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눈과 귀 그녀 ‘입’에 집중
▲ 김현희는 1988년 1월 15일 안기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압송될 당시와 똑같은 체크무늬 옷을 입고 나왔다. 연합뉴스 |
“김현희 씨, 아무래도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좋겠어요.”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기자회견 사실을 알렸다. 그녀가 완강히 기자회견을 거부하거나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엉뚱한 말이라도 하게 되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자회견이요?”
김현희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요. KAL기 폭파가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밝혀야 돼요.”
“내가 이미 자백을 했는데 왜 기자회견을 해요? 나는 못하겠어요.”
김현희는 이미 자백을 했는데 무엇 때문에 기자회견을 하느냐면서 거부했다.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었다. 안기부 수사관들은 그녀를 차분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공산국가에서는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민주국가에서는 어떤 큰 사건이 터지면 반드시 기자회견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유가족에게 진상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고, 이러한 테러를 자행하는 북한이 얼마나 위험한 국가인지 공개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설득했다.
“기자회견은 한 사람하고 합니까?”
“아니에요. 우리나라의 기자들을 비롯해 일본과 미국 등 여러 나라 기자들과 회견을 해야 돼요. 그들의 질문에 대답해야 해요.”
“많은 사람들과 기자회견을 할 수 없어요.”
“김현희 씨가 유가족들에게 속죄하고 싶다면 회견을 해야 돼요. 진실을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김현희는 결국 기자회견을 승낙했다. 이미 자백을 한 이상 기자회견을 거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녀도 인지하고 있었다.
“김현희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자해할지 모르니까 더욱 감시를 철저하게 해.”
수사국장이 우리 수사관들에게 지시했다. 김현희의 기자회견이 결정되면서 안기부도 바짝 긴장했다. 그녀가 기자회견장에서 ‘김정일 만세’를 부른다거나 ‘KAL기 폭파는 북한의 소행이 아니다’라고 하면 수습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
“한순간도 김현희에게서 눈을 떼지 마. 그렇다고 그녀를 압박해서 불안하게 만들지는 마.”
상부에서 그녀를 담당하고 있는 나에게 지시했다. 그렇잖아도 나는 김현희에게 바짝 신경을 쓰고 있었다. 김현희는 자신이 기록한 진술서를 훑어보는 등 기자회견 준비를 하고 있지만 걱정스럽고 심란한 빛이 역력했다.
‘나는 어떻게 하지?’
기자회견이 다가올수록 나도 걱정이 되었다. 기자회견장까지 내가 김현희를 데리고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안기부 수사관인 내 신분이 노출될 뿐 아니라 얼굴까지 공개되는 것이다. 안기부 수사관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신분을 노출시키면 안 된다는 것을 입사 초기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서 가족들 외에는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에게조차 안기부에 입사한 것을 알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김현희를 바레인에서 압송해 오면서 비행기에서 내리는 내 모습이 TV나 신문을 통해 비춰지면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긴가민가하며 전화를 걸어 ‘혹시 너 아니냐’고 물어와 곤혹스러웠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김현희 옆에 있던 여자가 너 맞지?”
평소에는 자주 연락을 하지 않던 외삼촌이 급하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내가 어쩔 수없이 인정을 하자 안기부에 들어간 것에 대해 알려주지 않은 것을 섭섭하게 생각했다. 그 외삼촌은 미국에 살고 있었다.
한번은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하면서 회사 후문 쪽에서 택시를 탔다.
“이렇게 무서운 데 앞에서 왜 택시를 타세요?”
택시기사가 의아해 하면서 내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빙긋이 웃었다.
“그런데 어디서 본 분 같은데 혹시 TV에 나오지 않았어요?”
나는 깜짝 놀라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기자회견에도 김현희의 팔짱을 끼고 들어가면 나 역시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에 더 얼굴이 알려질 것이 분명했다. 입사한 지 2년 정도 지난 나로서는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얼굴을 숙이든지 머리 모양이라도 바꿔 변장을 해야 했다. 나의 이러한 걱정은 그 후 재판장에 갈 때도 계속되어 그때마다 머리스타일을 바꾸곤 했다.
마침내 1월 15일 기자회견을 하기로 한 날 아침이 밝았다. 김현희는 잠에서 깨어나 세수를 하고 준비를 하면서 내내 침통하고 불안한 표정이었다. 나 역시 기자회견 시간이 다가오자 긴장되기 시작했다. 어떤 돌발 사태가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별 이상이 없겠지?”
안기부 간부들도 잔뜩 긴장하여 우리에게 물었다. 나는 김현희가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옆에서 이야기를 하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네.”
나는 김현희를 살피면서 대답했다. 김현희는 고개를 떨어트리고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오갔을 것이다. 폭파범으로 얼굴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 싫었을 것이고,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북한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이 찍힐 것과 그로 인해 가족들이 입을 피해도 두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바레인에서부터 입고 와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입었던 의상인 하늘색 트레이닝복 위에 바레인에 같이 김현희를 압송하러 갔던 채명희 수사관의 체크무늬 재킷을 입고 나가게 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국민 앞에 나가게 한 것이다. 남산에서 차를 타고 안기부 내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1월 15일은 한겨울이었다. 날씨는 쌀쌀한 편이었고 차창으로 분주하게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자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졌다. 기자회견장으로 쓰이는 강당 주위에 수많은 취재진들이 몰려와 있었다. 우리는 강당 뒤편으로 갔다. 기자들 눈에 띄어 본격적인 회견을 하기도 전에 플래시 세례를 받고 싶지 않았다.
강당 뒤편에 도착하자 벌써 안기부 이상연 1차장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려왔다. 김현희는 그 소리에 겁을 먹고 주저하는 빛을 보였다.
“지난해 11월 29일 하오 2시 5분경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공중 폭발하여 115명의 고귀한 생명을 희생시킨 대한항공858편 폭파사건은 수사결과 북괴 김정일의 지령에 따라 자행된 가공할 만행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번 사건의 범인은 그동안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라는 이름으로 일본인을 위장했던 북괴대남공작원들임이 입증되었습니다. 범인 중 일본인으로 행세하다가 바레인 공항에서 음독자살한 하치야 신이치는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북괴노동당 중앙위원회 소속 조사부 특수공작원 김승일이며 현재 조사 중인 하치야 마유미 역시 북괴노동당 조사부 소속 특수공작원 김현희로 밝혀졌습니다….”
이상연 1차장은 침착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발표했다. 잠시 후 사건 발표가 끝나고 그녀의 회견 순서가 다가왔다. 나와 다른 여수사관이 그녀의 팔짱을 끼자 그녀는 안 가려는 듯 발을 땅에 붙인 채 몸을 뒤로 뺐다.
“여기서 이러면 어떻게 해? 빨리 들어가.”
나는 달래듯, 또 명령하듯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간 담당 수사관도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열린 문 사이로 기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선뜻 걸음을 떼어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지체하면 안 되겠다 싶어 강하게 팔짱 낀 손에 힘을 주고 그녀를 끌다시피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김현희는 마지못해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기자회견장으로 걸어 들어가 중앙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시종일관 고개를 떨어뜨렸다.
기자들은 비록 같은 옷을 입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과 표정의 그녀를 보고 놀란 듯이 일제히 웅성거렸다. 그녀가 입은 옥색 추리닝은 바레인에서 그녀의 조사를 담당했던 경찰 핸더슨의 부인 마리아가 준 것이었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이어지자 그녀는 고개를 더욱 숙였다.
“얼굴을 들어주세요.”
사회자가 그녀를 향해 주문을 했다. 그녀가 비로소 얼굴을 들자 기자들이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먼저 김현희의 진술서 발표가 있겠습니다. 이 진술서는 그녀가 스스로 작성한 것입니다.”
사회자가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기자회견이래야 그녀가 진술서를 읽고 일문일답에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빨리 말문을 못 떼어서 바라보는 수사관들의 애간장을 바짝 태우고 긴장시켰다.
“남조선 비행기 KE858기 폭파로정(爆破路程)에 대해 말씀 드리면….”
마침내 김현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진술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가 원래 크지 않은데다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기자들이 여기저기서 크게 말해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김현희는 그럴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준비해 간 진술서를 빠짐없이 읽는 모습에서 역시 김현희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김현희의 진술서와 안기부 수사결과 발표는 큰 차이가 없었다.
“맹세문에 대해서 말해 주십시오. 어떤 내용입니까?”
어떤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 온 나라가 80년대의 속도로 사회주의 대 건설에 들끓고 있고 남조선 혁명이 고조에 이르고 있으며 적들의 ‘두 개 조선’ 조작 책동이 악랄해지고 있는 조건에서 전투임무를 받고 적후로 떠나면서 우리는 맹세합니다. 우리는 적후에서 생활하며 행동하는 기간 언제나 당의 신임과 배려를 명심하고 3대혁명 규율을 잘 지키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맡겨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높은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지켜 싸우겠습니다. 1987년 11월 12일 김승일 김옥화.”
김현희가 김승일과 함께 폭파 임무를 띠고 떠나기 전에 읽은 ‘적후로 떠나면서 다진 맹세문’도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김옥화는 김현희가 북한에서 위장하고 있던 이름이었다.
정리=이수광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