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복지는 ‘인터넷’ 무기는 ‘트윗’
흔히들 선거운동을 가리켜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한다. 실제 총부리만 겨누지 않았을 뿐이지 상대를 공격하고 쓰러뜨려 이기는 게 목적이긴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치열한 전쟁이 인터넷의 발달로 서서히 변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소셜미디어서비스(SNS)의 등장으로 지난 몇 년 동안 각 나라의 선거운동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왔다. 어느덧 SNS가 선거운동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무기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선거운동을 가리켜 ‘잠복해서 벌이는 공격’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패턴은 오는 11월 치러질 미 대선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8년 이미 한 차례 SNS 전쟁을 벌인 바 있는 민주, 공화 양당은 이번 선거에서도 SNS를 적극 활용하는 선거운동 방침을 내세우면서 치열한 디지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트위터의 위력을 보여주는 작은 해프닝이 하나 일어났다. 트위터에 올린 단문 하나가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른바 ‘로젠게이트’라고 불린 이 사건은 민주당 선거 전력가인 힐러리 로젠이 CNN 방송에 출연해 “롬니의 아내는 평생 단 한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따라서 미국 대부분의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문제, 즉 아이들 양육문제, 교육문제, 장래문제 등을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이는 “여성들이 진짜 걱정하고 있는 것은 경제문제라고 내 아내에게서 들었다”라는 롬니의 발언에 대한 공격이었다. 즉, 전업주부가 경제문제를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는 비아냥거림에 다름없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발언이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모으면서 화제가 된 것은 엉뚱하게도 CNN이 아닌 트위터 때문이었다. 로젠의 발언을 ‘전업주부 논쟁’으로 확대시킨 인물은 롬니 선거캠프 대변인인 게일 지코였다. 로젠의 발언이 실언(?)이라고 판단한 지코는 즉시 자신의 트위터에 “오바마 캠프의 전략가인 로젠이 다발성경화증과 유방암을 이겨낸 여성이자, 다섯 아들을 키운 여성인 앤 롬니를 한 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비난했다”라는 글을 올렸다.
트위터의 영향력은 무시무시했다. 순식간에 리트윗된 그의 글로 인해 로젠과 민주당을 비난하는 여론이 전국적으로 형성됐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앤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나는 다섯 아들을 키우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전업주부를 선택했다. 믿어 달라,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라며 입장을 표명하자 전업주부 논쟁은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더욱 확산됐다.
결국 CNN, 폭스뉴스 등 언론들도 뒤늦게 이 논쟁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로젠게이트’는 한동안 언론의 톱뉴스가 되고 말았다. 오바마 진영 역시 트위터의 영향력을 깨닫고 슬그머니 로젠에게서 거리를 두는 한편 공식 사과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이 작은 소동은 결국 롬니 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이에 대해 NBC 방송국 정치담당 기자이자 뉴스부 국장인 척 토드는 “우리는 앞으로 여러 달 동안 이처럼 과장된 스캔들을 더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딕 코스톨로 트위터 최고경영자는 “앞으로 트위터로 재잘대지 않는 사람은 낙오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지코 대변인 역시 “요즘 나는 언론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대신 상대가 트위터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가 더 신경이 쓰인다”고 말하면서 이번 선거에서 SNS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사정이 이러니 롬니 역시 평소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SNS 사용자들을 의식한 유세를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다. 가령 사우스캐롤라이나 선거 연설에서 “제 경제정책은 아이폰처럼 스마트합니다”라고 말한 것이 한 예다. 현재 롬니의 페이스북 팬은 170만 명을 넘은 상태며, 트위터 팔로어는 50만 명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오바마에 비하면 사실 굴욕적인 수준이다. 지난 2008년 대선 때부터 꾸준히 SNS를 활용해왔던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온라인 선거운동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재 오바마의 페이스북 팬은 2690만 명을 넘었으며, 트위터 팔로어는 1600만 명을 훌쩍 넘고 있다.
2008년 오바마가 단체 이메일과 페이스북 모금 운동에 힘입어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 것을 가리켜 인터넷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정치판의 선구자’라고 칭송했다. 실제 오마바 측의 당시 소셜미디어 담당 팀은 SNS를 통해 수백만 명의 팬들을 동원하거나, 온라인 가상 당선 파티를 열거나, 페이스북을 통해 선거자금을 모금하는 등 활발한 온라인 선거운동을 펼쳤다.
또한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을 공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유튜브를 적절히 활용해서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했다. 매케인이 유세 도중 저지르는 크고 작은 말실수를 찾아내서 유튜브에 올려 퍼뜨리는 방법이 그것이었다.
이 가운데 특히 SNS를 통한 기부금 모금은 오바마 캠프가 실시한 선거운동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것으로 꼽힌다. 지난 2008년 페이스북의 ‘기부(Donate)’ 앱을 통해 모금한 선거자금은 자그마치 5억 달러(약 5850억 원)에 달했으며, 이는 인터넷 모금액 역사상 기록적인 액수였다. 오바마 디지털 캠프 측은 올해 모금액은 이보다 두 배는 더 많은 10억 달러(약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같은 액수가 가능한 것은 페이스북 사용자 수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4년 전 4000만 명이었던 페이스북 사용자 수는 올해 미 유권자 수를 맞먹는 정도인 1억 6000만 명으로 늘어났다.
페이스북을 통해 방대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점도 선거운동에 있어 유리하다. ‘좋아요’를 누른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정보는 시카고에 위치한 중앙 데이터센터에 저장되며,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선거전략을 세우거나 선거 광고를 제작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가령 “전쟁터는 인터넷이고, 무기는 트위터다”라고 말하면서 온라인이라는 매복지에 숨어서 전투를 벌이는 오바마 선거캠프의 대변인인 벤 라볼트는 얼마 전 롬니의 ‘스위스 비밀 계좌’를 공격하는 TV 선거 광고를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유권자들에게 홍보했다. 1만 명이 넘는 자신의 팔로어들에게 그는 “우리의 새로운 선거 광고는 ‘스위스 비밀계좌’다”라는 짧은 멘션과 함께 “반드시 30초짜리 TV 광고를 유튜브에서 보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트위터를 통해 “스위스 계좌를 보유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투기를 하거나, 아니면 탈루를 하기 위해서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SNS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자 인터넷 선거운동에 쏟아 붓는 금액도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 지난 대선 때 양당 후보들이 인터넷 선거운동에 투자한 돈은 약 2200만 달러(약 250억 원)였지만 올해는 이보다 더 많은 1억 6000만 달러(약 1870억 원)가 투입될 예정이다.
이 정도의 투자가 아깝지 않다는 것은 미 유권자들의 SNS 활용 변화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 설문조사 결과 미 유권자들의 82%가 ‘주로 인터넷을 통해 대선 관련 정보를 얻는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2008년 26%였던 것에 비해 세 배 넘게 늘어난 수치다.
또한 SNS 사용자 수가 지난 4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트위터의 경우 2008년 340만 명에서 4년 만인 2012년 현재 2400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페이스북 역시 4400만 명에서 1억 6000만 명으로 급속도로 증가했다. 유튜브 역시 1억 2100만 명에서 1억 7900만 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긴 마찬가지다.
SNS 사용자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성향 역시 변화를 보이고 있다. 2008년에는 44%가 민주당을 지지했던 것에 비해 공화당 지지자는 29%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각각 38%와 40%로 비등한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SNS 사용자들 사이에서 선호하는 정당의 구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선거 풍토를 의식한 라볼트는 “디지털 공격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우리는 이 동력기를 선거가 끝날 때까지 고속으로 가동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오프라인 못지않게 치열한 온라인 전쟁을 선포했다.
과연 남은 5개월 동안 양쪽 진영이 어떻게 SNS를 활용할지 이번 대선에서 흥미롭게 지켜볼 대목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