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대선주자도 미국(미권스·국민의 명령) 손에…
▲ 지난 9일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후보가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 대표는 대의원 전국투표에서 뒤졌지만 모바일 투표에서 역전극을 펼쳤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경선은 전국 지역순회 투표로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역시 반쪽짜리 성공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70% 비중의 모바일 투표 선거인단 12만여 명(실제 투표한 사람은 8만여 명)을 모으는 데 그쳐 큰 흥행을 끌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지난 1월 통합 이후 가진 첫 번째 당대표 경선에서 56만여 명이 모바일 투표를 신청해 49만여 명이 투표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설상가상 12만여 선거인단 가운데 5만 5000여 명은 투표 신청 마지막 날 등록한 것이 알려지면서 모바일 투표가 자발적인 참여가 아닌 ‘조직 동원’이었다는 비난도 더해졌다.
특히 모바일 투표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쪽은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과 문성근 전 최고위원을 주축으로 결성된 ‘국민의 명령’이었다. 회원 수 20만여 명에 달하는 미권스와 18만여 명의 국민의 명령은 친노계인 이해찬 후보를 적극 지지하며 투표를 독려했다. 대의원 전국투표에서 뒤졌지만 모바일 투표에서 5만 138표(연령 보정을 거친 득표수 기준)를 얻은 이해찬 후보는 4만 6343표를 얻은 김한길 후보를 크게 따돌렸다.
‘모바일 역전’에서 맛을 본 이해찬 신임 대표는 전당대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대선 경선에서 모바일 선거인단 300만 명을 만들겠다”고 공언해 반대 진영의 거센 반발을 샀다. 대의원 득표에서 1위를 차지했던 김한길 최고위원은 “6·9 전당대회 결과가 당심과 민심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속내를 비췄고 비노계인 이종걸 최고위원 역시 모바일 투표의 연령 보정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며 경선 룰 수정에 뜻을 보탰다.
▲ 정봉주 전 의원과 문성근 전 최고위원. |
경선준비기획단장을 맡은 추미애 최고위원 역시 “경선 룰이 고무줄이었다”며 비판대열에 동참했다. 추 최고위원은 “개인 정치인을 위해 활동한 집단에 정책대의원을 배정한 것은 특혜”라며 국민의 명령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국민의 명령의 한 운영위원은 “민주통합당 창당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단체에게 당 대표를 뽑는 데 있어 일정 부분 몫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번 당대표 경선에서 순수 득표로만 계산할 경우 이해찬 대표가 더 많은 득표를 얻었는데 이런 언급은 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신임 최고위원의 잇단 불만제기가 경선 결과를 승복하지 못한 태도라는 지적도 있다. 민주통합당 소속 한 보좌관은 “영·호남의 격차를 메우고 젊은 세대 투표 독려를 위해 사전에 협의한 사항임에도 아깝게 진 비노계 측이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당 안에서 자기 세력으로 끌어들인 대의원과 당원의 표만을 민심이라고 생각하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라고 꼬집었다.
미권스의 한 회원 역시 “이종걸 최고위원은 2030세대의 득표로 인해 최고위원이 됐음에도 2030세대의 모바일 정치 참여를 비난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있다”며 “요즘 미권스를 친노 프레임 안에 가두려는 세력이 있는데 모든 후보들을 포용하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대선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방어에도 대선 경선 때 조직 동원을 막기 위한 게임 룰 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통합당의 한 초선 의원은 “신임 최고위원의 주장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이번 경선에서 대의원들의 비중이 너무 낮았던 반면 상대적으로 모바일 투표 비중이 높았다”며 “오픈프라이머리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하더라도 300만 명을 모아 민심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여야 모두 대선 경선 룰로 고려하고 있는 오픈프라이머리에 관해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생 최 아무개 씨는 “알려진 것과 달리 미국도 대선 경선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모든 주에서 채택하지 않고 있고 일부 주는 전당대회를 통해 예비선거를 치른다. 통계상 오픈프라이머리는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유리하고 한 번 이긴 사람이 계속 이기는 경향이 있어 정치 신인에게는 높은 벽”이라며 “당과 무관한 사람에게 대선 후보 선택을 맡기는 것은 자칫하면 정당 정치의 근간을 흔들 수 있기에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민주통합당 경선 룰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모바일 투표라는 것이 대의원 투표만으로 채울 수 없는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인데 후보들의 조직 동원의 장이 된 측면이 보였다”며 “선거인단이 직접 투표를 신청하는 인바운드 방식보다는 무작위 추출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아웃바운드 방식을 채택한다면 조직 동원 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 관계자 역시 “각 진영에서 자신들이 유리한 대로 경선 룰을 짜려는 것 같다. 이대로는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더라도 조직 동원표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새누리당의 2:3:3:2(대의원:책임당원:일반국민:여론조사)룰에서 일반국민 비중을 높이고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이 각 당의 대선 후보를 뽑는 합리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