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세워왔던 ‘지분 24%’ 어피니티 협조 필요…교보생명 “기업가치 제고에 긍정적 영향 줄 것”
#교보생명 금융지주사 전환 추진 앞과 뒤
교보생명은 최근 금융지주사 설립 계획을 공식화했다. 교보생명은 지난 2월 9일 정기 이사회에서 금융지주사 설립 추진 안건을 보고 했다. 교보생명은 앞으로 인적분할 이사회 결의, 주주총회 특별결의, 금융위원회 인가 승인 등의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최종 금융지주사 출범 시기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2005년부터 금융지주사 전환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적인 계획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보생명은 금융지주사 설립 이유에 대해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신성장 동력 발굴, 관계사 간 시너지 창출 등을 통한 중장기적인 성장 동력 마련 등을 들었다. 교보생명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교보생명을 주축으로 증권, 자산운용 등 다양한 비보험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지주사 전환 추진에 대해 교보생명 측은 “교보생명 중심 지배구조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의 그룹 성장전략 수립 및 추진이 가능한 새로운 기업지배구조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교보생명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통해 신창재 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고, 경영승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한다. 교보생명은 자회사의 주식 및 현금 등을 분할해 금융지주사를 설립한 후 기존 교보생명 주주에게 신설 금융지주사의 신주를 교부할 계획이다. 이후 금융지주사는 유상증자를 통해 신주를 발행할 예정인데, 해당 신주에 대한 납입금 대신 교보생명 주식을 현물로 출자 받는다.
교보생명 주주들은 교보생명 주식을 신설 금융지주사 주식과 교환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모든 교보생명 주주가 금융지주사 주식 교환에 참여할 가능성은 낮다. 대다수의 소액주주는 그룹 지배력 강화나 경영권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신창재 회장 입장에서는 주식 교환에 참여하는 교보생명 주주 비중이 낮을수록 그룹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국내 증권사 한 연구원은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들은 대부분 인적분할과 현물출자 방식을 통해 전환했고,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지배력도 많게는 두 배가량 증가했다”며 “지주회사의 당초 취지는 지배구조 개선이었지만 이와 달리 재벌들의 편법 승계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신창재 회장의 지분이 늘어나면 향후 경영 승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신 회장은 1953년생이다. 70세를 넘기면서 경영권 승계를 고려해야 되는 시점이 됐다. 신 회장은 현재 교보생명 지분 33.78%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의 자녀들은 교보생명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상속세 납부 등을 감안하면 신 회장의 현 지분율이 안심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신창재 회장의 후계자로는 장남 신중하 교보생명 그룹데이터전략팀장이 거론된다. 신중하 팀장은 최근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교보생명은 지난 4월 27일 교보증권, 교보문고, 교보라이프플래닛, 교보정보통신, 디플래닉스와 함께 ‘교보그룹 6자간 데이터 체계 및 인프라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교보생명은 그룹데이터전략팀이 그룹의 통합 데이터 전략 수립과 실행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신 팀장이 계열사 데이터 통합을 주도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데이터 통합 작업 역시 경영 승계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한다. 교보생명그룹은 통합된 계열사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신규 고객을 확보할 계획이다. 신중하 팀장이 교보생명 외 계열사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신 팀장은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금융지주사 전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교보그룹 데이터 체계 및 인프라 구축은 지주사 설립에 앞서 자회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교보생명 관계자는 “지배구조 강화와는 큰 관련이 없고,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라며 “분할 비율 등이 정해지지도 않아서 지배력 등을 논할 단계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피니티의 협조 가능할까
교보생명의 의도가 어떻건 금융지주사 전환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피니티 컨소시엄을 설득해야 한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어피니티, IMM프라이빗에쿼티(PE), 베어링PE,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4개 회사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이 가진 교보생명 지분은 약 24%다. 인적분할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안에 해당한다. 특별결의 사안은 전체주주의 3분의 1 이상, 출석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교보생명 분할을 반대하면 금융지주사 설립도 사실상 어려워진다.
공교롭게도 신창재 회장과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오랜 갈등 관계에 놓여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24%를 인수했다. 신 회장은 당시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인수한 지분의 의결권을 갖는 대신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의 기업공개(IPO·상장)를 시행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IPO를 하지 못하면 해당 지분 24%를 신 회장이 되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교보생명의 IPO는 이뤄지지 않았고, 신 회장이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교보생명 지분을 매입하지도 않았다. 교보생명 지분 매각가를 놓고 신 회장과 어피니티 컨소시엄 간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으며 현재도 이와 관련한 법적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교보생명은 지난해에도 IPO를 추진했지만 한국거래소로부터 미승인 결정을 받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점이 상장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어피니티는 “교보생명이 상장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주주 개인의 분쟁에서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 무리하게 IPO를 추진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며 “신 회장은 계약상 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교보생명은 “교보생명 주주의 약 3분의 2가 IPO에 찬성했음에도 어피니티의 일방적인 반대로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신창재 회장은 지분 분쟁과 지주사 전환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신 회장은 지난 4월 20일 ‘제20회 윤경CEO서약식’에서 기조강연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담당 임원이 어피니티를 포함한 모든 주주들과 접촉해 설명을 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협조를 하지 않겠다고 표명한 곳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피니티는 교보생명그룹 금융지주사 전환과 관련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어피니티 컨소시엄 입장에서 교보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이 손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교보생명그룹은 최근 파빌리온자산운용을 인수했고, 추가 인수합병(M&A)에 나설 뜻을 밝혔다. 교보생명그룹의 기업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신설 금융지주사의 기업가치도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보생명 내부에서는 어피니티를 비롯한 주주들이 금융지주사 전환에 긍정적인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앞서의 교보생명 관계자는 “증권가에서는 대체로 지주사 전환 추진이 기업가치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