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입고 영화 보며 ‘근무중 이상무!’
최근 서울의 한 구청이 발칵 뒤집혔다. 그 이유는 이 구청 소속인 한 연예인 공익근무요원에 대한 부실 근무를 고발하는 내용의 주민 신고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해당 구청은 자체 조사를 벌인 뒤 사안을 조용히(?) 마무리 하려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민 신고는 해당 구청을 넘어 담당부처인 병무청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병무청은 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연예인이 복무 중인 곳을 직접 찾아가 현장에서 상황 파악에 나섰다. 병무청의 조사 결과에 따라 이 연예인은 관련 징계 조치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공익근무로 대체 복무를 하는 연예인에 대한 ‘특혜’ 관련 소문은 많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인 사건 진행이 알려진 경우는 거의 없어 향후 상황에 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병무청까지 나선 이번 사건은 한 구청 관할 도서관에서 시작됐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한 주민(남)은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이곳에서 대체 복무 중인 연예인 A를 목격했다. A는 도서관 관리와 이용객 안내 등을 주된 임무로 맡고 있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 주민은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A가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는 모습만 봤다. 때로는 A가 공익근무 요원 복장 대신 반바지를 입고 근무하는 경우도 여러 번 봤다.
처음 몇 번은 ‘그럴 수도 있다’고 지나쳤지만 비슷한 모습을 목격하는 횟수가 반복되자 주민은 A를 근무 태만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이 주민은 도서관 담당자를 찾아 항의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자 이 주민은 해당 구청과 병무청에까지 A에 대한 근무 태만을 신고했다. A의 입장에서 보면 운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주민으로서는 당연한 권리 행사였다.
A를 구청과 병무청에 신고한 주민은 당시 관련자들에게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받는 건 복무를 하는 다른 군인이나 공익근무요원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내용을 함께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가 계속되자 구청은 A를 구내의 다른 도서관으로 배치했다. A와 함께 근무하고 있던 몇 명의 연예인 공익근무요원들까지 동시에 발령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연예인 공익근무요원들과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여러 말들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갑작스러운 이동으로 인해 해당 구청에서 복무하던 일반인 공익근무요원들도 혼선을 입었다”는 게 이번 사건을 지켜본 한 관계자의 말이다.
구청의 이 같은 조치 이후 병무청 관계자는 현장 조사를 위해 6월 말 A가 복무하고 있는 도서관을 찾았다가 또 한 번 황당한 일을 겪었다. 조사가 예정된 당일 A는 병가를 내고 자리를 비운 것. 때 마침 연예인 공익 요원들을 관리하는 담당자까지 공석이었다. 병무청의 1차 현장 조사는 당사자들이 빠진 상태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논란에 휩싸인 A는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스타다. 건장한 체격에 훈훈한 외모를 지녀 특히 여성 팬들이 많다. ‘몸짱’ 연예인을 꼽을 때 빠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미도 넘친다. 그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시작할 때 주위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입소해 팬들의 궁금증을 사기도 했었다.
근무 태만을 이유로 병무청이 조사를 진행한 사실이 밖으로 알려진 건 드문 경우. 하지만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 복무 중인 연예인 가운데 일부는 군복무를 하면서도 각종 특혜를 받아온 건 연예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2~3년 전 공익근무로 복무했던 한 연예인의 경우 해외여행까지 다녀와 연예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무성한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복무 중인 사람은 당국의 허가가 있어야 출국이 가능하지만 이 연예인은 소속 부서장의 ‘비공식 승인’을 받아 자유롭게 해외를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해외 출국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됐다는 데 있다.
또한 공익근무로 대체 복무를 하던 연예인이 자신의 생활을 공개적으로 알렸다가 논란에 휩싸인 사례도 있다. 가수 이루는 몇 년 전 서울 종로구청에서 공익근무를 하던 중 편안하게 컴퓨터를 하는 모습 등을 담은 사진 여러 장을 ‘구청 라이프’라는 제목으로 공개했다가 팬들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당시 이루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자신의 행동이 경솔했다며 공개 사과를 했었다.
병무청 내에서는 이번 사안을 계기로 공익근무로 복무 중인 연예인들 전반에 대한 현장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감사원으로부터 배우 김무열이 면제 판정을 받는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당한 병무청 입장에서는 연예인 공익근무요원들의 근무 실태에 대한 현장 조사 결과가 호재가 될 수도 있다.
군복무에 있어서 특혜 여부는 대중 감정을 가장 자극하는 문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연예인이 군대와 얽힐 경우 부정적인 감정과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감사원 조사 결과 생계가 어려워 병역을 면제받은 배우 김무열을 바라보는 대중의 감정이 극과 극으로 나뉜 것도 비슷한 사례다.
한편 해당 구청의 한 관계자는 “민원이 제기돼 병무청이 실제 점검을 벌인 건 맞다”며 “특정인을 지목한 민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