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별 등 전력 보강에 선수 육성도…WKBL 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지도자 타이틀 달아
#전력 보강 효과 바로 나타나
BNK는 WKBL의 '막내구단'이다. 전신 KDB생명의 충격적인 해체 선언 이후 WKBL 위탁 운영, OK저축은행 네이밍 스폰서 시절을 거쳐 2019-2020시즌부터 리그에 합류했다.
창단과 함께 부산으로 연고지를 옮겨 새롭게 시작했지만 신생팀의 WKBL 무대는 쉽지 않았다. KDB생명 시절부터 팀은 장기간 하위권을 전전했다. 2010년대 초반 챔피언결정전 진출 이후 주요 전력이 이탈했고 이를 채우지 못했다. BNK로 간판을 바꿔단 이후에도 두 시즌간 5위와 6위를 기록했다.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된 BNK에 한계가 있어 보였다.
BNK를 둘러싼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박정은 감독이 부임한 이후다. 박 감독은 WKBL 경기운영본부장으로 재직하다 BNK 지휘봉을 잡았다. 부임 직후부터 박정은 감독은 전력 보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연고지 부산 출신이자 FA 자격을 얻은 국가대표 슈터 강아정을 영입했다. 삼성생명, 하나은행과 삼각 트레이드를 성사시켜 김한별을 데려와 팀의 중심을 잡게 했다.
전력 보강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던 이들은 반전을 만들었다. 박정은 감독이 첫 시즌 받아든 최종 성적은 12승 18패 리그 4위였다. 직전 시즌 5승 25패 기록을 감안하면 큰 발전이었다. 이에 힘입어 BNK는 창단 최초 플레이오프 티켓도 얻어냈다. WKBL 내 여성 감독 최초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다만 플레이오프 무대에서는 우승팀 KB스타즈를 만나 시리즈 전적 0-2로 탈락했다.
#한 단계 더 올라선 BNK와 박정은 감독
2년 차 시즌을 맞이한 박정은 감독은 FA시장에 나온 포워드 한엄지와 계약하며 적극적인 보강 기조를 이어갔다. 전력 보강과 경험이 더해진 젊은 BNK 선수단은 이번 2022-2023시즌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중위권에 머물 것이란 예상을 뛰어넘었다. 박정은 감독은 1년 차 때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BNK는 시즌 초반부터 승수를 쌓으며 중위권 이상의 위치에서 경쟁을 이어갔다.
이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17승 13패. 창단 첫 5할을 넘는 승률 기록했고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는 삼성생명을 2-0으로 누르며 챔피언결정전 진출이라는 감격을 누렸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최강 우리은행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무기력한 패배는 아니었다. 1차전에서 상대를 막판까지 물고 늘어졌지만 4점차 석패를 당했다. 2차전에서도 경기 중반까지 시소게임을 벌였다. 팀의 핵심 김한별이 부상으로 빠지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샀다.
1, 2차전을 내주며 시리즈 분위기가 넘어간 상황에서도 박정은 감독과 BNK는 끝까지 맞섰다. 앞서 두 경기에서 이들은 상대와 미스매치로 수비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박 감독은 지역방어 카드를 꺼내들며 우리은행을 물고 늘어졌다. 베테랑 포워드 김정은의 놀라운 슛감각(7개 시도 5개 성공)이 아니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우리은행이었다.
#'위너' 박정은 감독의 위닝 멘탈리티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박정은 감독의 지도력에 찬사가 쏟아졌다. 구단도 사상 최초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공로를 인정해 박 감독에게 3년 재계약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하위권에 머물던 BNK의 터닝 포인트 중 하나는 김한별 트레이드로 꼽힌다. 리빌딩을 원했던 삼성생명과 '현재 전력'이 필요했던 BNK의 수요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박정은 감독은 현역시절 김한별과 코트에서 함께한 경험이 있어 누구보다 그를 잘 알고 있는 지도자다. 박 감독의 신뢰 아래 김한별은 이번 2022-2023시즌 30대 중반을 넘어섰음에도 커리어 하이(13.19득점, 8.85리바운드 3점슛 성공률 37%)에 가까운 기록을 남겼다.
박정은 감독은 동료 선수로 손발을 맞춘 바 있는 김한별과 함께 BNK에 위닝 멘탈리티를 심었다. 그는 부임 이전까지 하위권을 전전하던 팀과 달리 여자농구계 ‘위너’ 중 한 명이었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우승을 경험, W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5회 달성했다. 은퇴하는 시즌에도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았다. 은퇴 이후 1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챔피언결정전 최다출전 기록(54경기)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대표로도 네 번의 올림픽에 참가했다.
박정은 감독은 유망주로 평가받던 젊은 선수들의 성장도 이끌었다. 안혜지, 이소희, 진안은 김한별과 함께 리그 득점 순위 15위 이내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가능성 있는 선수'로만 불리던 이들은 현재 국가대표팀 선수가 됐다.
코트에서는 차분한 설명과 지시로 눈길을 끈다. 농구계에선 지도자들의 과도한 호통, 때로는 욕설 섞인 지시나 항의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종종 발생한다. 박 감독의 모습은 대조를 이루면서 성적을 내고 있어 호평을 받는다. 작전타임 때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지시를 내린다. 챔피언결정전 3차전, 30.5초를 남겨놓고 9점차로 뒤져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침착한 목소리로 "괜찮아. 마지막 마무리 잘하자"라는 메시지를 선수들에게 전했다.
#또 한 번의 '스텝 업'을 향해
박정은 감독의 성공은 여성 지도자로서 최초였다. 처음 지휘봉을 잡으며 '여자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싫어한다'는 말을 남겼지만 최초 기록이기에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정규리그 1위를 달성한 이도희 감독, 통합우승을 이뤄낸 박미희 감독과 같은 성공사례가 있는 프로배구와 달리 WKBL는 여성 감독이 두각을 드러내는 일이 별로 없었다.
박정은 감독과 함께 여자농구 레전드로 꼽히는 인물들이 지도자 생활을 한 바 있으나 저조한 성적만 냈다. 정식으로 프로구단 감독직에 오른 인물조차 2명에 불과했다. 박정은 감독은 WKBL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지도자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챔피언결정전 이후 박정은 감독은 "시즌 개막 전 우리 팀 슬로건은 한 단계 성장하자는 '스텝 업'이었다"며 "다음에는 우리가 우승자의 위치에 서겠다는 목표도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 이번 시즌 챔피언결정전 진출로 성장해온 박정은 감독과 BNK가 다음 시즌에는 어떤 '스텝 업'을 이뤄낼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