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잔뜩…‘장마’에 대비하라
▲ 연합뉴스 |
먼저 단기적으로는 저가매수를 했다가 향후 반등의 수혜를 노리라는 전략이다. 유럽이 최악의 사태는 피할 것이고, 따라서 코스피가 마지노선인 1780선은 지킬 수 있으니 1800 언저리에서 일단 매수하란 조언이다. 곽중보 삼성증권 연구원은 “시장 안정을 위한 각국 정책당국들의 대책에 기대가 높아질수록,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하반기 유럽 재정위기 당시 수준으로 근접한 가격매력이 부각돼 저가매수 자금이 유입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저가매수보다 당분간 증시를 떠나있으란 조언도 만만치 않다. 저가매수 전략 추천의 근거가 되는 코스피 마지노선 1780이 제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란 이유다. 저가매수론자들이 정한 1780은 올 연말 상장기업들의 이익규모가 연초 예상한 정도를 달성한다는 가정이 반영된 수치다. 만약 상장기업들의 올 이익규모가 당초 예상에 못 미치게 되면 마지노선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익이 낮아질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게 신중론자들의 논리적 근거다.
익명의 자산운용사 대표는 “위기 상황에서는 적정한 주가수준을 예측하는 자체가 의미가 없다. 시장은 늘 실물경제를 앞서 반영하는 만큼 경제가 더 나빠질 것 같으면 나빠질 상황을 미리 반영하는 속성이 있다”면서 “유럽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코스피 1700이 문제가 아니라 1600, 1500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꼬집었다.
민간의 의견이 이처럼 나뉘는 가운데 정부의 입장은 신중론에 좀 더 가깝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저성장 징후가 보이는데, 이는 수출·일자리와 직결된다”며 “(당초) 상저하고(上低下高)라고 전망했는데, 오히려 하반기 성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으니 경제팀은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6일 열린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이 대통령은 “유럽 재정위기가 금융 위기, 실물 위기를 가지고 오고 있어서 이 위기를 벗어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재차 강조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최근 간부회의에서 “유럽 재정위기는 주변국에서 중심국으로, 재정위기에서 은행위기로 확산하고 이제 스페인의 은행위기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192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큰 영향을 미친 사태로 기록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경제규모가 그리스의 5배인 스페인의 은행위기가 촉발되면 그 자체로 충격이 크고 실물위기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어 대단히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세이자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인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도 최근 “이번 위기는 1929년 대공황보다 오래 갈 수 있다. 대공황은 단순한 유동성 위기였지만 지금은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특히 “올 경기가 상저하고일 거라는 증권사 전망이 있는데 점저(漸低·지속적인 침체) 쪽으로 갈 것으로 본다. 미국과 남유럽은 빚과 재정을 끌어다 소비에 열중하고 독일·중국·일본은 열심히 생산만 한다. 미국 등 선진국이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돌파구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앞으로의 시장 방향에 대해서는 신중론자들의 논리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는 저가매수론자들조차 쉽게 올 증시가 2000선을 회복할 것이라 장담하지 못하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저가매수론자들의 올해 코스피 예상밴드는 1750~1950선이다. 저가매수론자들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비교적 많은데 아무래도 주식거래를 유발해야 수익이 발생하는 증권사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라는 해석이 많다. 겉으로는 저가매수를 주장하는 듯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들도 속내를 들어보면 현재 시장을 꽤 비관적으로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그리스 부도 위험과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 등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설령 그리스와 스페인이 최악의 상황을 넘긴다고 해도 현재의 빚더미에서 탈출하려면 상당기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이는 유럽의 경기침체를 가져오고, 유럽에 대한 수출비중이 큰 중국 경제의 성장둔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유럽과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50%를 넘는 우리 수출기업들이 당초 예상했던 이익을 거둘 수 있으리라 장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유로존 위기가 단순한 몇 개국의 유동성 위기를 넘어 실물경제의 장기침체로 발전하고 있지만, 당장 급한 유동성 문제가 해결될 경우 증시가 반짝 반등할 가능성은 아직 열려있다. 자국보다 경제력이 약한 국가들을 유로존에 묶어둠으로써 유로화 약세에 따른 수출경쟁력을 강화해 온 독일이 결국은 돈을 풀어 파국은 막을 것이란 예측이 많다.
올 연말 대선을 앞두고 반드시 경기를 살려야 하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3차 양적완화라는 ‘돈 살포’에 나설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올해 지도부가 바뀌는 중국 역시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 다행히 최근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어 당장 돈을 푸는 데 따른 물가부담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처럼 인위적으로 돈 살포에 나선다고 해도 그 효과는 일시적일 것이란 견해가 많다.
청와대 경제팀 고위관계자도 “결국 유럽이나 미국이나 돈을 더 풀어서 지금의 경제난을 타개할 수밖에 없는데, 경제가 불안한 상황에서 풀린 돈이 갈 곳은 안전자산이나 금, 원자재 등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경기부양 효과는 줄이면서 물가상승 가능성만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도 “돈을 풀어도 그 돈이 금융기관의 재무제표를 강화하는 데나 대형 투자기관들의 자본차익 추구에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1, 2차 양적완화 때도 그랬지만 기업의 설비투자와 고용확대 이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보다는 자산시장의 가격상승만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 부작용”이라고 풀이했다. 이에 따라 증시에서는 지난 2009년 이후 유동성 장세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한 투자자문사 고위관계자는 “결국은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이나, ‘전·차(전자, 자동차)’ 같은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지수보다는 몇몇 주도주와 업종만 두드러지는 장세다. 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수출주가 될 텐데, 문제는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앞으로 상당한 견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며 “유럽과 미국 등 경제난을 겪고 있는 국가들의 간판기업들은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경쟁사를 공격할 것인데, 어떻게 이를 견뎌내느냐가 관건이다. 거시경제를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개별 기업들이 글로벌시장에서 어떤 승부를 벌일지도 예측이 어렵다. 여러모로 상당히 어려운 시장흐름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