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공개 범위 및 만난 장소 등 놓고 저자세 논란…싱하이밍이 띄운 ‘미국 베팅론’에 정치권 요동
문제의 회동은 6월 8일 서울시 성북구 소재 주한 중국대사관저에서 열렸다. 이재명 대표는 주한 중국대사 홈그라운드를 전격 방문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싱 대사는 자신이 준비한 원고를 꺼냈다. 싱 대사는 약 15분에 걸쳐 한국어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싱 대사는 “중국 정부는 한중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있지만, 한중관계는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다”면서 “솔직히 그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고 포문을 열었다. 싱 대사는 “우리는 한국이 대중국 협력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고 중국 시장과 산업 구조 변화에 순응하며 대중 투자전략을 시기적절하게 조정하기만 한다면, 분명히 중국 경제성장 보너스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이어서 싱 대사는 ‘한국 정부 미국 베팅론’을 본격 언급했다.
“국제정세가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고, 한중관계는 외부 요소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이 중국과 관계를 처리할 때 외부 요소 방해에서 벗어나면 굉장히 고맙겠다.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 (한국)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다. 역사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싱 대사는 “이분들은 중국 역사와 사회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중국 인민들이 시진핑 주석 지도 아래 중국몽이란 위대한 꿈을 한결같이 이루려는 의지도 모르며 그저 탁상공론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싱 대사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서 한중 공동대응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는 모두발언을 통해 “한중 양국 국민 사이 신뢰와 존중이 매우 높게 형성돼 있다가 많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서 “정부의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 입장에서 중국이 최대 흑자국에서 적자국으로 전환되면서 경제가 매우 곤란(한 상황)에 봉착했다”면서 “국내 중국수출기업, 중국진출기업, 현지 교민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와 싱 대사는 한반도 평화에 중국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슈 관련 한중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싱 대사 발언 전반에 걸쳐 ‘무례하다’는 비판이 정치권 곳곳에서 불거졌다.
6월 13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6월 12일 정부와 여당은 싱 대사 부적절 발언 관련 다양한 채널을 통해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다”면서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을 통해 싱 대사 발언을 정당화했다”고 했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6월 8일은 조선 말기 청나라 위안스카이가 조선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 버금가는 치욕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라면서 “이재명 대표는 대한민국 5000만 국민 자존심을 자장면 한 그릇과 바꿨다”고 날을 세웠다.
대통령실은 싱 대사 발언과 관련해 중국의 적절한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싱 대사 교체를 요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13일 비공개 국무회의를 통해 싱 대사 발언 및 이 대표 면담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자성과 옹호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다. 친명계 핵심으로 꼽히는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6월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거기(싱 대사 발언)에 대해 좀 더 그 자리에서 문제점을 지적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 “싱 대사 국가 간에 더구나 대사로서 해선 안 되는 부적절한 발언 아니었느냐”고 했다. 정 의원은 한중관계가 악화된 상황과 관련해선 “중국 문제, 특히 대만 문제와 관련해 윤 대통령 발언이 과하게 나가지 않았느냐”고도 했다.
장경태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윤 대통령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하며 ‘이재명 옹호론’을 피력했다. 6월 14일 장 최고위원은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 외교를 잘하고 싶을 텐데, 지금 오히려 이재명 대표가 더 외교를 잘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싱 대사 발언을 윤 대통령이 부적절하다고 한 것에 대해) 이재명 대표에 대한 열등감이 표출된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이 대표는 6월 10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싸우러 간 것도 아니고, 관계를 개선하고 대한민국 국익을 좀 더 지켜내기 위해 협조할 방향들을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한 일 아니겠느냐”면서 “중국 정부의 그런 태도가 마땅치는 않다”고 했다.
대중 외교 일선에서 활동했던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표와 싱 대사 만찬 회동과 관련, 공개 범위와 만난 장소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이 대표와 싱 대사의 만찬 회동에는 몇 가지 실책이 있다”면서 “한국 제1야당 대표와 주한 중국대사는 사실 격이 맞지 않는 관계인데, 둘이 만찬 회동을 하면서 발언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마치 중국 대사가 한국 제1야당 대표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야당 대표가 중국 대사를 만난다 하더라도 비공개 만찬 정도로 매조지었으면 어땠는지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이다.
“또 이 대표가 주한 중국대사관저를 직접 방문한 것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외교관계에서 찾아가는 주체와 맞이하는 주체의 의미는 상당히 중요하다. 외교적으로 봤을 때 격이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이재명 대표가 싱 대사를 방문한 것은 그만큼 국가의 격을 낮출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조금 더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싱 대사가 민주당사를 방문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회동을 가지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았나 하는 포인트가 존재한다.”
중국에서 활동했던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 당국은 지그시 누르는 듯한 미묘한 압박을 통해 한국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실상 이번에 싱 대사가 준비한 원고를 한국어로 읽은 것도 중국 당국의 입장이자 지령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 당국이 주한 중국대사와 주조선(북한) 중국대사를 임명하는 과정만 봐도 한반도 외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면서 “중국은 통상적으로 북한엔 ‘차관급 대사’를 한국엔 ‘국장급 대사’를 파견한다”고 했다. 관계자는 “한국과 북한으로 파견되는 외교관들은 보통 정부차원에서 육성된 자원으로 북한으로 유학을 다녀온 경우가 많다. 싱 대사도 북한 사리원농업대학을 나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1야당 대표는 국가의전서열 8위다. 중국 당국에서 부처 국장급 정도로 평가받는 공무원과 국가의전서열 8위가 회담하는 내용이 공개되고, 심지어 중국 대사가 제1야당 대표에게 훈수나 협박처럼 들리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 정부 입장에선 여야를 떠나 외교적 결례로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월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의 ‘싱하이밍 대사에 대한 적절한 조치 요구’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왕 대변인은 “싱 대사가 한국 각계각층 인사들과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그의 직무이며, 이는 한중관계 발전을 유지하고 추진하려는 목적으로 대대적으로 부각할 화제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 사실상 싱 대사에 대한 별도 조치 의사가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왕 대변인은 “한국 측이 (싱 대사) 관련 입장 표명과 함께 일부 매체가 싱 대사 개인을 겨냥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인신공격성 보도를 한 점을 주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다”고도 밝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