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차 남성만 유혹 ‘합의금 폭탄’ 안겨
▲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신종 꽃뱀’이 등장했다. 인터넷 채팅에서 ‘방술’(방에서 여자와 술을 마신다는 뜻의 은어)을 미끼로 남성들을 유인해 꽃뱀과 술자리를 주선한 뒤 고의로 접촉 사고를 내 돈을 뜯어낸 꽃뱀 일당이 붙잡혔다. 경찰조사 과정에서 17세 여고생은 물론 탈북자 여성 등도 꽃뱀 역할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특히 ‘남심’을 유혹해 피해자들을 끌어 들이는 방식은 기존의 꽃뱀수법과 유사했으나 총책, 공갈책, 꽃뱀 등 팀제로 치밀하게 운영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또한 꽃뱀은 주로 ‘성’을 미끼로 하는 범죄임에도 이번엔 17세 여고생까지 가담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수법도 다양한 ‘신종 꽃뱀’ 사기단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본다.
박 아무개 씨(27)는 신종 꽃뱀 사기단의 ‘브레인’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게임머니’ 거래를 하며 무직 생활을 전전하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자 손쉽게 큰돈을 벌 묘책을 생각해냈다. 강도짓은 아직 경험이 없어 시도한다고 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박 씨는 피해자들 자신이 사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하는 수법을 연구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피해자로 하여금 음주운전을 하게 한 후 그 약점을 잡아 돈을 편취하는 방법이었다.
박 씨는 주로 인터넷 채팅을 통해 피해 대상자들을 물색했다. 채팅방에 ‘여자 꼬셨는데 같이 술 마실 분’ ‘방술하실 분’이라는 제목의 방을 만들고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그랬더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덕분에 피해 대상 선별 작업도 면밀히 할 수 있었다. 너무 나이가 많으면 ‘눈치가 빨라 걸릴 수 있다’는 생각에 나이 제한도 뒀다. 주로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남성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결정적으로 차량을 소유한 남성을 범죄 대상으로 유인했다. 피해자가 자신의 차로 음주운전을 하게 해야, 미리 입 맞춰 놓은 공갈책을 동원해 ‘음주운전을 한 것이 아니냐’ ‘감옥에 가고 싶나’는 식으로 협박한 후 합의금을 편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꽃뱀 역할로는 박 씨의 여자친구인 A 양(17)과 A 양의 반 친구가 동원됐다. 모르는 남자와 술을 마셔줄 때마다 20만 원을 주겠다는 박 씨의 제안에 A 양은 꽃뱀 사기를 방학 동안에만 할 수 있는 단순한 알바로 여겼다고 한다.
미성년자까지 꽃뱀으로 동원시킨 박 씨의 사기행각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박 씨는 피해 남성이 접근하면 ‘꼬여 놓은 여자들이 있다’며 서울 강서구 화곡동 부근 술집으로 나오게 했다. 이후 꽃뱀 일당들은 ‘3, 6, 9’ 등 술자리용 게임을 하며 피해 남성을 취하게 만들었다. 꽃뱀 2명과 박 씨, 이렇게 3명이서 합세하니 피해 남성은 벌칙 술을 연신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꽃뱀들은 ‘2차를 가자’고 은밀한 제안을 던져 피해 남성이 음주운전을 하도록 유도했다. “(모텔과) 거리도 가까운데 그냥 오빠 차로 가면 안 돼?”라는 달콤한 말에 피해 남성들은 술에 취했음에도 고민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이 사건을 담당한 강서경찰서 한 관계자는 “음주운전을 하게 되는 상황이나 사고가 난 정황 등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피해자들 대부분은 자신이 사기당한 줄도 몰랐다. 심지어는 사고 후에도 꽃뱀에게 ‘밥이나 같이 먹자’고 문자를 보낸 웃지 못 할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공갈책들의 노련한 연기도 사기행각을 완벽 범죄로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공갈책 서 씨는 고의성 사고를 낸 후 다짜고짜 피해 남성에게 다가가 ‘술 냄새가 난다’ ‘이 양반, 음주운전이구만’하고 힘주어 말하며 근처 파출소에 신고를 하는 대담성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 당황한 피해 남성들은 서둘러 공갈책이 제시한 합의금을 내주기에 급급했다. 일례로 피해자 김 아무개 씨(30)는 서 씨의 협박에 놀라 그동안 결혼자금으로 쓰려고 모아뒀던 880여만 원을 근처 현금인출기에서 성급하게 인출해 합의금으로 건네주기도 했다.
박 씨 일당의 신종 사기극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꽃뱀’들의 사연도 다양했다. 방학 때 용돈을 벌 목적으로 일주일에 2~3회에 걸쳐 꽃뱀 알바를 해왔던 A 양은 학교 개학을 앞두고 ‘학업에 충실하고 싶다’며 발을 뺐다. 알고 보니 A 양은 소위 ‘노는’ 학생이 아니라 학교생활을 잘해 왔던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여고생들에게 꽃뱀은 범죄가 아니라 ‘독특한’ 알바에 불과했던 것이다.
여고생에 이어 꽃뱀 역할을 담당한 B 씨(여·24)는 지방 명문외고 출신의 수재였다. B 씨는 대학입시에 실패한 후 재수를 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으나 생활비가 만만치 않자 결국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다가 기구한 생활에 빠져들었고, 최근 박 씨로부터 꽃뱀 알바 제안을 받았다. 술도 마시고 남자들과 놀면서 손쉽게 한 건당 2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제안에 B 씨는 결국 사기극의 공범이 되고 말았다.
김 씨의 여자친구 C 씨(24)도 꽃뱀으로 동원됐다.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C 씨는 탈북자 출신으로 2004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 태국 등을 거쳐 2년 전 한국에 들어온 후 김 씨의 제안을 받고 꽃뱀을 시작했다. C 씨는 경찰 조사 당시 “한국에서 탈북자들이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 화장품 가게에서 어렵게 일하다가 김 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현재 경찰은 달아난 공갈책 김 씨 등 2명을 추적하는 한편 추가 범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