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 오너 집에서 5년간 월세살이
▲ 이호림 전 사장이 최근까지 거주한 서초구 반포동 소재 빌라. 이 빌라는 양귀애 전 명예회장 소유로 밝혀졌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지난 4월 2일 일본 교토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카스를 아시아 1등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등 경영에 강한 의욕을 보여 왔기에 갑작스러운 그의 사임에는 분명 배경이 있다는 의혹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OB맥주 측은 “절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 이호림 전 사장(왼쪽)과 양귀애 전 명예회장. |
주류업계 관계자는 “OB맥주 내에서나 업계에서나 장 사장의 공을 상당히 높이 평가해 최근 이 전 사장이 사내에서 굉장히 위축돼 있었다”며 “이 전 사장의 입지와 위상이 많이 좁아졌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OB맥주의 한 직원은 “이 전 사장과 장 사장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전 사장의 사임에 대해 OB맥주 측은 “주주의 결정, 이사회의 결정”임을 수차례 강조했다. 본인이 스스로 물러난 것이라기보다 ‘경질’ 쪽에 무게가 실리는 답변이다. ‘경질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영업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말을 돌렸다.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이 전 사장은 현재 미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사장은 미국으로 떠나면서 일부 지인들에게 “당분간 쉬면서 재충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업계 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 전 사장은 “올 하반기쯤 복귀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이 전 사장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의 한 빌라에 살았다. OB맥주 법인등기부상 이 전 사장의 주소도 그렇거니와 OB맥주 측도 이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 빌라의 소유주는 양귀애 전 대한전선 명예회장이었다. 이 빌라는 고 설원량 회장 소유에서 양 전 명예회장으로 상속된 것으로 현재 양 전 명예회장은 서초동에 거주하고 있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양 전 명예회장은 고 양태진 국제그룹 창업주의 막내딸이자 고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의 누이동생이다. 고 설 전 회장과 양 전 명예회장이 결혼한 것은 1969년. 고 설 전 회장의 누이동생인 설명옥 씨의 소개가 인연이 됐다. 설명옥 씨와 양 전 명예회장은 친구 사이다.
그런데 지난 2004년 고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이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무주리조트 이사로 있던 양 전 명예회장은 고문으로서 어린 아들들 대신 본인이 직접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장남인 설윤석 대한전선 사장(31) 중심으로 오너 체제가 다시 갖춰진 현재 양 전 명예회장은 인송문화재단·설원량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으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그렇다면 이호림 전 사장이 양 전 명예회장 소유 빌라에 산 연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인연은 10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당시만 해도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건실한 그룹이었던 대한전선은 무주리조트를 인수했다. 그 다음해에는 쌍방울마저 인수했고 2005년 양 전 명예회장은 쌍방울의 새로운 대표로 한국피자헛 대표와 월마트코리아 부사장을 지낸 이호림 전 사장을 영입했다. 2007년 쌍방울 대표를 그만둔 이 전 사장은 바로 OB맥주 사장에 취임했다.
아무튼 이 전 사장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도 여전히 양 전 명예회장 소유의 빌라에 살고 있었다는 것은 다소 의외다. 아마도 2005년 쌍방울 대표로 영입되면서 양 전 명예회장이 자신 소유의 빌라를 임대해줬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으로 보인다. OB맥주 측이 “이 전 사장에게 기사와 자가용만 제공했을 뿐 사택은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혀 이런 관측은 설득력을 얻는다. OB맥주가 사택을 제공했다면 그리로 옮겼을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서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비록 쌍방울 대표를 그만두기는 했지만 이 전 사장이 그 집에서 살기를 계속 원했다”며 “출퇴근도 용이하고 살기도 편해서 두 분(양 전 명예회장과 이 전 사장)이 임대차계약(월세계약)을 맺었고 그것이 재계약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계약서와 계약금액 등에 대해서는 “개인 간 거래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항은 확인하기 어렵다”고만 답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