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은행은 공공재…예대마진 축소 등 대책 필요”…은행권 ‘10조 환원’ 약속 생색내기 비판 직면
#고금리 국면 이자 장사로 큰돈 번 은행들 ‘돈잔치’
5대 금융그룹의 지난해 누적 순이자이익은 49조 2298억 원으로 전년 41조 4605억 원 대비 18.45%(7조 6689억 원) 증가했다. 금리가 오르면서 저금리일 때보다 오히려 이자 장사로 더 많은 돈을 번 셈이다.
지난 2월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성과급 총액은 1조 3823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 1조 193억 원보다 35.6%나 불어난 수치다. 은행별로는 NH농협은행이 6706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KB국민은행 2044억 원, 신한은행 1877억 원, 하나은행 1638억 원, 우리은행 1556억 원 순이었다.
연말 연초 5대 시중은행은 2200여 명을 희망퇴직시키면서 1인당 평균 3억 4000만∼4억 4000만 원의 특별퇴직금을 지급했다. 여기에 법정퇴직금까지 합치면 6억∼7억 원씩 손에 쥔다는 계산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설립 대신 인허가 형태로 운영 중이고 과거 위기 때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가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은행이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관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다시 한번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고 확인하며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2월 15일에도 윤 대통령은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통신·금융 분야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과점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특허사업"이라며 "정부 차원의 제도개선 노력과 함께 업계에서도 물가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예 "은행업 과점 폐해가 크다”며 예대마진 축소 등 관련 대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금융위 3월 중 혁신방안 마련, 5대 은행 과점 깨지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은행 개혁을 주문하자 금융당국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월 14일 '기업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내달 출범시키기로 했다. 금융위는 2월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이달 중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은행권이 과점구도에 기대 이자수익에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근본적인 구조 개선책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TF에서는 은행권 △경쟁 촉진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 △손실 흡수 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등을 논의해 상반기 중 결론을 내놓을 방침이다. 금융위는 특히 금리변동 위험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구조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양한 서비스가 확충될 수 있도록 핀테크 혁신 사업자 등 신규 사업자 진입을 통해 경쟁을 촉진하는 방안도 논의한다. 각종 경영상태에 대한 감독 강화도 병행한다.
이복현 원장은 2월 14일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은행 업무의 시장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효율적인 시장 가격으로 은행 서비스가 금융소비자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제도와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5대 시중은행의 점유율이 워낙 높다 보니 가격 책정 시 과점적인 게임을 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5대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참여자들도 들어와 경쟁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예대금리차 이슈 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2019년 전체 18개 은행의 원화 예수금 현황을 보면 우리은행 등 5대 은행의 점유율은 77%다. 각각 15~16%대의 점유율이다. 은행의 원화대출금 또한 이들 5대 은행의 점유율이 67%로 사실상 5대 은행이 예금, 대출 시장에서 과점 체제가 견고하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5대 은행이 과점 체제를 이용해 마치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한 것처럼 성과급이든 배당이든 하는 분위기가 있어 과점의 고착화를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니은행 등장 가능성…은행들 대책은 뻥튀기?
현재 은행업 인가는 자본금 1000억 원 이상(지방은행은 250억 원)으로, 금융위가 경영자금 조달 방안이 적정하고 주주구성계획이나 대주주의 재무상태 등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취득할 수 있다. 동일인이 의결권 10%(지방은행은 15%) 이상을 소유할 수 없지만 이 역시 금융위 승인을 얻으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하지만 단순히 은행 수만 늘린다고 해서 소비자 편의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5대 은행과는 다른 구조를 가진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 필요하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금감원은 대형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깨려 했던 영국의 사례를 눈여겨보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등으로 산업 간 경쟁 촉진이 필요해 은행 신설을 유도했다. 그 결과 인터넷 전문은행이나 핀테크와 접목한 형태의 일명 '챌린저 은행'이 확대됐다. 이를 토대로 금감원은 인가를 세분화하거나 인터넷 전문은행 확대 또는 핀테크 업체의 금융업 진출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업은 단일 인가 형태지만 인가 단위를 낮춰 특정 분야에 경쟁력 있는 은행들을 활성화한다면 5대 은행처럼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과점 체제를 깰 수 있다는 복안이다. 인가 세분화가 도입되면 소상공인 전문은행, 도소매 전문은행, 중소기업 전문은행 등이 독립된 형태의 은행들이 대거 등장해 금융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5년 사이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 3개 인터넷전문은행이 ‘메기’ 역할에 대한 기대 속에 만들어졌지만 기존 과점 체제에 큰 변화가 어려웠던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은 5대 은행과 달리 막대한 인건비와 점포 부담이 없지만 가산금리 등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비용 효율이 더 높은 구조임에도 서비스 가격에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기존 5대 은행보다 더 높은 이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 3사는 금리보다는 비대면 서비스의 편의성 개선에 오히려 더 주력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새롭게 은행 인가를 내주더라도 5대 은행 과점체제를 단기간에 깨뜨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다른 금융업과 달리 은행은 예금을 기반으로 대출로 쉽게 돈을 벌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은 일정 한도(자기자본의 8~12배)까지만 자산을 늘릴 수 있다. 새로 은행들을 만들어도 자본이 적으면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현재 4대 은행 중 가장 작은 우리은행의 자기자본만 28조 원에 달한다. 그렇다고 수십 개의 은행을 새롭게 만들기도 어려울 수 있다.
정부의 은행 때리기에 업계는 ‘관치’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자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은행연합회는 지난 2월 15일 향후 3년간 10조 원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은행권 상생금융 강화방안'을 밝혔다.
하지만 내용을 살피면 ‘10조 원’도 ‘환원’도 그 의미가 애매하다. 우선 이번에도 ‘지원’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체는 ‘대출’이다.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는 것이다. 이자도 다 받고 원금도 돌려받는다. 규모 역시 부풀려졌다. 보증기관에 1600억 원을 추가 출연하면 약 2조 원의 대출에 대해 보증해줄 수 있다는 내용을 ‘2조 지원’으로 표현했다. 10조 원 중 상당부분이 이 같은 방식이다. 공동 사회공헌사업 자금 5000억 원은 기존에 있던 것을 다시 새 것처럼 포장했다. 정부가 이미 꺼내든 칼을 다시 집어넣을 정도의 대책이 아닌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