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비만인에 대한 안전성·효과성 검증된 의약품”…관계 당국 통제 필요성 제기
그러나 당뇨병과 비만치료에 쓰이는 삭센다가 정상 체중인 사람에게 다이어트용으로 처방되면서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다이어트 비결로 밝혔던 비만치료제 ‘위고비’가 국내 허가 승인을 받는 등 비만치료제 시장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문가들은 비만치료제가 무분별하게 처방되지 않도록 당국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낸다.
비만치료제 ‘삭센다’는 체중관리를 위한 약품으로 하루에 한 번 지방이 많은 허벅지나 복부에 주사하는 방식으로 투여한다. 삭센다의 성분인 ‘리라글루타이드’는 당뇨의 치료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할 때 쓰였는데, 혈당 조절 효과뿐 아니라 체중 감량 효과가 나타나면서 비만치료제로 개발이 추진됐다. 2014년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 이후 우리나라에는 2018년 3월부터 처방되기 시작했다.
삭센다는 GLP-1 유사체라고도 불린다. GLP-1은 음식을 먹을 때 인슐린 분비를 늘려 혈당을 낮추고 음식물 통과를 지연시켜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이다. 삭센다는 이 호르몬보다 더 천천히 분해돼 포만감이 더 오래 가도록 만든 유사체다. 삭센다 주사를 맞으면 포만감이 오래 유지되기 때문에 식욕이 억제돼 체중 감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삭센다를 개발한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는 초기 체질량지수(BMI)가 30kg/m2인 비만환자나 한 가지 이상의 체중 관련 동반질환이 있으면서 초기 체질량지수가 27kg/m2 이상 30kg/m2 미만인 과체중 환자의 체중관리를 위해 저감 식이요법 및 신체활동 증대의 보조제로 삭센다를 투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 12세 이상 청소년은 초기 체질량 지수(BMI)가 성인의 30kg/m2 이상에 해당하거나 체중이 60kg를 초과해야만 투여할 수 있다고 본다.
실상은 다르다. BMI 지수가 정상인 경우에도 처방되고 있다. ‘일요신문i’가 지난 9일 찾은 서울 종로구의 한 의원 인근 약국 관계자는 “삭센다가 비만치료제긴 하지만 정상 체중인 분들도 처방받으러 많이 온다”고 귀띔했다. 해당 의원은 온라인상에서 이른바 ‘삭센다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의 한 가정의학과 의원 원장은 “정상 체중인 분들이 훨씬 많이 처방받는다”며 “비만인 분들만큼 극적으로 많이 빠지진 않지만 목표를 적게 잡으면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 중구의 한 가정의학과 의원 원장은 “정상 체중이라도 갑상선 수질암, 갑상선 수질암 가족력, 췌장염 등의 병력이 없다면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는 관련 정보가 넘쳐난다. 비급여라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에 조금이라도 싸게 삭센다를 처방받기 위해 원정을 가는 경우도 많다. 최근 삭센다를 처방 받은 A 씨는 “종로5가에 (삭센다) 최저가로 유명한 병원이랑 약국 정보를 검색하고 다녀왔다”며 “1펜에 처방비는 8000원이었고 약국에서 삭센다 구매 가격은 1펜에 7만 원이었다”고 전했다. A 씨는 “주변 다른 약국에는 주어 없이 6만 7000원이라고 써 붙여 놓은 곳도 봤다”며 “그만큼 삭센다 처방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삭센다가 엄연히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이 됐고, 비만 및 과체중 환자의 체중관리를 위한 약물이니만큼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다. 이동근 건강한사회를위한약사회(건약) 사무국장은 “삭센다는 BMI지수상 비만이거나 과체중인 사람에 대한 안전성과 효과성이 검증된 의약품으로서, 정상체중인 사람들에 대한 검증은 안 된 상태”라며 “현재까지는 비만‧과체중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려보다 효과성이 훨씬 크기 때문에 사용이 허가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의료기관이나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정상체중에도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비만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해 개발된 약품이고 정상체중인 사람에 대해서는 연구가 안 됐기 때문에 안정성 확보가 안 돼 있다고 보면 된다”며 “다만 당뇨 환자의 경우는 일정 용량까지는 정상체중에서 연구가 돼 개발된 약품이 있다”고 전했다.
삭센다 이상 반응으로는 오심, 구토, 설사, 변비, 소화불량, 위염, 위식도역류질환, 상복부통, 복부팽만 등의 위장장애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2022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년간 6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삭센다 시판 후 조사 결과 이상사례 발현율은 인과관계와 상관없이 38.06%, 670명 중 255명에서 총 395건이 보고됐다. 이 중 중대한 약물이상반응은 0.60%로 670명 중 4명에서 4건이 발생됐다. 구체적으로는 때때로 허혈성 결장염, 제I형 양극성 장애, 수막종, 급성관상동맥증후군 등의 증상이 발현됐다.
서울 강남구에서 정형외과 병원을 운영하는 한 전문의는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부작용은 없는 편”이라면서도 “동물실험에서 갑상샘암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 돼 있기 때문에 갑상샘암을 포함한 내분기계 암의 과거력, 가족력을 가진 분들은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전문의는 “임산부, 수유부, 만 12세 미만, 75세 이상의 고령자, 심부전, 중증 신장 및 간 기능 장애가 있는 경우 역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동근 건약 사무국장은 “삭센다는 마약류가 아니기 때문에 처방을 많이 해도 보건당국에서 통제하지 않는다”며 “의존성이나 정신과적 문제 등이 적은 비아그라 역시 관리당국의 통제를 받는 것처럼 (삭센다도)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에 대해 행정력으로 통제하고 사용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