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던 심장이… 자기 죽음도 ‘사기’?
▲ 피해자만 5만여 명에 피해규모 4조 원에 달하는 사기극을 벌이고 중국으로 도주했던 조희팔. 과연 그는 자신의 죽음까지도 사기에 이용한 것일까. |
2008년 12월 9일 밤 11시경 충남 태안군 안면도 인근의 마검포항. 한 달 여 전부터 시도한 세 차례의 시도 끝에 조 씨는 중국 밀항에 성공한다. 조 씨의 밀항 전모는 당시 해경의 ‘비호작전’을 도와 그를 소형 보트로 실어 중국 배에 넘긴 민간인 양식업자의 고백으로 세간에 알려지며 엄청난 충격을 던져줬다.
하지만 밀항 당시 해경함정에 손까지 흔드는 여유를 부리며 중국으로 건너갔던 조 씨는 3년 반 만에 유골로 돌아왔다. 경찰은 조 씨가 지난해 12월 19일 0시 15분경 중국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5월 21일 발표했다. 경찰은 조 씨의 측근들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한 사망 당시 응급진료 기록과 사망진단서 시신화장증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경찰이 확보한 중국 120구급대 응급진료 기록에 따르면 조 씨는 지난해 12월 18일 여자친구 등과 중국 엔타이 시의 한 샤브샤브 집에서 식사를 한 뒤 오후 8시 30분경 호텔 내 노래주점에 갔다. 그곳에서 양주 몇 잔을 마신 조 씨는 나훈아의 ‘홍시’를 부르다가 가슴의 답답함을 호소했다. 객실로 돌아온 조 씨는 복부통증과 급체 증상을 보였고 인민해방군 404병원으로 가던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췌사 및 급성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박동 정지였다.
다음날 긴급 비자수속을 밟아 출국한 가족들의 참관 하에 장례가 치러졌고 시신은 바로 화장됐다. 이것이 의료기기 렌탈 사업으로 5만여 명의 피해자들로부터 4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피해액을 양산한 조 씨의 최후였다. 경찰 발표대로라면 “현 정권은 죽어도 나를 못 잡는다”고 큰소리치며 빼돌린 자금으로 호화 도피 생활을 벌이던 조 씨가 너무도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 셈이다.
▲ 조희팔의 장례식 동영상. KBS 뉴스 캡처 |
▲ 중국에서 시신을 화장했다는 증명서. |
2008년 조 씨가 해외로 도피한 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했던 이 사건은 조 씨의 비자금 정황을 포착한 경찰이 자금 흐름 추적에 들어감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기대됐다. 뿐만 아니라 5월 18일에는 사건의 핵심 인물이자 조 씨의 양팔로 불리는 2명이 국내로 송환됐다. 이처럼 조 씨의 사망발표는 공교롭게도 수사당국이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면서 실마리를 조금씩 풀어나가기 시작한 시점에 이뤄진 것이다.
조 씨의 사망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피해자들은 “재수사가 진전되던 시점에서 경찰이 ‘조희팔 사망설’을 유포해 김빼기를 하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번 수사가 단지 조 씨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사정당국은 주변 인물들의 금융거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조 씨와 부적절한 금전거래를 한 거물급 인사들이 하나둘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다.
경찰의 석연찮은 사망발표는 두 번째 의혹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사망 사실이 5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알려졌기 때문이다. 경찰은 조 씨의 유족들이 피해자들의 테러나 보복을 우려해 사망사실을 숨겨왔다고 밝혔다. 유골을 훼손하거나 가족들을 상대로 피해보상을 해올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경찰이 5개월 동안 조 씨의 사망을 몰랐다는 점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동안 조 씨 비호 세력으로 의심을 받았던 경찰은 조 씨의 밀항과정 및 도피생활 도중에도 그와 내통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실제로 일부 수사관계자가 중국에서 조 씨 일당을 만나 호화 접대를 받고, 고가의 선물까지 챙겨왔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보이스 피싱 범죄자들도 마음만 먹으면 단박에 잡아들이는 경찰이 수년째 조 씨 같은 악질 범죄자의 행방조차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것이다”라고 성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일부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조 씨를 계속 비호해온 경찰이 수사주도권이 검찰로 넘어가자 위기를 느낀 나머지 갑자기 사망설을 퍼뜨린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세 번째 미스터리는 장례식 영상물이다. 동영상은 경찰이 조 씨의 사망을 인정하게 한 증거 중의 하나다. 경찰이 확보한 조 씨의 장례식 영상에는 투명한 관 속에 누워있는 조 씨의 시신이 클로즈업된 것은 물론 유족들이 조화를 관 위에 올려놓는 모습까지 생생히 담겨있다. 하지만 51초짜리 이 동영상은 장례식 진행 상황이 아닌 조 씨의 얼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엇보다 한국의 정서상 장례식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남기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피해자들은 오랜 도피생활을 해온 조 씨가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하고 사건 책임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망설을 퍼뜨린 것으로 보고 있다. 입관 동영상은 사망을 위장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조 씨의 사망설은 그의 밀항 직후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자신을 노리는 수사망과 피해자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동영상을 만들었을 수 있다. 조 씨는 그런 자작극을 벌이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조 씨가 급사해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동영상을 촬영했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동영상 촬영자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네 번째 의혹은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경찰은 중국의 주민등록증과 여권 확인, 120구급대의 기록, 응급진료 및 사망진단을 내린 의사 면담, 시신 화장증과 동영상 등을 근거로 조 씨가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조 씨의 시신이 바로 화장되는 바람에 DNA 대조를 통해 생물학적인 사망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정황증거’에 근거한 조 씨 사망을 둘러싼 뒷말이 무성히 나돌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한 중국 교포는 “중국은 돈만 주면 뭐든지 가능한 나라다. 사망진단서나 구급대 기록 등을 위조하는 것이나 의사나 공안, 권력기관 관계자들을 매수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산 사람을 사망자로 둔갑시켜 각종 범죄를 벌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가짜 장례식·화장은 물론이고 시신을 사거나 대신 죽어줄 사람을 구하는 일도 가능한 곳이 중국이다”라고 귀띔했다. 경찰 일각에서도 “조 씨가 지능적인 해외도피 사범이고 중국의 행정처리가 허술하다는 점에서 그의 사망을 100% 확신할 순 없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 씨의 당일 행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조 씨를 겪어본 피해자들에 따르면 조 씨는 의심이 많은 데다가 철두철미한 성격을 갖고 있다. 조 씨는 중국 내 여러 곳에 거처를 두고 수시로 옮겨 다니며 도피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피해자는 “조 씨가 일반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호텔에, 그것도 여자친구와 함께 갔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피해자들이 워낙 많은 데다가 측근들과도 갈등이 있어 보복이나 테러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다. 워낙 철저한 성격이라 몸을 사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거처에 완벽한 시설을 갖춰놓고 모든 것을 해결했다. 특히 평소 술을 일체 입에 대지 않았던 조 씨가 그날따라 노래주점에서 양주를 마셨다는 것도 이상하다”고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대다수 피해자들은 조 씨가 평소 건강상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사망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조 씨는 그동안 심장질환과 관련해 단 한 번도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2억 원을 날렸다는 50대 남성은 “조 씨가 사망했다는 루머는 이미 여러 차례 돌았고 조 씨의 꿍꿍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했다. 조 씨는 이미 중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타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업 확장 및 사기행각 묵인, 밀항과 비자금 조성, 중국 도피 과정에서 연계된 권력과의 커넥션 등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제3의 세력에 의해 타살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조 씨가 동업자나 측근들과도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조 씨가 측근에 의한 보복성 테러나 청부살인을 당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경찰은 “조 씨의 사망과 관계없이 범죄수익의 은닉 여부 등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조 씨 사망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조희팔 송환’ 누가 떨었나
TK 출신 실세 C·대구 원로주먹 J 연루설 현 정권 ‘태풍’ 피했다
현재 조 씨의 사망과 관련된 모든 의혹은 권력형 커넥션 의혹으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조 씨가 현 정권 실세로 꼽히는 인물과 심심찮게 어울렸으며 조 씨의 사업확장 및 불법행위 무마는 물론이고 조 씨의 밀항에도 깊숙이 관여한 거물급 인사들이 존재한다는 관측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조 씨가 수사기관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전국을 무대로 사기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나 중국으로 밀항할 수 있었던 것, 4년째 호화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수사당국과 현 정권 실세들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선 사업확장과 수사과정, 밀항, 돈거래 등 일부 경찰과 조 씨의 ‘수상한’ 관계는 이미 수차례 제기된 바 있다. 문제는 수사기관뿐만 아니라 보다 큰 권력과 거물급이 조 씨 비호세력으로 거론됐다는 점이었다. 정권 차원의 비호의혹 중심에 선 인물은 TK지역 출신 권력 실세인 C 씨였는데 그의 중학교 동문이자 대구지역 원로주먹인 J 씨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기도 했다. J 씨는 조 씨와 C 씨의 다리를 놔준 인물인데 20억 원 상당이 수사무마 등의 용도로 J 씨에게 건네졌고, 이 돈의 향배로 인해 심각한 갈등과 내분이 발생했다는 구체적인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수사기관을 넘어 정권차원의 비호 의혹을 제기한 한 피해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이 있다. 만약 살아서 검거된 조 씨의 입에서 정권실세와 수사기관 수뇌부 등을 거론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또 다른 권력 스캔들에 현 정권은 엄청난 곤욕을 치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죽은 척 세상에서 사라지는 길을 택한 것은 과연 조 씨 혼자만의 결정이었을까. 누군가와 또 다른 딜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몇 년 후 국민들은 죽었다던 조 씨가 제3국에서 목격됐다는 황당한 뉴스를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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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조 씨의 사망과 관련된 모든 의혹은 권력형 커넥션 의혹으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조 씨가 현 정권 실세로 꼽히는 인물과 심심찮게 어울렸으며 조 씨의 사업확장 및 불법행위 무마는 물론이고 조 씨의 밀항에도 깊숙이 관여한 거물급 인사들이 존재한다는 관측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조 씨가 수사기관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전국을 무대로 사기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나 중국으로 밀항할 수 있었던 것, 4년째 호화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수사당국과 현 정권 실세들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선 사업확장과 수사과정, 밀항, 돈거래 등 일부 경찰과 조 씨의 ‘수상한’ 관계는 이미 수차례 제기된 바 있다. 문제는 수사기관뿐만 아니라 보다 큰 권력과 거물급이 조 씨 비호세력으로 거론됐다는 점이었다. 정권 차원의 비호의혹 중심에 선 인물은 TK지역 출신 권력 실세인 C 씨였는데 그의 중학교 동문이자 대구지역 원로주먹인 J 씨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기도 했다. J 씨는 조 씨와 C 씨의 다리를 놔준 인물인데 20억 원 상당이 수사무마 등의 용도로 J 씨에게 건네졌고, 이 돈의 향배로 인해 심각한 갈등과 내분이 발생했다는 구체적인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수사기관을 넘어 정권차원의 비호 의혹을 제기한 한 피해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이 있다. 만약 살아서 검거된 조 씨의 입에서 정권실세와 수사기관 수뇌부 등을 거론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또 다른 권력 스캔들에 현 정권은 엄청난 곤욕을 치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죽은 척 세상에서 사라지는 길을 택한 것은 과연 조 씨 혼자만의 결정이었을까. 누군가와 또 다른 딜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몇 년 후 국민들은 죽었다던 조 씨가 제3국에서 목격됐다는 황당한 뉴스를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