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통큰 지원? 왠지 급조한 냄새가…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일요신문 DB |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6월 19일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신 차관은 한국국제경제학회 강연에서 “통화량 증가가 부채 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통화 정책은 통화 관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려서 시중에 도는 통화량을 줄여야 한다는 점을 에둘러 표시한 것이다. 금리가 낮고 통화량이 늘어나서 돈을 빌리는 사람이 많으니 가계부채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입장인 셈이다.
기재부 1차관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는 권리(열석발언권)를 가지고 있다. 이전 정부까지 사용하지 않던 이 열석발언권을 사용하면서도 기재부는 한은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통화정책에 대한 언급을 삼가는 것이 관례였다. 이러한 관례를 깰 만큼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을 드러낸 셈이다.
한은의 입장은 기재부와 완전 딴판이다. 신 차관의 ‘자극’ 이틀 뒤인 21일 김준일 한은 부총재보는 여의도연구소 주최 토론회에서 “경기가 급속히 위축될 경우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기재부를 겨냥한 발언을 했다. 가계부채가 늘어난 원인을 낮은 금리나 통화량에 두지 않고, 경기 악화로 보는 입장을 드러낸 셈이다. 경기가 나빠져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일자리가 있어도 소득은 줄어들고 있다 보니 생계를 위해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1분기 국민총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을 전기대비 0.4%로 지난 2010년 3분기(0.4%) 이래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 여파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빌리는 생계비 대출은 지난 5월 전월대비 0.45% 증가해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가계부채가 가장 큰 문제라는 점을 알면서도 가계부채의 해결책을 이처럼 서로에게 떠넘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재부는 2013년에 균형재정(재정수지가 적자도 흑자도 아닌 상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경기를 살리기 위해 추경예산 편성 등 돈을 시장에 대거 푸는 정책을 사용해 경기를 인위적으로 띄웠다. 이 때문에 재정수지는 매년 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고, 정부 부채는 쌓여갔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는 재정안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2008년 위기 때 곳간에 돈이 쌓여있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또다시 위기가 올지도 모르는데 돈을 마구 쓰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면서 “기재부도 경기를 살려야 가계 소득이 늘어나고 가계부채가 줄고, 이자부담도 덜어진다는 점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할 경우 그리스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정치권의 추경편성 요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기재부가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은은 기재부가 요구하는 기준금리 인상이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을 해체하기는커녕 폭발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준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시중은행의 금리도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은행의 대출이자도 상향조정된다. 가계가 부담해야 할 이자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자가 올라갈 경우 부담이 높아지는 쪽은 저소득 계층이다. 특히 저소득 계층의 경우 낮은 신용등급 때문에 대출이자가 다른 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타격이 저소득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부채 문제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유럽은 정부부채가 문제고, 우리는 가계부채가 큰 구조”라면서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씀씀이를 줄이는 긴축을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채가 많은 곳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이다. 그런데 유럽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긴축이나 구조조정은 쉽지 않다. 머리 나빠서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세 번째는 인플레이션을 통해 부채를 해결하는 것이다. 물가가 올라가면 부채 부담이 줄어드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에 대한 신뢰도를 낮추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면서 “마지막 남은 해결책은 부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관리해나가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 여파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저신용·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상품 개발은 금융위원회나 은행연합회 수준에서 처리하면 되는 문제지 한은이 나설 만한 문제는 아니다”면서 “기재부나 한은이 가계부채 해결책 마련을 서로 떠넘기다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자 급조해낸 냄새가 난다”고 꼬집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