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울 등 아트페어 개최지 ‘우열 가리기’ 무의미…저마다의 다양성·성장성 주목해야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향유하는 층이 확장되었다는 점은 프리즈가 서울에서 처음 개최되면서 남긴 성과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 미술계의 관심은 한국 미술계보다 프리즈의 퍼포먼스에 집중되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국제 아트페어신에서 아트바젤(바젤, 마이애미, 홍콩, 파리 개최)의 뒤를 잇는 프리즈(런던, 뉴욕, LA, 서울 개최)가 첫 아시아 개최지로 서울을 선택했을 때 국내 미술시장은 대부분 기대감을 비쳤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외국 아트페어 참여도, 외국 컬렉터의 방한도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활로를 모색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프리즈 서울 참여 갤러리 119곳 중 한국 갤러리는 12곳에 불과했으나 1층에서 개최된 키아프나 아트페어 바깥에서 일어나는 행사와 전시를 통해 교류할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필자는 미팅룸에 기고한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리뷰, 한계와 전략’에서 프리즈가 서울을 택한 목적은 한국 미술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홍콩에 버금가는 인프라와 가능성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홍콩과 서울 중 어디가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인지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프리즈와 키아프의 출발점과 위상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미술은 득점과 기록을 측정하고 순위를 결정하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와 미술시장
미술시장은 세계 경제의 상승과 하락세에 시차를 두고 반응하기도, 별개로 움직이기도 한다. 미술시장을 이끄는 ‘큰손’인 고액(High Net Worth : 부동산과 사업자금을 제외한 개인 자산을 100만 달러 이상 보유) 자산가 컬렉터들은 작품을 구매하는 데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침체의 영향으로 비교적 낮은 금액에 출품된 작품을 적극 구매하기도 한다.
아트시(Artsy)의 보고서 ‘Art Collector Insights’(2022년 9월 발표)는 인플레이션으로 작품 구매에 영향을 받았는지 조사했다. 설문에 응한 컬렉터 전체의 51%, 연 수입이 25만~50만 달러(약 3억 3000만~6억 5000만 원)인 컬렉터의 경우 60%, 50만 달러 이상인 컬렉터인 경우 74%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물론 온라인 아트마켓 플랫폼인 아트시의 컬렉터는 비교적 젊고 외국 컬렉터가 많은 만큼 저변이 넓지 않은 국내 컬렉터와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올해 첫 주요 경매까지 국내 경매 총액과 낙찰률이 떨어지면서 국내 미술시장이 조정기를 지나 침체기에 들어섰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서울옥션에 투자하고 인수를 타진하던 신세계는 결국 인수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3월 뉴욕 경매 역시 조정에 들어갔음을 보여줬다.
3월 초 개최된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를 시작으로 3월 말, 4월, 5월에 개최되는 아트바젤 홍콩, 화랑미술제, 아트부산 이후 저마다 국내 및 아시아 미술시장의 미래를 예측하려 할 것이다.
#아트페어 각각의 특색 살려야
세계 3대 아트페어로 꼽혔던 피악(FIAC)은 2021년 개최를 마지막으로 일단 막을 내렸다. 2022년 10월부터 파리 플러스 파 아트바젤(Paris+ par Art Basel, 이하 파리 플러스)이 피악을 대체하면서 브렉시트로 주춤한 런던 미술시장보다 파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일주일 간격으로 개최된 프리즈보다 파리 플러스의 출품작 수준이 더 높았고 분위기 역시 활발했다는 평이다. 그럼에도 바젤, 런던, 파리 그리고 쾰른과 베를린, 마스트리트, 마드리드, 밀라노 등 유럽 아트페어 개최 지역은 각자의 특색을 유지할 것이며 난관을 극복할 것이다.
올해 1월 처음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아트 SG에 대한 기대와 평가는 엇갈렸다. 아트 SG에는 세계 유수의 갤러리가 대거 참여하며 큰 관심을 받았지만 실적은 부진했다. 싱가포르의 작가군과 컬렉터 베이스가 약하고, 물가는 지나치게 높아 주변국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오히려 관심이 높아졌다는 평이다.
올해 7월 개최되는 도쿄 겐다이의 흥행 여부도 관심이 쏠린다. 일본에는 홍콩이나 서울처럼 지점을 연 국제적인 갤러리가 극소수인 데다 일본 컬렉터는 동시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구매력이 떨어지고 저성장 기조 탓에 분위기가 뜨겁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에도 새로운 컬렉터가 증가하고 있으며, 아트바젤과 협업해 지역 아트페어를 개최하는 등 저마다 특색을 달리하며 크고 작은 변화가 일고 있다.
2013년 아트바젤 홍콩이 출범하고 지난해 프리즈 서울, 올해 아트 SG와 도쿄 겐다이가 개최되며 아시아 미술시장의 순위 매기기가 시작됐다. 매출이라는 정량 평가로 순위를 정할 수 있겠지만, 내적·외적 정성적 요소는 주관적 영역이다. 물론 참여하는 갤러리가 같더라도 아트페어의 규모나 수준, 지역 특성 등을 고려해 출품하는 작가와 작품은 달라진다.
이 같은 요소가 모여 그 아트페어의 수준과 성과, 나아가 성패가 좌우된다. 미술시장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단기간 행보와 실적에 일희일비하고 그 우열을 가리는 것, 그리고 시장을 예측한다는 것 모두 짧게 보면 무의미하다. 미술시장 역시 오르내리며 돌고 돈다. 모든 아트페어가 국제적이고 성공적일 수는 없으며, 지역 소규모 아트페어를 선호하는 컬렉터도 많듯이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 각 아트페어와 지역이 다양한 특성을 띠고 각자의 강점과 프로그램을 내세우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경민은 미팅룸 미술시장 연구팀 디렉터로, 국내외 미술시장 주체의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다양한 매체와 기관을 통해 글을 기고하고 강의한다. 갤러리현대 전시기획팀에 근무했고 ‘월간미술’의 기자로 활동했다. 공저로 ‘셰어 미: 공유하는 미술, 반응하는 플랫폼’(스위밍꿀, 2019)과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선드리프레스, 2021), ‘크래시-기술·속도·미술시장을 읽는 열 시간’(미디어버스, 일민미술관, 2023.3. 출간 예정)이 있다.
이경민 미팅룸 미술시장 연구팀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