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찍는 데 드는 돈’은 누구 돈?
▲ 경북 경산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직원이 5만원권을 제조하며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불에 타거나 오염이 심해서 재사용하기 어렵다는 판정을 받고 폐기된 지폐는 9138억 원으로 전년 하반기(8934억 원) 대비 2.3% 늘어났다. 폐기된 지폐는 2억 3700만 장에 달했다. 폐기된 동전은 14억 원으로 전년 하반기(8억 원) 대비 80.6%나 늘어났고, 동전은 1600만 개로 전년 하반기(1100만 개) 대비 500만 개 늘어났다.
한은이 화폐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은 지폐나 동전의 폐기 액수가 날이 가면 갈수록 늘어나면서 대체 비용 부담도 증가하고 있는 탓이다. 지난해 폐기된 지폐의 액수는 총 1조 332억 원에 달하고, 폐기된 지폐는 장수로만 4억 8400만 장이나 된다.
폐기된 지폐를 5톤 트럭에 실으면 총 89대를 채울 수 있다. 또 폐기된 지폐를 모두 이을 경우에는 연장길이가 6만 7911㎞로 서울-부산을 82번 왕복할 수 있다. 쌓을 경우에는 높이가 5만 1608m로 63빌딩(249m)의 207배, 백두산(2750m)의 19배나 된다.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트(8848m)보다도 6배나 높다.
지폐가 오염으로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면 동전은 저금통이나 책상서랍 속에서 잠을 자는 일이 많다. 2011년 말 현재 한은이 시중에 공급한 동전의 누적 공급 규모는 500원 20억 개, 100원 83억 개, 50원 19억 개, 10원 72억 개 등 약 2조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국민(5000만 명) 한 사람당 동전으로만 4만 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 동전을 집안의 저금통이나 책상 서랍에 넣어놓기 때문에 한은은 시중에 필요한 동전을 공급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쓸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만 동전을 960억 원어치 공급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동전 사용에 제한이 없는 만큼 동전이 시장에 순환되지 않으면 그만큼 경제적으로 손해다. 한은법은 ‘한국은행이 발행한 한국은행권은 법화로서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48조)’고 되어 있다. 지폐뿐 아니라 동전도 제한 없이 상거래나 채무변제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가끔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거래대금을 모두 동전으로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동전으로만 지불한다고 이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동전으로 거래하는 양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은 단일 거래 시 거래자가 상대방에게 동전을 50개 이상 받도록 강요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동전을 종류별로 최대 20개씩만 사용할 수 있다. 호주와 캐나다, 싱가포르 등도 동전의 사용량을 일정 수준으로 정하고 있다. 이러한 동전 사용 규정이 없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미국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동전이 돌지 않는 것은 부담이다.
지폐 폐기나 동전 미사용 때문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한은에게는 걱정거리다. 지난해 한은이 관리가 소홀해져서 폐기된 지폐, 집안에서 잠자고 있는 동전을 대신하기 위해 지폐와 동전을 새로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만 823억 원이 들었다. 이는 2010년에 들어간 비용 773억 원보다 6.5% 늘어난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폐기되는 지폐들이 발생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한 일용직 근로자는 수년간 받은 임금 3000만여 원을 마당 속 항아리에 보관하는 바람에 쓸 수 없게 됐다. 장롱 밑에 보관하다가 침수로 1700만 원어치 지폐를 부패시키거나, 침대 밑에 자식들이 주는 용돈 540만 원을 모아놓았다가 전기 누전으로 태워버린 경우도 있었다.
또 장작더미나 전자레인지 등에 숨겨뒀다가 깜빡 잊고 불을 붙이거나 조리를 하다가 태우기도 했다. 한은 관계자는 “여러 사례들을 살펴보면 시민들이 조금만 관리에 신경을 쓰면 돈이 손상되는 일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돈 깨끗이 쓰기나 동전 바꿔주기 캠페인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준겸 언론인
‘한국은행권’ 발행 비사
‘100환’ 26일 만에 단명
우리나라의 유일한 법정화폐(법화)로 ‘한국은행권’을 발행하는 한국은행의 첫 화폐 발행은 순탄치 않았다. 한은은 1950년 6월 12일에 설립됐는데, 설립 13일 만에 한국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화폐를 발행할 수가 없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앙은행이었던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은행권 40억 원이 전쟁 후 피난을 떠난 한은이 가진 돈의 전부였다. 이 때문에 한은은 6월 29일 일본 정부에 부탁, 일본대장성 인쇄국을 통해 최초의 한국은행권을 제조했다. 제조된 돈은 1000원 권 152억 원, 100원 권 2억 3000만 원이었는데 1000원 권에는 이승만 대통령 초상이, 100원 권에는 광화문 사진이 들어갔다.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돈은 7월 13일 미 군용기편으로 김해공항에 도착돼 조선은행권과 함께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북한군이 전쟁 중에 조선은행권을 마구잡이로 발행하는 바람에 수차례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과 등가(1 대 1) 교환하며 조선은행권 유통을 중지시켰다. 이에 따라 1953년 1월 16일부터는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은행권만 법화로 인정받게 됐다.
한은에서 만들어진 화폐는 화폐 명칭 변경 등의 조치에 따라 새로운 화폐로 교환되곤 했다. 그러다보니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진 화폐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62년 5월 16일 만들어진 100환권이다. 한복을 입은 모자가 저금통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 돈인데 6월 10일 환을 원으로 변경하는 긴급통화조치 시행으로 인해 발행된 지 26일 만에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수명이 짧았던 탓에 화폐수집가에게 인기가 높다.
단명한 화폐가 있다면 장수한 화폐도 있기 마련이다. 바로 지금도 쓰이고 있는 1000원 권이다. 퇴계 이황을 모델로 한 1000원 권은 1975년 8월 14일 세상에 나왔다. 이후 일부 도안이 수정되거나 위조방지장치가 추가되기는 것 외에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시중에서 사용되고 있다. [겸]
‘100환’ 26일 만에 단명
이렇게 새로 만들어진 돈은 7월 13일 미 군용기편으로 김해공항에 도착돼 조선은행권과 함께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북한군이 전쟁 중에 조선은행권을 마구잡이로 발행하는 바람에 수차례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과 등가(1 대 1) 교환하며 조선은행권 유통을 중지시켰다. 이에 따라 1953년 1월 16일부터는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은행권만 법화로 인정받게 됐다.
한은에서 만들어진 화폐는 화폐 명칭 변경 등의 조치에 따라 새로운 화폐로 교환되곤 했다. 그러다보니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진 화폐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62년 5월 16일 만들어진 100환권이다. 한복을 입은 모자가 저금통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 돈인데 6월 10일 환을 원으로 변경하는 긴급통화조치 시행으로 인해 발행된 지 26일 만에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수명이 짧았던 탓에 화폐수집가에게 인기가 높다.
단명한 화폐가 있다면 장수한 화폐도 있기 마련이다. 바로 지금도 쓰이고 있는 1000원 권이다. 퇴계 이황을 모델로 한 1000원 권은 1975년 8월 14일 세상에 나왔다. 이후 일부 도안이 수정되거나 위조방지장치가 추가되기는 것 외에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시중에서 사용되고 있다. [겸]