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선 친노 성골(문재인)-육두품(김두관) 대충돌
▲ 5월 24일 대구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당대표 선출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김한길 후보가 이해찬 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장외 ‘잠룡’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주류의 강력한 대항마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지역순회 투표 과정에서 이해찬 김한길 후보 측 모두 김두관 지사에게 강력한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주류가 만든 이해찬-문재인 구도가 붕괴 된다면 그 최대 수혜자는 바로 김두관 지사가 될 전망이다. 반면 광주전남에서 이해찬 후보가 죽을 쑤면서 문재인 대세론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숨만 쉬고 있어도 대선후보가 되는’ 새누리당과 달리 초박빙 승부로 흥행대박을 예고하고 있는 민주통합당의 지도부 경선을 집중 조명해보았다.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에서 과연 기적이 일어나게 될까. 그 열쇠는 이해찬 후보가 쥐고 있다. 그의 성적에 따라 대선후보 경쟁구도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사실 이 후보는 지난 총선 때 친노세력이 약진하자 좌장을 자임하며 그 스스로 킹메이커가 되려고 했다. 이번 경선에서도 ‘당연히’ 대표직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자신감은 ‘이해찬-박지원 연대론’으로 나타났다. 일부에서는 이해찬 후보의 ‘이박연대’ 구상을 오만하다며 거부감을 보였지만 당내 역학구도 상 현실적 대안이었다. 하지만 1+1이 때로는 0이 되는 게 정치다.
이해찬 후보는 ‘이해찬-문재인’이라는 공식을 대선 필승카드라며 들이밀었지만 강력한 역풍을 만나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 때 1차 저항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박지원 후보가 당선됐다. 그 뒤 이번 전대에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 스스로 당 대표직에 오르려고 하지만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 5월 20일 처음으로 열린 울산 지역순회 투표에서 이해찬 후보의 오만은 결국 심각한 도전을 받고 말았다. 비노그룹 대표주자 김한길 후보에게 무참히 깨진 것. 이 후보는 103표를 얻은 김 후보에 이어 48표로 4위에 그쳤다. 특히 울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강력한 상대였던 한화갑, 이인제 후보를 꺾고 1위를 차지하면서 ‘역전 드라마’를 쓴 이른바 ‘노풍’의 첫 발화점이었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이 후보의 울산 완패는 ‘이해찬-박지원 연대’에 대한 역풍이 본격적으로 불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제2의 ‘노풍’이 또 다시 울산에서부터 시작됐다”며 흥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2의 노풍은 어디에서부터 불어오게 될까.
▲ 김두관 지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특히 문재인 당선자는 ‘이박연대 담합론’에 발목이 잡혀 경선정국 개입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반면 이에 비판적인 입장이 돼버린 김두관 지사의 경우 공개적 활동을 하지 않아도 유력 후보들이 서로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여 표의 확장성을 높이려는 전략 때문에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징후는 이미 이해찬 후보의 정치적 동선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는 지역순회 투표 첫날인 5월 20일(울산)을 전후해 김두관 경남도지사를 16일과 23일 잇따라 만났다. 이미 주류의 ‘이박연대’ 프레임을 완성해 놓고 문재인 대세론을 밀어붙일 태세를 보이던 이 후보가 왜 마이너리거 김두관 지사를 연이어 만나야만 했을까. 이 후보가 김 지사의 도움 내지는 용인 없이 대표직에 오를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김 지사 측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5월 16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단 둘이 만났을 때 이 후보는 김 지사에게 ‘나는 아직 중립지대에 머물러 있다. 문재인에게 프리패스 준 건 아니다. 언론에서 이박연대를 정치 공학적으로 몰고가는데 절대 그런 일(문재인 대세론) 없다. 나는 대선후보 경선의 공정한 관리자로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상황이 그리 급박하지는 않아 이 후보는 공정한 경선 관리 등 비교적 객관적 이야기만 했다. 하지만 5월 20일 울산 경선에서 대패하자 이 후보도 상당히 당황했다고 한다. 2차 만남이 23일 창원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는데 이때는 ‘나를 좀 도와 달라’며 김 지사에게 통사정을 했던 것으로 안다. 당내 주류인 이 후보가 김 지사에게 허리 숙여 사정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직감한 이 후보가 김 지사에게 긴급구조를 요청했고 이에 김 지사는 ‘알았습니다’라고 화답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 김 지사는 이 후보의 SOS 요청에 화답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일각에서는 김 지사가 이 후보 도움 요청을 무시하고 김한길 후보를 밀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확인 결과 대구경북에 두루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김 지사가 이해찬 후보도 지원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대구지역의 한 여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만약 이번 대구경북 지역 투표에서 김 지사와도 교감하고 있는 혁신과통합 측이 이해찬 후보를 밀어주지 않았다면 이 후보는 그야말로 크게 깨졌을 것이다. 사실 민심만 보면 대구경북이 울산보다 더 안티 이해찬 정서가 깊은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280대 200 정도로 표 격차를 줄여준 배경은 바로 김두관 조직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 후보도 자신이 김 지사 측의 도움을 받은 것을 알고 있다. 이는 향후 대선후보 경선 정국에서 이해찬-김두관 연대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함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 후보의 이런 김 지사에 대한 ‘읍소’는 대선후보 경쟁구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후보가 김 지사의 잠재력을 상당부분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후보는 문재인 당선자를 절대상수로 놓고 대권전략을 마련해왔지만 지역순회 투표를 거치면서 김 지사의 정치적 위상이 ‘자연스럽게’ 높아지자 적극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 과정에서 양측이 또 다른 ‘연대’를 맺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최근 기자에게 “이해찬은 문재인이 추락할 기미가 보이면 언제라도 잡았던 손을 놓을 수도 있는 노회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정치평론가 박상헌 박사는 이에 대해 “이박연대 논란이 과도하게 정치쟁점화되면서 이 후보가 계속 표를 잃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 지사가 이 후보의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이해찬의 영향력과 입지는 흔들리게 된다. 김두관 지사가 이 후보를 인정해줘야 그의 영향력이 올라가는 묘한 상황이 돼 버렸다. 그러니 김 지사가 경선 정국 최대 수혜자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치공학적 급부상이 김 지사에게 과연 도움이 될 것이냐에 대해선 이견도 있다. 앞서의 MBN정치아카데미 전계완 대표는 이에 대해 “이박연대 프레임에 이해찬 후보가 갇혀 문재인 당선자까지 타격을 받았듯이 김두관 지사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올 수 있다. 김한길 후보를 중심으로 하는 비 이박연대가 김두관 지사를 무리하게 밀어 올리려다가 역풍을 맞을 경우 김 지사도 똑같이 불리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식의 정치공학적 유불리 계산은 어떤 후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 지사도 현재의 부상 가능성에 반색하기보다 이박연대 프레임이나 비 이박연대 프레임 모두를 극복하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경선 레이스 흥행의 필수 소재인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서라도 김두관의 존재감이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김한길 후보는 “김부겸 박영선까지 모두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해 판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군소주자들이 계속 나와 흥행을 이끌고 거기에서 특정 주자가 예선 1위를 차지한다면 ‘문재인 대세론’이 불러온 구태정치와 짜고 치는 고스톱 논란을 잠재우고 제2의 노풍을 점화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김두관 지사 측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군소주자들이 많이 나와 판을 키우면 키울수록 거기에서 가장 주목받을 사람은 당연히 김두관 지사 아니겠는가”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경선이 박빙의 승부가 날 가능성이 큰 것도 김 지사에게는 유리한 대목이다. 이해찬 후보가 압승을 거둬야 문재인 대세론이 다시 탄력을 받는다. 하지만 이 후보가 패배하거나 근소한 차로 이길 경우 문재인 대세론의 역풍이 현실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당은 본격적으로 대타 찾기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김두관 지사는 경선 레이스에서 이해찬-김한길 등 주요 주자들로부터 잇단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알겠습니다’라고만 할 뿐 구체적 액션을 취하고 있지 않다. 향후 대선후보 경선을 생각하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거들고 싶겠지만 움직임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이번 경선 레이스에서 각 주자들이 먼저 몸이 달아 그를 찾는 것을 보면, 오히려 김두관의 ‘뚝심정치’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