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유탄’에 신탁투자자 ‘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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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월29일 하이닉스 노조원들이 외환은행 앞에서 매각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다음날인 30일 하이닉스 이사회는 매각안을 부결시켰다. [연합] | ||
한국 경제의 최대 고민거리 중 하나인 하이닉스가 끝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일부 금융기관이 고객 신탁상품에 하이닉스 채권을 편입함에 따라 수만 명의 예금 가입자들에게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줄 위기에 처한 때문이다. 직장인 K씨도 피해자 중의 한사람. K씨는 외환은행에서 운영하는 비과세신탁 금융상품의 이자가 다른 상품보다 좋다는 얘기를 듣고 이 상품에 가입을 했다가 뜻밖의 손해를 입을 처지다.
K씨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은 이달 초. K씨는 평소 거래해온 외환은행 영업담당자로부터 “고객이 가입한 신탁상품의 실적 배당이 좋지 않을 것 같으니, 다른 신규 정기 예금으로 예치하라”는 통보를 받았던 것. 이 담당자는 “상품을 옮기면 연 9.2%의 이자를 보장해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담당자가 제시한 정기예금 이자율 9.2%는 지점장 우대금리 5%보다 4.2%포인트나 높은 것이다.
갑작스런 은행의 제안에 어리둥절해 하던 K씨는 자신이 가입한 금융상품에 함께 든 주위 사람들에게 확인한 결과, 은행측이 부실채권인 하이닉스의 회사채를 자사 금융신탁 상품에 임의로 편입했다가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자 예금 가입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상품 이동을 권유하고 있음을 알았다.
K씨뿐 아니라 외환은행의 하이닉스 회사채 편입으로 인해 피해가 우려되는 예금 가입자는 8만2천 계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큰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피해가 우려되는 고객들은 최근 앞다퉈 정부기관 홈페이지 등에 항의의 글을 올리는가 하면 집단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향후 이 문제가 법정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외환은행 신탁상품의 하이닉스 채권편입 시비는, 지난 2000년 일부 투신사 상품의 대우채 편입파문에 이어 다시 한 번 시비를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
문제의 발단은 외환은행이 지난 4월 중순 경 자사가 운용하는 일부 신탁 상품에 하이닉스 채권 규모를 대폭 늘이면서부터. 당시 외환은행 신탁담당부는 하이닉스-마이크론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고 판단, 당시 16%였던 하이닉스 회사채 충당금을 50%까지 끌어올려 신탁상품 가입자 계좌에 대거 편입했다.
그러나 한 달 뒤인 이달 초 기대를 모았던 하이닉스-마이크론의 협상이 불발로 끝나면서 하이닉스의 주식이 폭락, 회사채 값도 급락하고 말았다.
당시 외환은행 신탁담당부가 하이닉스 채권을 편입한 계좌는 총 8만2천여 개. 금액은 8천2백억원에 이르는 규모였다. 이 계좌는 신탁상품으로, 다른 확정금리 상품과 달리 운용실적에 따라 배당하는 금융상품이다. 은행이 운용을 잘해서 이익을 많이 남길수록 고객에게 돌아가는 몫이 크다.
그러나 뜻밖에 하이닉스 채권값이 폭락해 실적배당은 고사하고 원금마저 날릴 위기에 몰리자 고객들의 줄해약이 우려됐다. 이에 따라 외환은행은 기존 신탁 가입자를 대상으로 ‘신탁상품을 해지하고 정기예금으로 전환하는 고객에게 영업점장 우대금리(5%)보다 높은 9.2%의 확정 금리를 지급하겠다’는 대안을 생각해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대부분의 신탁 상품 고객이 외환은행과 오랫동안 거래를 해왔는데, 이번 일로 은행과 거래를 끊겠다는 전화를 자주 걸어와 어쩔 수 없이 이런 대안을 생각해냈다”고 털어놨다. 은행으로서는 고객관리의 마케팅 차원에서 신탁상품 해지를 유도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8만2천여 계좌 중 1만1천여 계좌의 고객들은 이미 신탁 상품을 해지하고, 정기 예금으로 옮겨갔다. 일단 기존 신탁상품에서 제안한 최대 14% 금리에는 못미치지만 9%대 금리도 높은 것이어서 일단 고객들의 원성을 무마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외환은행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신탁상품’이 비록 ‘실적배당 상품’이기는 하나, 금감원도 별다른 제재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외환은행의 고객 손실 보전이 전해지면서 타 은행 등이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렇게 되자 당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금감원은 외환은행의 예금상품 이동에 대해 신탁상품 운용원칙 위배 가능성 등을 들어 우대금리 적용을 중지하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결국 금감위는 지난 10일 정례회의를 통해 외환은행의 손실보전은 신탁업 규정에 저촉된다고 결론을 지었다. 금감위의 결정에 따르면 외환은행은 향후 손실보전을 금지해야 하는 것은 물론, 기존에 이미 정기예금으로 옮긴 고객들에 대해서도 우대 금리가 아닌 5%의 확정 금리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금감원의 이 결정은 엄청난 후유증을 몰고 왔다. 기존의 신탁 상품 고객은 물론, 정기예금으로 교체한 고객 모두에게 혼란을 가중시킨 것이다. 특히 우대금리를 적용키로 했던 1만1천 계좌의 고객들에게는 약정 금리인 9.2% 대신, 5%대의 금리를 지급할 수밖에 없어 법정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는 상황.
현재 외환은행은 은행 이미지가 실추된 것뿐만 아니라, 고객 설득에 대한 명분도 뚜렷이 없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고객 손실 보전 불가 결정 이후 아직까지 정확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고객이 무려 8만2천여 명에 이르는 데다, 이들 중 일부는 집단 소송을 벌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파장이 커질 조짐이다.
정혜연 기자 ch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