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부산MBC 주최 합동토론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대표경선 후보들. 국회사진기자단 | ||
그러나 당 일각에선 당권전쟁의 총성이 채 사라지지 않은 지금 또 하나의 전쟁이 예견되고 있다. 이름하여 ‘창심전쟁’이 그것. 그리고 이 새로운 전쟁의 주역으로 당권 경쟁을 벌였던 몇몇 당대표직 출마자들이 꼽히고 있다.
‘창심전쟁’이란 다름 아닌 이회창 전 총재의 마음을 얻기 위한 일종의 ‘구애경쟁’을 가리키는 말. ‘창심 잡기 경쟁’이 벌어지리라는 시각은 이전투구식 당권경쟁으로 분열상을 보이는 당을 수습하고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선 승자건 패자건 간에 일정 부분 이회창 전 총재의 역할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배경에서 출발한다.
이와 관련, 당권경쟁 과정에서 불거진 일부 당권주자들의 창심과 관련한 행보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이 한나라당 대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이 전 총재에 대한 향수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했다는 시각 때문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이행각서 논란’이다.
당대표 선출 투표일로부터 약 2주 전 이회창 전 총재의 한 핵심 측근인사가 미국에 다녀왔다. 그런데 이 전 총재 대통령후보 시절 조직책을 담당했던 이성희 전 특보가 출국 전 이 측근인사를 만난 것이 ‘이행각서 논란’의 발단이 됐다. 당시 이성희 전 특보는 당권경쟁 과정에서 원래 서청원 의원 캠프에 몸을 실었다가 의견 마찰로 인해 최병렬 의원측으로 둥지를 옮긴 상태였다.
그런 이 전 특보가 미국에 가는 이 전 총재 최측근인사를 만난 직후 당내에 ‘최병렬 의원이 이회창 전 총재에게 이행각서를 전달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행각서의 내용은 당대표가 된 후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예우 문제와 다가오는 총선에서의 이 전 총재의 위상 정립 등을 담은 것으로 거론됐다.
이런 소문이 퍼진 직후인 지난 13일 부산에서 열린 부산·울산·경남지역 선거인단 상대 합동연설회에서 “대표가 되면 이회창 전 총재를 ‘삼고초려’해서라도 다음 총선에 모든 힘을 결집시키겠다”는 최 의원의 발언이 터져나왔다. 이날 발언은 ‘이행각서설’에 날개를 달아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최병렬 의원 캠프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이행각서 같은 것은 없다. 이성희 전 특보가 미국에 가는 이 전 총재 측근인사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각서 같은 것을 전달한 사실은 없다”며 “그 측근인사도 자신의 볼일 때문에 미국에 갔다고 한다”고 밝혔다.
최 의원측 관계자는 문제가 된 ‘삼고초려’ 발언이 나온 배경에 대해서 이같이 설명한다. “이행각서와 관련된 루머가 나돌기 시작하자 우리 진영에서는 우리의 상대가 ‘창심’을 악용해 우리를 공격한다고 분석했다. 우리도 나름대로의 대비책이 필요했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전 총재의 명예회복을 최 의원이 해주겠다는 언급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대책이 세워진 바로 다음날인 지난 13일 최 의원이 부산에서 이 전 총재에 대한 발언을 하게 된 것이다.”
▲ 한나라당 당권주자들의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구애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
이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서청원 의원측 관계자는 “몇 주 전 한 일간지 여론조사에서 우리가 최 의원을 약 10%차로 앞서면서 1위를 달리는 것으로 나온 바 있지만 당시 그 언론사는 파장을 우려해 발표를 하지 않았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이 같은 결과가 나온 원인을 최 의원의 이 전 총재에 대한 ‘삼고초려’ 발언의 ‘약발’이 먹힌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행각서 논란에 대해 이 관계자는 “들어본 적도 없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창심과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는데 우리가 그런 소문을 퍼뜨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이행각서 논란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지만 서청원 최병렬 양 후보진영 모두 한나라당 대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있어 ‘창심’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선 공감한 셈이다. 또한 이는 전당대회가 끝난 이후에도 한나라당이 ‘창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란 지적을 낳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당권경쟁이 끝나도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창심’을 파고들 것”이라며 “당권경쟁 과정에서 드러난 당원 민심을 보더라도 승자는 당을 추스르고 내년 총선 준비를 위해 창심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의원은 또 “이번 당권경쟁에서 패한 쪽은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보존도 힘들 것이란 지적도 나오는데 이런 상황에서 패한 쪽 인사가 필사적으로 잡을 지푸라기가 창심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당권주자 진영에서 활약해온 이 전 총재 측근 인사들의 향후 행보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 인사들 중 상당수는 내년 총선을 내심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 까닭에 당권경쟁에서 패한 주자측에 가담한 인사들은 더욱 애타게 ‘창심’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로 유력 당권후보군에서 밀려난 한 주자를 지원했던 중진 K의원은 최근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전 총재를 다음 총선에 전국구로 옹립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한편 당권전쟁 이후 ‘창심전쟁’으로 번져갈지 모를 당내 기류에 대해 ‘창심논란’의 발원지인 셈인 서청원 최병렬 두 의원측은 되도록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서청원 최병렬 두 사람은 당권경쟁 과정에서 직·간접으로 이 전 총재에게 계속 ‘구애’를 하면서 일부러 창심과 관련된 전략을 수립하고 급기야 창심과 관련된 소문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며 “이후 이들의 이 전 총재에 대한 ‘러브콜’이 거세질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전망했다.
대통령후보 시절 이 전 총재의 보좌역을 지낸 한 인사는 “아직도 한나라당 대의원들 가슴에는 새 당대표보다는 이회창 전 총재가 더 크게 남아 있을 것”이라며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키를 쥐는 것은 바로 창심을 붙잡는 것이 아니겠나”라고 반문하며 당권전쟁에 이어 ‘창심 얻기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