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자 “잘못 있으면 징계 받으면 될 것”
- 특정 제품 반영…과업 지시 내려
- 계약은 문경 업체…설계는 대구서
- 예산없는 시민운동장 전광판 설계
[일요신문] 올해 1월 국민권익위원회 종합청렴도 평가 발표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경북 문경시의 사업부서 공무원 일탈 행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어 시 전반에 대한 강도 높은 부패청산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신현국 문경시장이 취임한 지 1주년이다. 신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청렴하고 깨끗한 공직사회 정립을 주창하며 노력하고 있지만, 직원들의 동참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시민들의 지적이다.
문제의 문경시 새마을체육과 6급 직원 A씨는 오랜 기간 전기·통신장비 시설공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맡아왔다. 그는 과감한 방식으로 특정업체에 수의계약으로 설계용역을 주고, 그 설계사에 특정 회사의 제품을 반영토록 과업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문경실내체육관 LED전광판 제작설치는 조달청에 계약을 의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수의계약이다. 설계에 반영된 제품의 업체가 당연히 낙찰된다. 전광판 관련 국내 조달우수제품으로 등록된 업체는 10개미만으로 이 중에서 A씨가 제품을 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예산을 집행한 금액은 수십억 원이 넘는다.
제보자 B씨는 "이러한 불법행위를 수년간 행하고 있는데 하위직원 혼자서 결정하고 집행했는지 의문이다. 팀장, 과장, 국장, 심지어는 시장까지 관련됐을 수도 있다"면서 "A씨가 이 사업은 시장 아들 몫이다. 다른 업체는 참여할 생각을 말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사정당국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신 시장의 아들은 현재 문경의료원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경시는 A씨만 이러한 불법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팀 C씨는 이보다 더한 불법을 자행하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며 "문경시가 썩었다. 이들은 업자와 어울려 고급 술집 등을 다니며 향응도 받았다. 하위직원이 이렇다면 간부들은 어느 정도일까요"라고 반문했다.
더 큰 문제는 A씨의 대응이다. "미르이에프시가 설계를 잘하기 때문에 내가 판단해서 계속 수의계약을 했다. 그리고 특정 제품은 시장 조사를 해보니 우수한 제품이어서 설계에 반영했다. 무엇이 문제냐, 잘못이 있으면 감사를 받고 징계를 받으면 된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향응을 받은 적이 없다"고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말했다.
전기직 공무원이 어떻게 전광판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우수제품을 판단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 해명이다. 자신이 판단해 일 잘하는 설계사에 수의계약을 했고, 내가 정한 제품을 설계에 반영하라고 과업지시를 했다는 것은 공사감독이 마음대로 업체와 제품을 정할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그런데 확인결과 미르이에프시는 주소만 문경에 있는 유령회사였다. 문경시청 옆 오피스텔로 주소가 돼 있었지만 기자가 이틀 동안 사무실을 지켜보았으나 출입자는 한명도 없었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물론 간판도 전화번호도 없다. 일반적으로 설계사무소는 크던 작던 간판이 있게 마련인데 이 회사는 간판도 없고 직원들의 출근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미르이에프시 대표는 "문경시에서 전광판 일을 수의계약으로 주면서 특정 제품에 대한 과업 지시를 내리면 시와 협의·설계해서 납품을 한다. 우리가 제품을 독자적으로 결정해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대구에 사무실이 있고 문경 등 지방에도 운영하고 있으나 형편상 직원은 둘 수 없어 대표가 왔다 갔다 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의 설명대로라면 엔지니어링산업 진흥법에 의해 신고한 기술자가 실제 근무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등록기준 위반이고, 계약은 문경 업체가 하고 설계는 대구 업체가 해서 납품했다면 하도급법 위반 소지가 의심된다. 미르이에프시는 문경에 형식적으로 사무실을 내놓고 문경시와 은밀하게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의혹은 문경시민운동장 전광판 교체 사업이다. 문경시 올해 예산서에는 사업부기가 없다. 예산이 책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산이 없는데 어떻게 설계용역을 수의계약으로 발주할 수 있는지 유착이 의심된다는 것.
A씨는 "예산은 곧 편성된다. 문경하키장 시설공사 예산이 국비로 내려와 있는데 사업을 축소하고 남은 예산을 시민운동장 전광판교체로 전용 사용한다"고 했다. 국비를 사업 목적에 맞지 않게 집행할 수 있느냐, 시장이 하고 싶다고 진행했다지만 의회의 예산 승인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 위에서 그렇게 하라고 해서 진행했다. 시장 결재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문경시는 국민권익위원회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최하위등급인 5등급을 받았다. 국민권익위 종합청렴도 평가는 부패방지권익위법에 근거를 두고 기관의 종합적인 청렴 수준을 평가해 각급기관의 반부패 노력을 촉진하고 청렴인식·문화를 확산키 위해 시행되고 있다.
나영조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