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와 사람이 잘 결합될 때 ‘문화력’ 커져…지역의 작은 힘 잇고 엮어 나라 전체 힘으로 형성해야
만일 어느 운동을 하던 사람에게 “힘이 세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면 ‘다른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근육작용(Strength)’의 뜻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힘을 보태줄게”라면 ‘일이나 활동에 도움이나 의지가 되는(Support)’의 의미다. 그런데 만일 사회초년생에게 “늘 상상하면서 힘을 길러야…”라고 한다면 어떤 뜻일까? 바로 능력(Ability)이나 역량(Power)을 뜻한다.
이처럼 ‘힘’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자연의 힘, 권력, 에너지 등을 뜻하기도 한다. 힘은 물리적 정신적 심리적 관계적 등등의 표현에 두루 쓰인다.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힘’이 그토록 중요했기 때문에 상징적 표현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F=ma는 고교과정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공식 중 하나다. 뉴턴의 제2법칙이자 ‘힘’을 설명하는 이 공식은 질량(Mass)과 가속도(Acceleration)로 힘을 설명한다. 야구에서 타자가 볼을 힘있게 치는 방법은 체중을 싣고 배트를 빠르게 휘둘렀을 때다. 그래야 야구볼에 전달되는 힘이 가장 커진다. 이런 힘의 원리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얼마 전 고흥에서 중력을 이기고 우주로 힘차게 뛰어오른 누리호도 기본적으로 같은 원리지 않던가.
물리학의 위대한 발견이 녹아있는 저 공식(F=ma)을 보니 ‘문화의 힘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힘은 능력이나 역량을 뜻하는 힘이겠지만 객관적 자료는 썩 좋지 않다. 최근 발표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에서는 한국인 삶 만족도가 38개국 중 36위였다. 일과 삶의 균형에서는 35위, 공동체를 통한 지원관계망 부분에서는 38위로 나타났다. 유엔 지속가능발전 해법네트워크에서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서도 OECD 38개 정회원 국가 중 35위라고 발표했다.
#메커니즘 ‘m’-제도·정책·인프라
이쯤되니 문화의 힘을 F=ma로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m이 뜻하는 것은 메커니즘(Mechanism)이 적합하다. 체제, 구조, 기구를 의미하는 메커니즘은 문화의 힘을 형성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법제도와 정책, 극장, 전시관, 생활문화센터, 도서관, 축제장과 같은 인프라가 잘 형성돼 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문예진흥법, 지역문화진흥법,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예술인복지법 등이 있고, 정부도 문화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제도를 강화하고 굵직한 정책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국가 문화예술의 중추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냉가슴 앓는 부분은 언론을 통해서도 이미 잘 알려졌다. 바로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에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시관과 공연장은 문화예술 인프라를 설명하는 대표 지표다. 공연장은 공공과 민간운영시설을 포함해서 약 1337개소가 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문체부 2022년 등록공연장 기준). 미술관은 일정기준에 맞는 시설만 집계했을 때 전국 274개소였다. 종합한 수만 보면 인프라 측면에서 제법 갖춰진 것 같다. 그러나 속사정을 보면 사뭇 다르다. 일단 지역쏠림 현상이다. 1000석 이상의 공연장은 총 82개인데 그중 18개가 서울에 있다. 반면에 도나 광역시는 1~3개 정도만 있는 곳도 있다.
두 번째는 장르에 특화된 공연장은 더욱 드물다. 이는 다목적공간으로 설계된 탓이 크다. 여타의 집회나 행사도 공연장을 이용하다보니, 공연장소를 찾기 어렵고, 찾는다 한들 공연장의 시설이 받쳐 주지 않아 만족도가 떨어지는 사례도 많다.
그렇다고 서울의 인프라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민간 소공연장(300석 미만)이 다수 몰린 대학로를 제외하면 지자체별 소공연장은 많지 않다. 공연장을 통한 예술지원도 어렵고, 그나마 중간규모의 공연장도 사실 강당 수준의 시설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곳도 많다. 자칫 숫자로만 보면 괜찮아 보였던 것들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사회의 문화예술 메커니즘은 얼마나 튼튼할까? 양적 성장보다는 속사정을 풀어주는 메커니즘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고 보여진다.
#애니메이트 ‘a’-생기를 불어넣는 사람
F=ma에서 a는 사람에 대한 영역이다.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으로 a(Animate)가 적합하겠다. 멋진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으로 문화의 힘에 생기를 넣는다. 예술가, 기획자, 향유자, 종사자 등이 그 부류다.
예술계열 대졸자는 연간 약 3만 5000명이 배출된다. 예체능학과를 운영하는 대학만도 약 180개에 이르고 있다(대학알리미 인용). 창작예술인의 길로 나서는 사람이 이 정도나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회현실은 달랐다. 이들 졸업생의 첫 직장 평균 임금은 54만 6000원이고 취업률은 61% 수준이다. 취업률은 전공과 무관하게 취업상태 여부만 파악한 내용이다. 상당히 열악한 상황이다. 어느 예술인이 며칠을 굶은 상태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한 사건이 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예술인복지법의 제정을 가져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예술의 장은 부족하고 예술이 인정받는 사회적 분위기는 요원하다.
기획자는 문화예술분야에서 판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축제에 대입하자면 작품의 선정, 조직, 메시지, 홍보, 조율, 예산, 행정 등을 체계적으로 나누고 운영한다. 말 그대로 창작 외의 영역을 맡는다. 허나 기획자가 전문적으로 교육받고 일할 기회는 매우 빈약하다. 몇몇 문화재단에서 기획자 양성과정을 통해 경험을 전수하는 방식의 과정이 있을 뿐이다. 기획에 필요한 여러 능력은 오히려 업무를 하면서 스스로 배워나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기획력 빈약으로 예술의 장이 축소되는 결과가 우려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만큼, 활동력을 기르고 가르치고 독려하면서 사회구성원으로 활약할 수 있어야하겠지만 이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작은 힘을 모아 도시의 힘으로
지난 6월 4일 춘천마임축제는 8일간의 축제를 성황리에 종료했다. 춘천시 전역에서 펼쳐진 축제는 다양한 장르와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축제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한다. 물과 불이 가진 힘을 예술축제로 만들었고, 지역 대학생 100여 명이 봉사자로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극장과 거리에서 예술작품이 도시를 포위했다. 세계3대 마임축제이자 문체부 우수축제인 춘천마임축제는 30여 년의 열띤 노력이 집약된 결과다. 약 10만 명의 관객이 축제장을 찾았고 국내외 65개 공연팀이 출연했다.
이러한 멋진 성과 속에서도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산적해있다. 우선 축제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매번 겪고 있다. 축제 현장의 조건에 따라 인력과 예산의 차이가 크고, 매번 유목민처럼 전전하는 과정은 늘 어렵다. 해가 갈수록 예산과 안목을 갖춘 축제 기획자는 점점 줄고 있으니 어려움은 점점 늘어간다. 축제가 지닌 위상에 걸맞지 않은 매우 아픈 현실이다.
이에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강영규는 작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침 춘천시는 문화도시로 선정됐다. 또한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과정도 큰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지역에 내재된 가능성을 문화의 힘으로 모으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그는 힘주어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서 공간 문제와 사람 문제도 해결해보겠다는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우리 삶에서 문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우리 삶에 문화점유율이 얼마나 될지 묻는다면 쉽게 답하기 어렵다. 삶의 질에 관한 각종 지표나 글에서는 문화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지만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지를 넘어 지역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도시의 문화를 만드는 힘은 제도와 사람이 잘 결합될 때 커질 수 있다. F=ma라는 물리학 공식은 문화예술의 관점에서는 제도와 사람, 즉 메커니즘과 애니메이트일 것이다. 어느 하나만 강조될 수 없고 역행해도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의 작은 힘(m, a)을 잇고 엮어서 도시로, 나라 전체의 힘으로 형성되도록 하는 짜임새 있는 전략이 절실하다.
진형우. 문화예술 기획자. 예술단체 및 세종문화회관 등을 거쳐 현재 영등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으로 활동 중이다. 사람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모습으로 정의돼야 한다고 믿으며 하루를 가치 있게 사는 문화적 방법에 골몰하고 있다.
진형우 영등포문화재단 문화도시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