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직무감찰 가능한지 놓고 또 다른 공방 벌어져…정치권에선 ‘유권해석’ 손에 쥔 선관위 눈치 보기 급급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 자녀가 특혜채용됐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선관위는 자체감사를 진행했다. 5급 이상 고위 간부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였다. 5월 31일 선관위 자체감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특혜채용이 의심되는 사례 10건이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선관위는 ‘아빠 찬스’ 정황을 발견했으며 간부 4명을 수사의뢰했다.
‘아빠 찬스’ 의혹의 불을 댕긴 장본인은 박찬진 선관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 등 고위간부였다. 박 총장 자녀는 전남 강진 선관위, 송 차장 자녀는 충북 선관위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방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경력채용 절차를 통해 2022년과 2018년에 각각 선관위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세종 선관위 위원 자녀 윤 아무개 씨, 경남 선관위 총무과장 자녀 김 아무개 씨도 아빠 찬스 의혹에 휩싸였다. 윤 씨는 경북 소재 시청 근무 중 부친이 근무했던 대구 선관위에 채용됐고, 김 씨는 경남 소재 군청 근무하다 부친이 일하던 경남 선관위에 입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 선관위 상임위원(1급 간부) 자녀 신 아무개 씨는 경기도 안성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21년 서울 선관위 경력채용을 통해 입사했다. 인천 선관위, 충북 선관위, 충남 선관위 등에서도 4급 간부 자녀 4명이 2016년과 2021년 사이에 경력 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선관위 사무총장 자녀를 둘러싼 아빠 찬스 의혹도 재조명되고 있다.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의 자녀는 2020년 1월 강화군청에서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인천 선관위에 경력 채용됐다. 2022년 3월 불거진 논란이었다. 자녀 경력채용 당시 김 총장은 선관위 사무차장으로 근무 중이었다.
아빠 찬스뿐 아니라 ‘형아 찬스’ 의혹도 불거졌다. 6월 1일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강원 선관위 사무처장(2급 간부) 동생 박 아무개 씨는 2014년 2월 경기도 고양시청에서 8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경기도 고양 선관위로 경력채용됐다. 박 씨가 채용 11개월 만인 2015년 1월 7급으로 승진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비판이 거세지자 선관위는 모든 직원들의 배우자 및 사촌 이내 친족까지 범위를 넓혀 자체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감사원이 선관위 직무감찰에 나서기로 했다. 이에 6월 2일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선관위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감사원 감사 거부는 이날 선관위원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감사원은 선관위가 감사 거부 의사를 밝힌 지 약 10분 만에 선관위 결정을 반박했다. 감사원 측은 “선거관리 독립성 존중 차원에서 감사를 자제한 것뿐”이라면서 “(선관위는) 감사원법에 따른 직무감찰 대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공공기관 심판’ 역할을 하는 감사원과 ‘선거 심판’ 역할을 하는 선관위의 ‘심판 대전’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선관위는 가족 특혜채용 의혹과 관련해 외부 감사를 놓고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선관위는 국민권익위 조사와 국회 국정조사는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전한 바 있다. 그러나 선관위의 권익위 조사·국정조사 수용 방침엔 ‘선관위 제공 자료’, ‘선관위 허용 범위 안’이라는 전제조건이 달려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바 있다.
국민의힘은 선관위를 고강도로 압박하고 있다. 6월 5일 국민의힘은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비롯해 선관위원 9명 전원 사퇴 결의문을 채택했다. 6월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선관위를 항의 방문했다.
선관위 내부 기류엔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감사원 감사를 부분 수용하는 것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선관위 고위층 내부에선 여당과 감사원의 ‘합동 공격’에 여론까지 악화하자 감사원의 감사를 더 이상 피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기류가 고개를 들었다고 한다. 다만 여권에서 언급되고 있는 ‘선관위원 전원 사퇴’엔 부정적인 분위기가 우세한 것으로 파악된다.
선관위를 향한 여권과 감사원의 고강도 압박이 이어지자 더불어민주당은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6월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은 “채용비리를 감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면서도 “채용비리가 있다면 수사를 하라”고 강조했다. 정 최고위원은 “수사와 법을 위반한 감사는 전혀 다른 문제”라면서 “선관위는 행정기관이 아니기에 감사원 감사 대상이 아니다. 감사원이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를 감사할 권한이 없듯이 독립기관인 선관위도 감사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선관위 흔들기가 도를 넘고 있다”면서 “채용관련 문제가 있다면서 선관위원장을 흔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서 최고위원은 “여야 국정조사에 선관위가 응하기로 했는데 그럼에도 대법관인 선관위원장을 흔들어대는 것 자체가 부정선거를 획책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무엇이냐”면서 “이승만 정권이 3·15 부정선거를 획책하다 어떻게 됐는지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채용비리는 채용비리대로 수사하되 감사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으로 불똥이 튄 선관위 특혜채용 관통 키워드는 세 가지다. 가족관계, 경력채용, 1년 이내 승진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혈연을 기반으로 경력채용 루트를 통해 입사, 1년 이내 승진을 하는 것이 이번에 불거진 여러 의혹에서 공식처럼 작용했다”면서 “그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기관이 내부적으로 이런 복마전에 휩싸였다는 것 자체가 선관위 신뢰도를 심각하게 뒤흔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여러 사례에 걸쳐 비슷한 행태가 자행됐다는 것은 선관위 내부에서 혈연관계 공무원을 경력채용으로 입사시키는 ‘꿀팁’이 전방위적으로 퍼져 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선관위가 시간을 거듭하며 무소불위 권력기관으로 진화했고, 상당히 폐쇄적인 기관이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공정성을 내건 ‘유권해석’이 오히려 정치적 중립성을 저해한다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2016년 40석 이상을 보유한 국민의당이 선관위가 고발한 ‘리베이트 의혹’을 계기로 공중 분해된 사건이 있었다”면서 “선관위에 고발당한 7명 전원이 무죄가 나왔지만, 이미 국민의당은 와해된 뒤였다”고 했다.
그는 “소쿠리 투표 논란, 북한 선관위 해킹시도 은폐 의혹 등이 불거졌음에도 선관위 책임론은 금방 사그라졌다”면서 “정치권의 '선수'들이 '심판'을 건드리기 어렵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치권이 선관위 눈치를 보고 있다는 취지였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의 말이다.
“정치권력 구도를 재편하는 행사가 선거이고, 그 과정에서 선관위는 심판 역할을 하는 것인데 ‘오심’을 했을 때 선관위가 책임지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야구, 축구에도 비디오 판독이 도입됐고 오심 비율이 높아진 심판은 징계를 받는데, 국민의 공정한 참정권을 주관하는 ‘선거 심판’ 선관위는 내부적으로 자리나 나눠먹는 행태를 보이니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야권 관계자는 “선관위 내부적으로 불거진 채용 비리에 대해선 엄단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감사원이 개입해야 할 문제인지에 대해선 반드시 엄중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헌법적 독립기관인 감사원과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그리고 윤석열 정부가 합심해 선관위에 대한 대규모 감사를 진행한다면 내년 있을 총선을 주관할 때에 선관위가 공정한 심판을 보기 힘들 정도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선관위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는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선관위는 독립적 기관임과 동시에 행정기관인 까닭”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사법부 대법관이 행정기관 수장(선관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논란이 벌어지는 것”이라면서 “사실 선관위원장을 대법관이 맡는 것에도 권력분립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