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의 ‘범죄도시3’ 신카이의 ‘스즈메’ 등 검증된 브랜드 Z세대 어필…마블은 ‘어벤져스’ 이후 시들시들
‘똘똘한 한 편’의 영화라는 개념은 과거에도 있었다. 이런 영화라면 분명 극장에서 관객을 대거 불러 모을 수 있다는 일종의 계산인데, 기본적으로 한국 관객은 외화보다 한국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만큼 한국 영화가 경쟁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으로 이제는 국내 관객들은 물론이고 글로벌 무대에서도 통할 정도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은 크게 약화됐다. 한국 영화라 믿고 극장을 찾았는데 실망하는 일이 최근 반복됐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 등 한국 영화 보호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이던 시절을 거친 세대에서는 한국 영화에 대한 비교적 관대한 시선이 존재했지만 요즘 MZ세대는 다르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한국 영화를 보며 자란 만큼 이제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한국 영화에는 가볍게 등을 돌린다.
2023년 6월 13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상반기 흥행 순위를 보면 10위안에 든 한국 영화는 1위 자리에 오른 ‘범죄도시3’와 8위 ‘영웅’, 10위 ‘교섭’ 등 3편뿐이다. ‘영웅’과 ‘교섭’이 2023년 동원한 관객수는 178만여 명과 172만여 명으로 둘 다 200만 명이 안 된다.
마블 영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도 한동안 검증된 ‘똘똘한 한 편’의 영화였지만 이제는 이 공식도 통하지 않는다. 엄청난 기대작이었던 디즈니 ‘인어공주’는 63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을 뿐이다. 흑인 배우인 할리 베일리를 인어공주 역할로 캐스팅하는 파격적인 선택으로 화제가 되며 ‘알라딘’의 역주행 1000만 관객 신화를 넘어서는 흥행 기록이 기대되기도 했지만 현재로선 100만 관객도 쉽지 않아 보인다.
마블도 예전만 못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5의 문을 화려하게 열 것으로 기대됐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15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페이즈 5의 두 번째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가 416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나마 체면치레는 했지만 개봉만 하면 1000만 관객을 돌파하곤 했던 과거 전성기 시절 마블 영화의 흥행력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마블 영화가 어느 정도의 흥행력은 유지하는 비결은 여전히 마블 영화의 마니아층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렇지만 극장 입장에서 최대 타깃인 10대와 20대 초반 층에선 마블이 잘 통하지 않는 분위기다. 마블 영화는 2019년 4월에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국내 극장가에서 다소 시들해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팬데믹까지 왔다. 이처럼 마블이 시들해진 사이 극장 주요 관객층이 된 10대와 20대 초중반 연령층에선 마블의 브랜드 네임이 많이 약화됐다.
2023년 상반기 흥행 성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553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467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범죄도시3’가 혜성처럼 등장해 1위 자리에 오르기 전까진 이 두 일본 애니메이션이 1·2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도 6위 자리에 올라 상반기 흥행 TOP10 가운데 3편이 애니메이션이다.
극장가 관계자들 사이에선 Z세대가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애니메이션 영화의 흥행세가 두드러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저력이 다시 한 번 입증됐는데 Z세대의 경우 마블이나 디즈니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현 시점 한국 극장가에서 가장 확실한 흥행력이 보장된 작품 역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심심한데 영화 한 편 보자”가 아닌 “꼭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만 극장에서 본다”는 심리가 굳어지면서 검증된 브랜드 네임의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경향도 짙다. ‘범죄도시3’의 엄청난 흥행력이 보여주듯 검증된 시리즈물이 흥행력에서 분명 앞서가는 분위기다. 5월 31일 개봉한 ‘범죄도시3’는 개봉 11일 만에 700만 명 고지를 밟으며 1000만 고지를 눈앞에 누고 있다.
역시 시리즈물인 ‘존 윅 4’도 192만여 명이 관객을 모으며 7위에 이름을 올렸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역시 176만여 명의 관객으로 9위에 랭크됐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시리즈물은 아니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 갖는 브랜드 네임이 확실했다.
이런 분위기가 위기의 한국 영화계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독 올해 극장가에 인기 시리즈의 속편인 외화가 대거 개봉되기 때문이다. 6월과 7월에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과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파트1’이 개봉해 여름 성수기에 맞춰 개봉하는 대작 한국 영화들과 흥행 대결을 벌인다.
‘인디아나 존스’와 ‘미션 임파서블’는 사실 40대 이상 관객층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영화들이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도 통할 만한 브랜드 네임의 시리즈 영화인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그렇지만 역시 오래된 시리즈인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는 관객 176만여 명의 선택을 받으며 여전히 통하는 브랜드라는 사실을 입증해 냈다. 게다가 할리우드 시리즈 영화는 대부분 블록버스터로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봐야 더 큰 재미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까지 갖춰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고 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