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상실에서 빚어진 슬픔이 회오리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우리 시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근일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시인의일요일)가 출간됐다.
몇 해 전 200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한 ‘포스트 미래파’ 시인을 호명하는 자리가 있었다. 당시 연세대 국문과 교수인 조강석 평론가는 이근일 시인에 대해 “거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술의 힘이 있고 이미지도 거침없이 구사한다”고 상찬한 바 있다.
200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근일 시인은 첫 시집을 통해 “둥근 꿈과 허방의 현실 속에서 잘 숙성된 한 편의 정갈한 숲의 몽유라고 부를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히 자신만의 시적 장점을 잘 지켜내고 있다. 꿈과 현실, 실재와 환상의 경계를 지우면서 싱싱한 감각을 직관의 상상력으로 길어 올리고 있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이정현 문학기고가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시집의 중심축을 ‘유년’과 ‘사랑’으로 설정했다. 유년과 사랑의 변주에서 드러나는 그리움과 근심, 사랑의 상실에서 빚어진 슬픔이 중첩하면서 회오리친다.
그래서 이 시집 시편들은 ‘유년시’와 ‘사랑시’로 대별할 수 있다. 유년은 “어린 시절의 천진한 기억”이다. 사랑은 “자신의 삶 속에서 후회해야 할 것밖엔 발견하지 못하는 한 성년의 신음”이다.
시인의 시에서 유년은 손에 잡히지 않아 ‘환상’이고 사랑은 이룰 수 없어 ‘꿈’으로밖에 표기할 수 없다. 그래서 그에게 유년은 “예찬”이고 사랑은 “환멸”이다. ‘환상’과 ‘꿈’은 시집 ‘당신의 기억은 산호색이다’의 양쪽 바퀴와 같다. 동시에 시를 끌고 가는 엔진이기도 하다.
시인 이근일은 시 쓰기에 대해 “나무에 오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몇 번을 미끄러져도 다시 오를 수 있는 것”이며 “오르고 올라도 그 끝자락엔 영영 닿을 수 없는 것”이라 읊조린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