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은 왜 ‘완전 범죄’를 노리지 않았나
▲ 김현희(오른쪽)와 최창아 씨. 사진제공=최창아 씨 |
“베오그라드의 메트로폴리탄 호텔에서 함께 간 최 과장으로부터 폭탄이 든 라디오와 양주병을 들고 호텔에서 구입한 비닐 백에 넣고 바그다드로 왔습니다. 바그다드 공항에서 1차 검색 때 내가 가지고 있던 폭파용 배터리가 직원에게 체크됐는데 옆에 있던 김 선생이 항의해 무사히 가지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2차 검색 때는 이 배터리를 김 선생에게 건네주어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검색 통과 후에는 홀에 들어가 김 선생이 폭파용 라디오에 배터리를 넣고 9시간 후에 폭발하게 스위치를 조작했습니다. 탑승 후에는 라디오와 양주병을 비닐주머니에 넣은 채 선반위에 올려두고 아부다비에서 내릴 때 가지고 내리지 않았습니다.”
김현희가 북한 특유의 악센트가 섞인 목소리로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동안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인해 오다가 심경 변화를 일으키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저쪽(북한)을 떠날 때 비밀을 보장하고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권위와 위신을 보장하기 위해 끝까지 부인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있는 동안 차를 타고 시내를 다니면서… 시내 전경과 남한 인민들의 잘 사는 모습을 보고… 또 TV에 나타난 여기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저쪽에서 받은 교육과 내가 생각한 것이 상반된 현실을 보면서 점차 무엇이 진실인지 알게 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만당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에 배신감을 더 느끼게 되었고 통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이 사건으로 희생당한 유족들에게 속죄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현희는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현재의 심정과 앞으로의 각오, 그리고 남한에 와서 보고 느낀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다른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는 죄를 지은 몸으로서 이번 사건으로 돌아가신 분들과 가족들, 충격을 받았을 이곳 인민들 앞에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자회견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했고 그저 제 한 몸 죽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김현희는 다시 말을 멈추고 흐느꼈다. 여기저기서 계속 플래시가 터지며 회견장이 어수선했다. 김현희는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본 발전된 모습과 인민들의 자유로운 생활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에서 자기의 의사에 따라 각기 대통령을 투표하는 것을 TV를 통해 보고, 남한이 미제 식민지이고 민족성이 말살된 외세가 판치는 세상이라는 저쪽 말이 전적으로 사실과 상반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죄를 지어 백번 죽어 마땅하나 이런 진실을 알게 된 이상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돌아가신 분들과 가족들, 이곳 인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앞으로 이번 사건과 같은 무의미하고 헛된 일로 죄 없는 많은 인민들이 희생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기자회견이 거의 끝날 무렵에 그녀는 만인 앞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정신적인 긴장과 계속 터져 나오는 울음으로 거의 탈진한 것 같았다.
기자회견장 옆 건물에서는 김현희와 김승일의 소지품을 비롯하여 KAL기 잔해 등 증거품을 공개하였는데 기자들은 소지품의 대부분이 외제 화장품이어서 김현희가 미용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현희는 일본인으로 행세하기 위해 외제 화장품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물자가 워낙 부족한 북한에서 제대로 된 화장품 구입이 어려워 공작원 신분을 이용하여 필요한 화장품을 구입한 것이다.
“이 소지품들이 김현희 씨 것이 맞아요?”
바레인 경찰에서 넘겨받은 소지품을 확인할 때였다. 나는 김현희에게 일일이 확인하게 했다.
“네. 내 것이 맞으니 돌려주세요.”
“이것은 증거품이니 국가에서 압수할 수밖에 없어요.”
김현희는 소지품을 돌려받지 못한다고 하자 무척 아까워했다. 한편 수사의 보충설명을 위해 이례적으로 3명의 수사관들이 직접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했는데 신분노출을 피하기 위해 질문에 앞서 내외신 기자의 TV카메라도 끄게 하고 녹음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대공 수사관들의 얼굴이나 음성이 노출될 경우 북한 테러의 직접적인 대상이 될 수 있고 대공 수사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김현희와 함께 얼굴이 공개될 수밖에 없었다.
“김이 결정적으로 북괴 공작원이란 심증을 굳힌 근거는 무엇인가?”
기자들이 수사관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 김현희는 72년 남북조절위 2차 회담 당시 남측 장기영 대표에게 꽃다발을 건네준 화동(1988. 1. 15일자 매일신문)이 자신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
“처음에 완강하게 진술을 거부하다가 자백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바레인에서 서울로 호송되어 온 직후 상당히 탈진상태였던 김은 음식도 먹지 않고 완강하게 저항한 것이 사실이다. 중국어와 일어로만 자신의 의사표시를 하던 김은 자신의 진술에서 허점이 드러나면서 서서히 자백하기 시작했다. 김은 중국에서 살 때 주로 무엇을 먹었느냐는 질문에 호떡이라고 대답했으나 호떡은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부자가 먹는 것이며 김이 자신의 말대로 가난하게 살았다면 먹어 보지 못했을 음식이다.”
“수사관들은 어떤 방법으로 수사했나?”
“김은 처음에 불안해했다. 여자 수사관들이 24시간 함께 지내면서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바레인에서 음독을 기도한 후 넘어져 생긴 다리 상처를 마사지해주고 함께 목욕도 하고 머리에 빗질을 해주는 한편 음식도 입에 맞는 것을 권하는 등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했다. 그러자 8일째 되던 날 ‘언니 미안해’라며 처음 한국말을 사용하고 이어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뒤에 ‘마음이 가볍다’고 했다.”
“앞으로 김에 대한 법적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적법한 절차를 따를 것이다.”
“북괴공작지휘부가 왜 이들을 사건 뒤 살리려고 했는지 아는 대로 말해 달라.”
외신기자의 질문이었다. 북한에서 KAL기를 폭파시키면서 공작원들인 김승일과 김현희를 무엇 때문에 비행기에서 함께 죽게 하지 않고 북한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했는지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김과 죽은 김승일을 비행기에 탄 채 죽게 했다면 완전 범죄가 됐을 것이다. 북괴에서 완전범죄를 노려 그런 방법이 검토되기는 했겠지만 왜 이들을 살리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김의 말로는 자신이 일본어를 잘하기 때문에 살아 돌아간다면 아마 일본에서 활동했을 것이라고 했다.”
“바그다드 공항 당국이 폭발물 반입을 막았다면 이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런 것 같다. 이들도 바그다드 공항에서 폭발물 반입이 막혔을 경우를 대비해 제2의 테러를 준비하고 있지는 않았다.”
기자회견은 긴장된 가운데 계속되었다.
“김이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됐을 때 독극물을 먹었는데 죽지 않은 이유는 진실로 죽으려고 했다기보다 죽는 흉내만 낸 것이 아닌가?”
“아니다. 김은 당시 실제로 죽으려고 했다. 그러나 김이 독극물 앰플이 든 담배를 입에 무는 순간 공항여자경찰관이 빼앗는 바람에 앰플이 끝 부분만 터져 치사량에 못 미친 탓이었다.”
“김이 북한에서 출발할 때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았다는데 확인되었는가?”
“김정일의 친필 지령이 내려진 것은 이번 공작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상부기관에 의해 친필지령 사실이 구두로만 전해졌을 뿐 본인에게 직접 전달된 것은 아니다.”
수사관들의 기자회견도 끝났다. 기자회견을 마치자 우리는 잘했다고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다시 차에 태워 안기부 조사실로 돌아왔다. 수사관들은 김현희를 쉬게 해 주었다. 우리도 한동안 의자에 앉아서 쉬었다. 김현희 못지않게 피로한 것이 우리 수사관들이었다. 저녁이 되어 뉴스시간이 되자 수사관들이나 김현희나 기자회견이 어떻게 보도되었을까 궁금하여 TV를 틀었다. TV에서는 아나운서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기자회견 모습을 보도하고 있었다.
“어유, 참.”
김현희는 자신의 모습이 TV 화면에 비치자 제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김현희는 바레인에서 서울에 올 때와 기자 회견 때 입었던 하늘색 트레이닝복은 그 후 절대 입지 않았다. 자신의 가장 초라한 모습이 만인에게 공개될 때 입었기에 그 옷만 보면 그때가 생각나 기분이 안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김현희는 일본어, 영어 등 어학공부를 하라며 소형 카세트플레이어를 선물로 받았는데 어느 날 보니 직접 손바느질로 그 트레이닝복을 잘라 끈이 긴 카세트플레이어 주머니를 만들어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웬 지뢰탐지기를 차고 다니는 거야?”
나는 그녀의 바느질 솜씨에 감탄하면서 놀렸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시라요.”
김현희가 톡 쏘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녀가 처음 서울에 도착하여 남산 조사실에 생활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조사실에 들어갈 때면 활동하기 편하도록 갈색 점퍼를 입었었다. 1년 쯤 지난 뒤 내가 다시 그 옷을 입고 나타나니까 김현희가 얼굴을 찡그렸다.
“어휴! 언니 그 옷 입지 말라요. 처음 서울 왔을 때가 생각나서 싫어요.”
김현희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기자회견 때 발표한 내용 중에는 오류도 있었다. 그녀에 대한 수사를 자백이나 진술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확인하지 못한 일이 문제가 되는 일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화동이 장기영 대표에게 꽃다발을 건네주는 장면을 김현희가 자신이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김현희가 아니었다. 그 바람에 조작설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모든 사건을 완벽하게 수사할 수는 없으나 김현희 진술을 중심으로 시간에 쫓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이후 재조사에서 김현희는 당시 꽃을 건넨 화동이 아닌 3번째 줄에 있던 소녀였던 것으로 정정됨-편집자 주)
정리=이수광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