 속 빼먹는 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지리산에서 나는 각종 버섯으로 버섯솥밥과 버섯전골을 내는 식당도 썩 훌륭하다. 그 외에도 다슬기수제비와 산채정식 등도 구례에서 유명하다. 산과 강이 두루 내주는 풍요로운 구례의 맛이다.
끝자리가 3일과 8일에 열리는 구례 오일장도 들러볼 만하다. 새벽이면 집 앞으로 온갖 신선한 식재료가 배달되는 세상이지만 시골 장터는 시골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서로 어우러지는 삶의 터전이다. 물건이나 식재료를 사지 않더라도 사람 냄새 맡으며 호떡이나 꽈배기 같은 주전부리를 입에 물고 구경하기 좋다. 그러다 보면 시장 한구석의 꽃무늬 일바지나 장화 같은 시골스러운 물건에서 문득 ‘하이패션’을 발견해 도시 사람들의 주머니를 열게도 한다. 장터 입구에는 수구레국밥집이 있고, 장터 안쪽에 팥죽과 팥칼국수를 파는 가게들도 있다.
구례=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